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속에는 천상계, 용궁계, 지하계, 현실계, 신선계 등 여러 이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설화에서 주로 땅속에 사는 귀신은 악한 괴물이나 요괴인 경우가 많다.
여인들을 납치해가는 지하국대적이나 금돼지가 그렇고, 처녀를 제물로 받는 뱀 등도 땅속에 산다.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그 육신이 땅 속에 묻히는 것에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설화에 등장하는 와라진도 땅속에 산다.
이 설화는 무덤을 지키는 토신인 "삼두구미"와 그 내용이 일치하는데,
무덤과 시체를 관장하는 신격의 본풀이와 일치한다는 것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이다.
실제 우리들이 땅 속이라고 말하면 어두운 동굴이나 구덩이를 통해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설화에서는 이 이동이 산 속으로 가거나 내나 물을 건너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밧줄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우리 설화에서는 수직적 이동의 수평적 이동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즉 비록 땅 속이라고 해도 수평적 공간의 연장선상에 나타난다.
와라진 귀신이 사는 곳도 땅 속이라고 표현되지만, 실제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즉 수평적인 이동을 통해 수직적 공간인 지하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을 땅 속으로 데려간 귀신은 자신과 함께 살려면 사람의 다리를 먹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즉 자신과 같은 식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한 문화권에 속한다는 말이고,
이는 곧 데려간 여인이 와라진과 같은 귀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거부한 여인들은 죽음을 당한다. 집안에는 와라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갇혀있다.
곧 와라진의 처소는 사람들의 무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와라진은 삼두구미와 상통한다.
제주도에서 무덤을 옮길 때는 삼두구미 모르게 해야 한다.
따라서 무덤을 옮기기 전에 삼두구미에게 하늘로 올라가라는 축문을 외운 후에 무덤을 파 시신을 이장한다.
이 때 먼저 있던 무덤에는 계란, 버드나무, 무쇠를 묻어 둔다.
나중에 하늘에서 내려온 삼두구미가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 물으면, 계란은 이목구비가 없어서 모른다고 하고,
무쇠는 먹먹해서 모른다고 하고, 버드나무는 뻣뻣해서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삼두구미는 할 수 없이 시신 찾기를 포기한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삼두구미 또한 시신이 있는 무덤에 거주하는 토신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와라진 귀신과 삼두구미는 모두 시신을 차지하고 땅 속에 거주하는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와라진 귀신이 여자를 땅 속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죽은 육신을 땅 속으로
인도하는 토신(土神)인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혼(魂)은 하늘로 가고, 백(魄)은 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백을 인도하는 신격이 바로 삼두구미인데, 이는 민간 설화로 전승되는 와라진과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