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3 - 한국고전걸작유머
김현룡 엮음 / 자유문학사 / 2008년 1월
품절


옛날 경상도 통영에 어떤 사람이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는데, 집이 가난하여 하루 세 끼 식사도 근근리 이어갔다.
하지만 아들은 부지런하고 착해, 어려운 살림살이를 속에서도 부친을 극진히 섬기고 효도를 다했다. 아들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품팔이를 하여 겨우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는, 열심히 풀을 뜯어다 먹여 정성으로 길렀다.
송아지가 제법 자랐을 때 작은 농토라고 마련하려고, 하루 장날에는 부친이 그 송아지를 몰고 장으로 팔러 나갔다. 그리하여 작은 산을 넘고 있을 때, 갑자기 도적놈이 나타나서 칼로 부친을 위협하고는 송아지를 빼앗아 달아나 버렸다.
부친은 길가에 앉아 넋을 놓고 울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정성이 들여 기른 송아지를 도적에게 빼앗기니, 아들 볼 면목이 없어 근심 어린 얼굴로 집에 돌아온 부친은 아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네가 그토록 열심히 기른 송아지를 장에도 못 가고, 산 고개에서 도적에게 빼앗겨 그대로 돌아왔구나. 너무도 원통하고 절통한 일이라 할 말이 없다."
힘없는 부친의 말을 듣자, 아들은 그 손을 잡고 큰 걱정을 하면서 아뢰었다.-125~126쪽

"아버님, 그러면 점심도 굶으셨네요? 얼마나 배가 고프십니까? 집에 돈이 없어 나갈실 때 여비도 한 푼 드리지 못하고 소를 팔아 점심을 잡수시라고 했는데, 이렇게 굶고 돌아오시다니요. 미리 점심 값을 드리지 못한 죄를 용서하세요."
이러면서 아들은 얼른 술상을 차려 요기부터 하시라고 했다. 그리고는 점심을 준비하면서, 부친이 도적을 만난 과정을 소상히 전해들었다.
이 이야기에서 아들의 행동을 보면 보통 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를 도적에게 빼앗겼다고 할 때, 그 소를 잃은 것부터 먼저 걱정하게 된다. 한데 이 아들은 그렇게 정성들여 기른 소를 잃은 것보다 먼저 부친의 배고픔을 챙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생각하기에 따라 쉬운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효성이 몸에 밴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번져 통제사에게로 전해졌다. 이에 통제사는 그 행동을 가상히 여겨, 아들을 불러 칭찬하고는 특별히 장교로 임했다. 통제사는 아들이 월급을 받아 부친을 봉양하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어수신화>
-125~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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