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공신인 하나인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고려의 신하인 맹희도 아들로,
맹희도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는데 반대해 온양으로 귀향을 오게 됬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젊은 맹사성은 재능은 있지만 그 재능을 쓸수 없었고 출세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학문을 하는걸 금했기 때문에
그는 가출하여 한양을 헤메고 다니다 한 봉사 점쟁이의 제자가 됬습나다..


그 점쟁이는 앞은 못보지만 굉장히 점을 잘보는 신기가 있었는데
그는 맹사성이 벼슬할 복이 있다면서 자신의 제자로 삼았습니다..

맹사성이 그를 잘모시자 어느날 점쟁이가 맹사성에게
이상한 일을 시켰습니다..

그는 오늘 밤 마을 공동묘지로 가면 누군가가 장례를 치르고 있을테니
기다리다가 장례가 끝나면 시신을 업고 오라는 것이 였습니다..

담이 쎈 맹사성은 스승의 말을 따랐고 밤에
공동묘지에 가서 머리를 묘속에 숙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밤이 이슥해진 후에 한 대여섯이서 묘지로 오더니만
상여에서 관을 들어내서 조용히 장사를 지내는 것이 였습니다..
그후 그들이 사라지자 봉사가 시키는 대로 묘를 파고는
관을 하지도 않고 비단에 뚤뚤 말아 싼 시신이 있길래 그대로 몰래 업고 왔습니다..

그가 시신을 업고 오자 봉사가 이 시신을 을 안아 품고서 아랫목에
드러누워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맹사성이 시신을 안고서 아랫목에 가만있었는데
그후 몇시간이 지나자 점쟁이는 맹사성에게 비단을 헤치고
시신의 가슴에 손을 넣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맹사성이 비단을 치우자 뜻밖에도 시신은 아리 따운 처녀 였습니다..
처음엔 망설임이 있었지만 시신의 가슴에 손을 대니 조금씩 심장이 뛰는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후 몇일이 지나 처녀는 소생 했는데
그녀는 이웃마을 염부자의 집의 딸로 열병에 걸려 의식을 잃었었다고 얘기 하는 것이 였습니다..

점쟁이는 어느날 점을 쳐보니 그 처녀가 죽지도 않았는데 생매장 당해 죽을껄 알고는
제자를 시켜 그녀에게 음양이기를 조화시켜 소생 시킨 거라고 얘기 했습니다..

처녀는 처음엔 당황스러 웠지만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자신을 안은 남자인
맹사성에게 자연스럽게 정이 갔습니다..
이후 몇일간 맹사성이 그녀를 계속 보살피다 보니 서로에게 정이 가는건
당연한 이치 였죠..

결국 이일은 쳐녀의 집안에서도 알게 됬고 맹사성이 묘를 파서 아이를 살렸지만
몸을 다 베려 놨으니 어쩔수 없이 맹사성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부자 집인 시댁의 도움으로 맹사성은 공부를 계속 할수 있었고
27세의 나이에 문과에 장원 급제 했습니다..

아버지 맹희도는 고려를 망하게 한 조선에 의탁한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지만
며느리가 직접 찾아가 지극 정성으로 모시자 그제서야 아들을 용서하긴 했지만
그리 사이가 좋진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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