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공주의 진맥결과만을 물었다." 나직하였으나 미사함만은 그가 몹시 초조하다는 것을 알았다. 황제는 마음이 불안하거나 속이 편안치 못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흥분하는 대신 더 차가워지고 성음이 낮아지곤 하였다. "망극하나이다. 한령 공주마마께서는 저희가 걱정한 대로 한음절맥이었나이다." 미사함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아버렸다. 무공을 익힌 그는 한음절맥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빙설의 기운이 골수와 혈관에 침범하여 나날이 기혈이 막혀 결국은 옥체가 얼음처럼 변하여 죽어가는 질맥. 무서운 천형과도 같으니 그러한 천맥을 가진 여아는 혜지와 미모가 수려하고 빼어나되 요절한다 알려졌다. 북설국의 여인들은 화용월태가 많다 하는 것은 기실 그러고 보면 한음절맥의 영향으로 짧은 수명에 대한 하늘의 잔인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제는 의학에 대하여 그다지 알지 못하니, 다시 캐물었다. "한음절맥이 어떤 것인가?" 가벼이 생각하여 하문하였을 테지만, 이내 의관의 설명을 들은 후 황제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95 ~ 96쪽
의관과 사신이 동시에 바닥에 엎드렸다. "부디 간청하옵니다. 폐하. 아시다시피 이곳으로 오셔야 할 대공주마마께서도 그러한 맥을 지닌 터. 결국 병질을 이기지 못하시고 요절하였습니다. 이제 막내 공주주마마께서도 그러한 맥을 지니신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부디 가엾게 여겨 자비를 베푸어주십시오. 공주마마를 귀국하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길어보았자 남은 생은 십여 년 안팎입니다. 감히 아뢰옵나니, 공주마마께서 이곳 궁성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들었나이다. 수천 명의 재인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한 명의 소녀가 없다 하여 이 장려한 궁성의 일이 잘못될 리는 없을 것이다." "설마 지금 공주를 박대한다고 항의하는 것은 아니겠지?"-96쪽
"짐이 공주와 더불어 혼인을 한 바라, 북설국의 사위가 되었다. 이에 예물을 보내려 한다. 이미 짐이 호부에 하명을 하였거니, 공주의 부친이신 대왕께 백미 오천 석과 밀보리 오천 석. 황금 삼백근과 백은 오백 근. 사유타의 명검 삼백 자루를 준비하였다. 그대가 예물을 대신 전하고 공주를 깊이 사모하는 짐을 뜻을 전해주길 바란다." "과분한 황은에 그저 망극하나이다." 사신들이 다시 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짐이 윤허하니 가월궁으로 들어가 귀비를 알현하라. 그이가 고향 소식에 몹시 굶주려 있다. 두루두루 소식을 전하고, 그이를 위로하여 기쁘게 해다오. 단 미리 전한 짐의 당부를 잊지 말도록."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한데 페하. 신이 삼가 간청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말하여 보라. 무엇인가?" "감히 무례함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아국의 의관이 올리는 간청이옵니다. 부디 우리 공주마마께서 회임을 하시지 않도록 황상께서 특별히 배려를 하여 주시옵소서." 순간적으로 민의 눈썹이 위로 솟구쳤다. "마땅히 짐의 용종을 생산하는 것은 귀비의 책무이다. 감히 너들이 뭐라고 짐의 내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간섭하는 것이냐?"-331 ~ 332쪽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지금 누구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벌리는 것인가? 감히 황제더러 귀비를 잉태시켜라 말라 간섭질을 하다니. 몹시 불쾌하여 호통 치는 황제 앞에서 사신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내 말을 이어갔다. "망극하나이다. 하지만 부디 성심을 진정시키고 소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폐하. 공주마마처럼 한음절맥을 가진 여인니 회임을 하게 되면 절맥의 증질이 발작됩니다. 또한 어미도 태아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순간 황제의 안색은 말 그대로 시퍼렇게 변하였다. "뭐, 뭐라고?" "태아는 삼라만상 중 가장 극양의 순체올시다. 한음절맥의 모체가 견디기 힘든 상극의 존재지요. 하여 아기가 살면 어미가 죽고 어미가 살면 아기가 죽습니다."-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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