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네. 어떻게 하나

뿐인 아들한테는 학비도 벌어 쓰라고 하고, 그 험한 노가다도 시키

면서 매일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료 급식 봉사를 할 수가 있나. 다들

형편 되면 자식들 유학도 보내고 배낭여행도 보내고 대학가면 차도

사주고 그러던데, 자네 정도면 아들한테 그렇게 야박하게 할 형편

도 아니잖나?"

 "자네 말이 맞아. 나는 위선자야."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자네 혹시, 뚝지라는 물고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뚝지?"

 "멍텅구리라고도 불리는 그 바닷물고기는 말일세, 이 고지식하

고 바보 같은 물고기는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 나올 때까지 그 자리

를 지켜. 자기가 다른 물고기 밥이 되는 순간까지도 알들을 지키려

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다고 그러는 구먼."

 "그런데 왜 갑자기 뚝지 이야기를 하나?"

 " 1년 전인가 텔레비전에서 동해의 포식자 대왕문어라는 다큐

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네. 대왕문어가 가장 힘 안들이고 먹이로 잡

는 물고기가 뭔 줄 아는가?"

 "뚝지겠지. 알에서 새끼가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고 금방 자

네가 말하지 않았나."

 "맞다네. 암컷 뚝지가 알을 낳고 떠나가면 수컷 뚝지가 그 자리에

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알을 지킨다네. 알에서 새끼 물고기가 깨어 나

올 때까지 꼼짝 않고 40일 정도를 지키고 있는 그 멍텅구리 같은 물

고기 한 마리가 나를 울게 만들었다네. 새끼 물고기가 태어날 무렵

에는 몸에서 영양소가 다 빠져나가 쭈글쭈글하게 변해버리지.

있잖나? 살아있는 물고기 아니라 너덜너덜한 천 조각처럼 보이

더구먼. 기력이 떨어져 죽어가는 수컷 뚝지는 제 몸을 기어코 새끼

들의 먹이로까지 제공하더구먼."

 "정말 희한한 물고기도 다 있네. 그런데 왜 난데없이 뚝지 이야기

를 하나?"

 "나는 무던히도 아버지 속을 썩인 나쁜 아들이었다네. 중학교 3

학년 때 동네 사람들한테 내가 고아원에서 데려온 양아들이라는 소

릴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지."

 ", 그랬구먼. 충격 받을 만도 했겠네.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내가 다섯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도 안 하고

혼자서 나를 키웠어. 사람들은 아버지가 재혼을 안 한 이유가 나 때

문이라고 했어. 양아들이 새엄마한테 혹시 구박이라도 받을까 싶어

아버지가 재혼을 안 한 거라고 그랬어.

 그때부터 학교도 가지도 않고 아버지 속을 썩이다가 가출을 해버

렸지. 그러다가 돈이 떨어져 아버지 집을 털기로 마음을 먹었어.

버지는 상당한 재력가셨거든.

 친구와 짜고 어두운 밤을 틈타 담을 넘었다네. 복면을 하고 말이

.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10년 만에 도둑이 되어 나타난 나를 한번에

알아보셨어. 내 이름을 부르는데 등골이 서늘했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가 아버지를 꽁꽁 묶고 재갈을 물렸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

 "그러게 말일세. 짐승보다 못한 놈이었지. 그땐 정말 눈에 뒤집혔

었는가 봐."

 아버지한테서 훔쳐온 통장과 돈으로 흥청망청 놀았지. 그 몇 달

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당뇨를 앓고 계

셨지만 아마도 나 때문에 충격을 받아 돌아가실 걸 거야.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고스란히 내 앞으로 물려 놓으셨더구먼. 나는 그게 더

무서웠어. 이제 나쁜 짓도 끝이구나 싶었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

버지라는 말만 들으면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치밀어오르곤 한다

. 내 죄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하는가 싶어."

 "그래서 그때부터 자네가 마음을 잡고 여기까지 왔구먼."

 "아버지는 친아들도 아닌 나에게 모든 걸 남김없이 주시고 가셨

. 세상의 모든 노인들이 내 아버지 같아. 특히나 자식들에게 따뜻

한 밥 한 끼 못 얻어 드시는 노인들을 보면 더 그래.

 나는 무료 급식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 죄를 영원히 못 씻을 것만

같아. 우리 아들 그만하면 됐다, 하시는 아버지의 그 말씀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내 몸에 기력이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가난한 노인들에게 밥을 대접해야 해."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네 욕만 했지 뭔가. 제 자식한테는 수전노

처럼 굴면서 가난한 노인들한테 무료 급식하는 거 보고 혀를 찾지뭔가, 미안하네."

 "아니야, 나는 죄인이야. 짐승만도 못한 아들한테 모든 걸 주고

가신 아버지. 뚝지처럼······ 아버지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져."

 

뚝지라는 물고기를 보신 적이 있나요? 대왕문어의 먹이가 되는 순간에

도 알들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는 수컷 뚝지의 부정이 눈물겹습

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외면해도 끝까지 믿고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사

람이 있습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출처 : 희망라면 세 봉지(김옥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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