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궁 궁에도 꽃피는 봄이 온다 1
김혜연 지음 / 발해 / 2008년 1월
품절


"책빈례를 받으려면 보름 정도 남았으나, 내 조급증이 들어 찾아왔느니 경망한 노인네라 책하지 마시게."
"송구하옵니다. 어마마마......"
아직 가례를 올리기 전이라 어마마마라 부른 것이 혹여 잘못한 것인가 하여 힐끗 훈육상궁을 보는 무영이었다. 그 모습을 본 중전은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보름 후면 내 며느리가 되는 것이니, 그리 불러도 무방하외다. 훈육상궁이 매섭게 가르치는 모양이오. 후후후......."
"아니옵니다. 소녀가 무지하와, 아직 궁중의 예법을 잘 배우지 못하였나이다."
"오랫동안 궁 안을 드나들었는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아직은 낯설어 그럴 것이라 여기네. 아니 그런가, 김 상궁?"
무영을 바라보며 흡족한 낯빛을 감추지 않았던 중전의 시선이 훈육상궁에게 머물렀다.
"예, 중전 마마. 궁중예법만 조금만 더 배우시면 되옵나이다. 학식은 저보다 더 다박하시어, 제가 가르칠 것이 없나이다. 오히려 제가 송구하옵나이다."
"오, 그래? 벌써, 소학과 효경, 내훈을 다 배우셨던가?"
"그뿐이 아니옵나이다. 중용(中庸)과 시경(詩經), 예경(禮經)등을 두루 읽으시어 넉넉한 학식과 교양을 갖추셨나이다."-394~396쪽

매섭던 훈육상궁과 흡족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중전의 시선으로 인해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는 무영이었다.
"좋아하는 글귀나 늘 마음에 새기는 글이 있으신가?"
"족용중(足容重)이라, 발을 가볍게 가져 경박하게 들어 올리거나 흔들지 않으며, 수용공(手容恭)이라, 손은 공손히 두어 만지작거리거나 함부로 내두르지 않고, 묙옹단(目龍端)이라, 눈동자를 단정히 하여 정면을 바로 보고 곁눈질하지 않으며, 구용지(口容止)라, 말할 때와 먹을 때를 빼고는 입을 다물고 룸직이지 않으며, 성용정(聲龍靜)이라, 맑은 음성으로 말하며 재채기나 기침 등 잡소리를 내지 않으며, 두용직(頭容直)이라, 고개를 똑바로 하여 한편으로 기울게 하지 않으며, 기용숙(氣龍肅)이라, 호흡을 조절하여 늘 엄숙한 태도를 지니도록 하며, 입용덕(立容德)이라, 항상 반듯하게 서며 어디 기대지 말고 점잖은 태도를 가지며, 색용장(色容莊)이라, 낯빛을 늘 바로잡아 가지런히 하여 태만한 기색을 내지 않는다. 또, 시사면(視思明)이라, 항상 눈에 가림이 없이 사물이나 사람을 바르게 볼 것이며, 청사총(聽思聰)이라, 항상 남의 말과 소리를 똑똑하고 분별 있게 들을 것이고, 색사온(色思溫)이라,-395쪽

항상 온화하여 얼굴에 성난 빛이 없도록 할 것이며, 모사공(貌思恭)이라, 항상 외모를 공손하고 단정하게 가질 것이며, 언사충(言思忠)이라, 항상 진실하고 믿음이 있는 말만 할 것이며, 사사경(事思敬)이라, 모든 일에 공경하고 행동을 조신하게 삼갈 것이며, 의사문(疑思問)이라, 항상 의심이 있을 때는 반드시 사리로 따져서 물을 것이며, 분사난(忿思難)이라, 분한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사리로 따져서 참을 것이며, 견득사의(見得思義)라, 재물을 얻게 될 때는 의(義)와 이(利)를 구분하고, 얻어도 되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하게 가릴 것이다."
"!"
거침없이 읊어대는 무영의 말이 더할수록, 놀라운 기색이 얼굴 전면에 퍼져 나가는 중전이었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구먼! 격몽요결(擊蒙要訣)의 구용(九容)과 구사(九思)가 아니던가?"-395~396쪽

"허면, 한 가지만 더 묻도록 하지요. 소혜 왕후께서 편찬하신 내훈은 많은 여인들의 교훈서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왕실의 여식들조차 다학(多學)할 기회를 주지 않았지요. 허면, 소혜 왕후께옵서 내훈을 편찬하신 이유가 무엇이지 알고 있습니까?"
"남편이 어질지 못하면 부인을 제어할 수 없고, 부인이 어질지 못하면 제대로 남편을 섬길 수 없다 하시며, 오직 남자만을 가르치고 여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피차에 대한 헤아림이 부족한 때문이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내훈이 여인들의 갖추어야 할 교훈서라는 것과 소혜 왕후가 편찬하였다는 것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나, 세자빈자리에 걸맞게 너무도 정확하게 소혜 왕후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 무영에게 실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중전이었다.
"걱정으로 왔으나 내 큰 기쁨과 흡족함을 가지고 가게 되어, 이리 발걸음 한 것이 좋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훈육상궁은 이틀 내로 남아 있는 궁중 법도를 가르치라. 이미 부족함이 없는 빈궁이기에 교육이란 명목 하에 가례를 미룰 일이 없음이야!"-396~397쪽

기쁜 기색을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던 중전은 만면에 웃음 가득 띠며 보름이나 남은 가례를 이틀 후로 앞당긴다 하고는, 별궁을 나서 대전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바삐 걸음을 옮기었다.-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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