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안개, 폭설, 강풍 등은 항공기의 운항을 중단하게 만드는 악기상으로 항공사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상 상태다. 4월 20일 새벽부터 내린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전국적으로 강한 바람과 많은 양의 비로 사실상 공항 전체가 마비 상태였다. 계속적인 기상 악화로 전편 결항이 결정될 수도 있었던 상황에 할머니 한 분이 사무실로 오셨다.
“제발, 제주도로 나 좀 보내줘요. 나 오늘 안 가면 안돼요. 아가씨.”
울면서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직원이 아무리 설명해도 할머니는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계속 애원하셨다.
“나 꼭 가야 돼요. 내가 당뇨병인데 하루라도 약을 안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서 안돼요. 무릎 관절염 때문에 내가 걷지도 못하고 해서, 부산 대학병원에 용한 의사가 있다고 조카가 예약해줘서 아침 일찍 비행기타고 왔는데, 진찰만 하고 오늘 제주도로 돌아갈 거라 약도 안 챙겨 왔어요”하면서 바짝 마른 입술을 수건으로 훔치셨다. 숨을 많이 헐떡거리시는걸 보니 많이 불안해 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물 한잔 드셔요”하면서 물을 건넸고 할머님은 물 한 모금 마신 다음 “제가요 당뇨가 있어서 이렇게 입이 바짝 말라요. 나 걷지도 못해요. 관절염이 심해서 비행기타고 택시 타고 억지로 다녀가는 거에요” 하셨다.
일단 휠체어를 준비해 앉게 한 후, 공항 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물어보자 했다. 직원에게 할머니를 병원까지 모시고 다녀오도록 하고 기상체크와 운항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잠시 후 할머니는 직원과 함께 병원에 다녀오셨고 다행히 안정을 취하신 듯했다.
“할머니 걱정 마시고요. 일단 편하게 앉으세요. 나중에 비행기 뜨게 되면 꼭 가실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라고 말씀드렸다. 결국 6시 넘어 전편 결항이 결정되었고 할머니께 묵으실 곳이 있나 여쭈어 보니 부산에는 아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를 떠나 육지를 밟아 보시는 거라 하셨다.
집으로 모시면 좋겠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집 근처 모텔로 모시기로 했다. 혼자 산다고 하시고 자녀들에 대한 얘기는 없으셨다. 얘기를 나눠보니 참 성격이 깔끔하시고 신세지길 싫어하는 것 같았다. 가장 깔끔해 보이는 곳으로 정하고 할머니랑 같이 올라가 카운터 가까운 곳으로 방을 정하고 부축하여 들어갔다. 다행히 꽤나 넓고 환하고 깨끗해서 안심이 되었다.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이동하긴 어려운 상황, 할머니께서는 김밥을 좋아하신다고 그것만 사다주면 된다고 하셨다.
김밥과 국물을 사서 할머니께 드리고, 내일 모시러 온다는 약속과 함께 전화번호를 남기고 왔다. 전화를 해보니 편안하고 밝은 목소리로 아무 문제 없다고 하셔서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을 보니 비행기 이착륙에 문제없을 것 같았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공항에 전화를 걸었다. 전날의 전편 결항으로 익일에는 임시 운항편이 생성되었고 다행히 수학여행 단체가 126명이라 그 편에 한 분을 모실 수 있었다. 일단 예약을 하여 자리를 확보하고 출근 시간보다 일찍 할머니를 모시러 갔다.
할머니는 전화를 받고 미리 내려와 모텔 앞에 앉아 계셨다. 운전하면서 공항에 전화를 걸어 도착시간에 맞춰 휠체어를 준비하게 하고 도착하여 원래 예약 발권해두셨던 항공사로 가보았다. (이왕이면 발권해두신 항공사로 탑승하시는 게 편하실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전 날 항공편 결항으로 오전 편 모두 만석으로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장애4급이었고 복지카드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다행히 아침 일찍 임시편에 좌석 하나를 확보해둔 상황이라 걱정없이 우리 비행기로 모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수차례 하시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건강을 기원하며 내 자리로 돌아왔다. 할머니께서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주셨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호의라며 내내 고맙다고 하셨다. 크게 해드린 것이 없는데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하는 할머니 전화에 코 끝이 찡해지며 더 잘해드리지 못한 점이 걸렸다.
며칠 뒤 제주도에서 주소를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과일 상회 주인인데 돈을 받았으니 무조건 주소를 말하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주소를 말하고 이틀 뒤 한라봉 한 박스를 받았다. 할머니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받아 내심 맘에 걸렸지만 잘 먹겠다는 감사의 전화를 드렸다.
“난, 잊을 수가 없어요. 나 태어나서 이렇게 고마운 분 처음이에요.”
사실 친정 엄마와 동갑이시라 호칭은 내내 어머니라고 불러드렸는데 할머니처럼 작은 호의에도 이처럼 크게 감사하시는 걸 보고 오히려 내가 더욱 감사했다. 지금도 처음 가보았던 모텔 앞을 지날 때면 문득 떠오르는 할머니!
“남은 여생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