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장바구니담기


바람이 메말라 까실까실하고 이슬이 깨끗하여 투명한 것이 음력 팔월의 멋진 절기다.
물은 힘차게 운동하고 산은 고요히 머물러 있는 것이 북한산의 멋진 경치다.
개결하고 운치 있으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두세 사람이 모두 멋진 선비다.
이런 사람들과 여기에서 노니니 그 노니는 것이 멋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동을 거친 것도 멋지고, 세검정에 오른 것도 멋지고, 승가사 문루에 오른 것도 멋지고, 문수사 수문에 올라간 것도 멋지고, 대성문에 임했던 것도 멋졌다.
중흥사 그윽한 골짜기에 올라간 것도 멋지고, 용암봉에 오른 것도 멋지고, 백운산 아래 기슭에 임한 것도 멋졌다.
성운사 골짝 어구도 멋지고, 염폭은 기막히게 멋지고, 대서문도 멋지고, 서수구도 멋지고, 칠유암은 극히 멋지고, 백운동문과 청하동문의 두 동문도 멋지고, 산영루도 대단히 멋지고, 손가장도 멋졌다.
정릉동 어구도 멋지고, 동성 바깥 평사에서 일단의 무리가 말을 내달리는 것은 본 것도 멋졌다.
사흘 만에 다시 도성에 들어와 취렴방 저자에 붉은 먼지가 일고 수레와 말이 빈번하게 다니는 것을 보는 것도 멋지다.
아침에도 멋지고 저녁에도 역시 멋지다.-196~198쪽

날이 맑아도 멋지고 날이 흐려도 멋지다.
산도 멋지고 물도 멋지다.
단풍도 멋지고 바위도 멋지다.
멀리 조망하여도 멋지고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멋지다.
부처도 멋지고 스님도 멋지다.
비록 좋은 안주는 없어도 탁주라도 멋지다.
절대가인이 없더라도 초동의 노래만으로도 멋지다.
요컨대 그윽해서 멋진 것도 있고, 상쾌하여 멋진 것도 있고, 활달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아슬아슬하여 멋진 것도 있고, 담박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알록달록하여 멋진 것도 있다.
시끌씨끌하여 멋진 것도 있고, 적막하여 멋진 것도 있다.
어디를 가든 멋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진 것이 이렇게도 많아라!
이 선생은 말한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 보지도 않았을 게야."-197~19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