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9
김준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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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盧生이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의협심이 있었다.
일찍이 호남湖南을 유람하다가 고을 원을 방문했다. 관아에는 쑥대머리에 닭의 살가죽 같은 피부를 가진 예순 넘은 늙은 기생이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옛날에는 명창이라 불렀던 기생이었다.
노생은 나이를 고려하지 않고 밤이 깊어지자 그 기생을 불렀다. 기생은 즐거이 부름을 받들었다. 긴 옷을 입어 피부를 가리고, 입에는 산초를 머금어 입 냄새가 나지 않게 했다. 노생은 기생의 옛 명성을 흠모하여 마침내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기생은 매우 기뻐하며 젊은 부부가 된 듯이 노닐었는데, 마치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기생은 관아에서 나오는 사사로운 음식을 내지 못하게 하고 대신 몸소 음식을 갖추고서 큰 그릇 삼십여 개에 담아 노생에게 올렸다. 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진미였다. 이처럼 기생은 노생에게 날마다 여섯 번 식사를 올렸고, 식사 때는 상머리에 앉아서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주며 음식을 권했다.
노생은 억지로 밥을 더 먹었지만 여섯 끼나 배불리 먹어야 하는 고통은 견딜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 머물려 하면 기생은 발악하며 조금도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367~368쪽

그래서 노생이 겪는 괴로움은 마치 당학질唐虐疾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았다.
어느 날 새벽, 노생은 종에게 미리 말을 준비해두라고 했다. 그러고는 측간에 가는 것처럼 하고 나와 말에 채찍질을 더해가며 달아났다.
아전은 그 사연을 고을 원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고을 원은 웃으며 말했다.
"일찍이 맹상군孟嘗君의 식객도 배불리 먹는 것이 괴로워 달아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네. 그런데 지금 내 손님은 배가 불러 죽을 것 같아 달아났으니 내가 맹상군보다 낫구나."-367~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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