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귀신
몬스터 관련 설화 36.
국초에 성균관에는 동서재(東西齎)가 각기 십 여 간씩 설치되어 있는데, 단지 판벽(板璧)만 갖춰져 있을 뿐이었고 온돌방이 없었다. 이곳에 기숙하는 선비들은 그 냉기를 견딜 수 없어서 많은 이불을 연이어 깔고 같이 누워 온기를 취하였다.
서재(西齋)에 진사(進仕)칸이 있었는데, 그 때 용모가 맑고 아름다운 한 나이 어린 유생이 항상 〈이소경(離騷經)〉을 읽고 있었다. 두 진사가 그 유생과 함께 자려고 서로 그의 다리를 잡아당기며 다투었는지라 나이 어린 유생은 마침내 다리가 찢어져 죽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 진사칸에서는 날이 어둡고 비가 내리는 저녁이면 간혹 ‘제고양지묘예(帝高陽之苗裔)’라고 독서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와 같은 것은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는데, 성균관 유생으로 이곳에 거처하는 자들 대부분이 이 꿈을 꾸다가 가위에 눌렸다.
이후 연산군이 거리를 횡행할 때 밤에 통행금지를 어기게 되었다. 혹 이진사라고 칭하면 도적잡는 포교도 감히 벌을 주지 않았으니, 연산군은 ‘생원 진사는 세력있는 사람들도 꺼리는 구나’라고 생각하여 매번 놀러 갈 때마다 반드시 생원 진사들로 하여금 수레를 매게 하였다.
후에 성균관의 식당을 부수고 대신 호권동서재(虎圈東西齋)를 설치하여, 많은 기생들을 모두 이곳에 거처하게 하였다. 한 기생이 진사칸에서 잠을 자다가 꺼림칙하여 이상하게 죽었다. 이로부터 진사칸에서 기숙하는 선비들 꿈에는 미녀가 나타나 항상 가위 눌렸다.
만력(萬曆) 무인 6월 15일에 성균관 관원이 소주(燒酒)와 구운 개고기를 준비하여 선비들을 먹였다. 생원 장언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호남 사람이었다. 진사칸에서 객살이하였는데 이날 여러 친구들이 소주를 권했던지라 과음으로 인해 죽고 말았다.
다음해 6월 15일 성균관 관원이 다시 소주와 구운 개고기를 준비하여 선비를 먹였다. 그 전날 밥에 진사 이철광이 진사칸에서 잠을 잤는데, 본디 알지 못하던 한 선비가 꿈에 나타나 철광에게 말하였다.
“나는 생원 장언진이요. 내일 관관(館官)이 술과 고기를 준비하여 먹일 것인데, 나에게도 나누어 주어 맛볼 수 있도록 해주시로.”
철광이 꿈에서 깨어나 이상하게 여기고 같이 잠자던 사람에게 물었다.
“생원 중에 장언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철광이 물었다.
“내일 관관이 고기와 술로써 선비들을 먹입니까?”
모두 대답하였다.
“지난해에 소주를 과음하여 이곳에서 죽었소.”
철광이 놀라며 이상하게 여기고 인하여 꿈을 이야기 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철광이 먹고 마시는 자리에 참가하여 별도의 그릇에 개고기를 받고 또 다른 그릇에는 소주를 받아 자리 가운데 펼쳐 놓고는 두 손을 마주잡고 꿇어앉아 자신은 한 꿰미의 고기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같이 술자리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서로 팔꿈치로 찌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장생이 너에게 한 잔 술을 권하니 세간에 어찌 만년 생원이 있겠으며, 이생이 너에게 한 꿰미의 고기를 권하니 세간에 어찌 만년 진사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