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신천희 지음 / 새론북스 / 2008년 3월
구판절판


눈송이가 가로등 앞에 모여든 하루살이처럼 날리는 날이다. 넓은 강으로 공부하러 가던 시냇물들이 한쪽에 모여 땡땡이를 치다가 바람한테 들켜 가슴이 꽁꽁 얼어붙도록 혼나고 있는 그런 겨울 풍경도 보인다.
그런 겨울날, 방 안에는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초청한 적도 없고 문을 열어준 적도 없다. 그 불청객은 다름 아닌 똥파리다. 그것도 파촐소장은 거뜬히 하고도 남을 만큼 덩치가 큰 녀석들이다. 처음에 어쩌다가 한 마리가 보일 때만 해도 명절이라 찾아왔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에 서너 마리씩 나타나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출몰한 수가 청와대를 습격하러 내려온 김신조 부대와 실미도 대원의 수와 비슷한 서른 한 마리 정도는 족히 되고도 남는다.
아무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지만 나처럼 홀로살이하는 중한테서 뭘 얻어갈 게 있다고 찾아올까!
아마도 짐작컨대 여름에 천장에다 알을 매달아 놓았지 싶다. 그런데 실내 온도가 높으니까 시절을 잘못 알고 깨어난 것 같다. 똥파리에겐 미안하지만 보이는 족족 바깥으로 내몰았다. 체질상 경찰관 친구가 하나도 없듯이 똥파리하고는 친하지 않다.-178~179쪽

눈살을 찌푸리며 똥파리를 내몰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똥파리가 어디에 꼬이는가? 똥 아니면 썩은 생선 같은 더러운 것들에 꼬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 방에서 똥 냄새가 나든지 아니면 내 정신이 썩었다는 이야기다.
이 황당할 정도로 자명한 사실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17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