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4 - 한국고전걸작유머
김현룡 엮음 / 자유문학사 / 2008년 1월
절판


어느 고을에 매우 어리석은 관장이 있었다. 하루는 이 관장이 동헌에 의젓하게 앉아 한가롭게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형리가 백성의 호소문을 들고 들어와 그 앞에 엎드렸다
이 때 한 통인(通引)이 뒤따라 들어와 형리를 향해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었다.
"소인, 누이동생이 사망해 여가를 얻고자 하옵니다."
이에 관장은 자신의 누이동생이 사망했다는 부고가 온 것으로 착각하고, 곧바로 대성 통곡을 하며 크게 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곡을 하던 관장은 울음을 멈추고, 매우 진지하게 물었다.
"속광은 어느 날이었으며, 무슨 병을 얼마나 앓다가 운명했는지 자세히 아뢰어라."
그러자 통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민망해 하면서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소인은 부고를 아뢴 것은 영감나리가 아니옵고, 형방에게 아뢴 것이옵니다."
이에 관장은 눈물을 닦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내 다시 생각해 보니, 내게는 본래 누이동생이 없도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전들이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느라 고생을 하더라.-79~80쪽

야사씨는 이 이야기에 이런 평을 붙여 놓았다.
일선에서 백성들을 직접 다스리는 관장을 선임함에 있어서는 진실로 신중해야 하거늘,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세력가의 위압이나 사사로운 청탁에 따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고로 이와 같은 어리석은 무리들이 지방 관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조정을 가볍게 여기는 기미를 제공하고 생민(生民)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상의 도리가 이러하니 실로 개탄을 금치 못하리로다. <명엽지해>-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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