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5 - 한국고전걸작유머
김현룡 엮음 / 자유문학사 / 2008년 1월
절판


서울에 사는 한 어리석은 선비가 멀리 영남 지방으로 유람을 떠났다가 상산(商山) 고을에 머물게 되었다. 이 때 선비가 기생 하나를 사랑하게 되어 깊이 빠지니, 가진 재물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이에 재물이 떨어진 선비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서 기생과 작별을 하게 되니, 선비는 이별이 서러워 기생을 붙잡고 한없이 울다가 말했다.
"내 지금까지 너를 사랑하여 도저히 잊을 수가 없으니, 네 신체 중 가장 절실한 일부를 나눠 준다면, 내 그것을 증표로 삼아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
이 말에 기생은 신체 가운데 가장 절실한 일부가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머리털을 조금 잘라서 내놓으며,
"소녀는 머리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오니, 이것이 소녀의 절신지물(切身之物)이 될 수 있을 듯하옵니다."
라고 하자 선비는 그것을 밀치면서 말했다.
"이것이 아니로다. 이것은 절실한 일부가 못 되느니라."
이에 기생은 다시 생각하다가, 신체의 절실한 일부라면 틀림없이 음모를 지칭하는 듯싶어, 치마를 걷어 올리고 음모 몇 개를 뽑아 그 앞에 내놓았다.
한데 선비는 이것도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29~32쪽

"이런 것들은 모두 신체 외부이거늘, 어찌 절실한 물건이 될 수 있겠는가? 내 너에게 보통 사람과는 달리 특별한 애정을 쏟았으니, 반드시 내게 주는 증표 또한 특이하고 평범하지 않은 물건이라야 할 것이니라. 그래야만 사람들이 너를 특별히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내 얻고자 하는 것은, 곧 너의 '황시(黃矢:누런 대변)'이니라. 그것을 얻어야만 내 마음이 진정으로 흡족할 것 같구나."
이에 기생은 크게 웃더니, 종이를 깔아 놓고 쭈그려 앉아 누런 대변 한 덩어리를 싸서는 건네 주었다.
이것을 받아든 선비는 여러 겹으로 잘 싸서 가죽 주머니에 넣은 뒤 말에 싣고는, 마침내 눈물을 거두면서 귀경 길에 올랐다.
그리고는 대변이 든 주머니를 종에게 주면서 말했다.
"너는 날마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이 속에 든 대변을 조금씩 잘라 국에 넣어 끓여서 올리도록 할지니라."
이 말에 따라 종은 식사 때마다 그렇게 국을 끓여 올렸는데, 선비는 그것을 앞에 놓고 멀리 남쪽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쉰 뒤, 달콤한 엿을 먹듯 맛있게 냄새 나는 국을 모두 비우는 것이었다.-29~32쪽

그리하여 여러 날 만에 이윽고 한강 나루 남쪽에 닿으니, 선비는 배를 기다리면서 종을 내려다보고 물었다.
"얘야! 일전에 내가 준 것 말이다. 그 국에 넣으라는 물건이 지금 얼마나 남았느냐?"
"예, 도련님! 전번에 주신 것은 지난 아침 국에 모두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찌해야 할까 생각한 끝에, 오늘 저녁부터는 소인이 대변을 보아 계속 넣어 드리려고 하는 중이옵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는지요?"
이에 선비는 얼굴을 찌푸리며 침만 흘리고 있었다.

사신 가라사대,
난봉꾼 풍류 남아들이 기생의 유혹에 빠져, 간혹 은그릇을 주거나 이를 뽑아 주는 일은 있어왔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의 선비처럼 대변을 먹는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개돼지가 아니고서야 어찌 사람의 대변을 먹는단 말이야. 그러니 사람의 대변을 먹는자, 통틀어 개돼지라 해도 좋을 것이로다.
그렇게 볼 때 이 선비는 마땅히 개돼지라 할 것이니, 어찌 사람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을 가려 그 대변을 먹는다 하겠는가?
그러하니 마땅히 종의 대변으로 끓인 국도 먹을 수 있을 것이로다. <어면순>-29~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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