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의 아이들
<논산·관촉사>
고려 제4대 광종 19년(968). 지금의 충남 논산군 은진면 반야산 기슭 사제촌에 사는 두 여인의 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고 있었다.
『아니 고사리가 어쩜 이렇게도 연하면서 살이 올랐을까요?』
『정말 먹음직스럽군요. 한나절만 꺾으면 바구니가 넘치겠어요. 호호….』
두 여인은 정담을 나누며 고사리 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산중에 웬 아기 울음소리일까요?』
『글세 말이에요, 어디 한번 가볼까요?』
『그러지요.』
두 아낙은 어린아이 울음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어린아이는 보이지 않고 갑자기 땅이 진동하면서 눈앞에 거대한 바위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에그머니나, 이게 무슨 조화람.』
『큰일났어요. 빨리 마을에 내려가 관가에 알립시다.』
신비롭고 괴이한 풍경에 놀란 두 아낙은 황급히 마을로 돌아와 관가로 가서 고을 원님께 이 사실을 고했다.
『거참, 괴이한 일이로구나.』
이야기를 다 들은 원님은 나졸들을 보내어 사실을 확인했다. 이 소문은 곧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임금은 조정 대신들을 불러 이 일을 논의했다.
『상감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는 필시 하늘이 내려주신 바위일 것이니 불상을 조성하여 예배토록 함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러하심이 옳을 듯하옵니다.』
조정 대신들의 의견이 한결같자 임금은 명을 내렸다.
『금강산 혜명대사를 모셔다 그 바위로 불상을 조성토록 해라.』
혜명대사는 1백 명의 석수를 이끌고 바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위를 본 순간 스님은 잠시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음, 예사 바위가 아니로구나. 후세불인 미륵불을 대형으로 조성하여 세세생생 이 민족의 기도처가 되도록 해야지.」
마음을 굳힌 스님은 작업을 지시, 대역사를 시작했다.
석공들은 솟아오른 큰 바위로 부처님 전신을 조성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님은 그 바위에 부처님 전신을 조성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님은 그 바위에 부처님 하반신을 조각토록 했다.
『스님, 이 바위도 큰데 얼마나 큰 부처님을 조성하실 건가요?』
석수들이 의아한 듯 연방 물어오나 스님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부처님 하반신이 조성되자 혜명 스님은 그곳에서 약 30리쯤 떨어진 이웃마을 연산면 우두굴에서 큰 돌을 옮겨와 다시 머리와 가슴 부분을 조성했다. 이때 동원도니 역군은 무려 1천 여 명. 정으로 쪼고 갈고 깎아 부처님 조성하기 여러 해가 바뀌면서 웅장한 미륵불상이 완성됐으나 세 부분으로 나눠진 부처님 몸체를 맞추는 일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다. 웬만한 무게라야 들어올릴 텐데, 신통한 묘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궁리에 골몰하던 혜명 스님이 사제촌 냇가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오더니 흙으로 삼등불상을 만들어 세우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심코 바라보던 혜명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옳지」하는 탄성을 발했다.
아이들은 먼저 평지에 미륵불상을 세운 다음 그 주위를 모래로 경사지게 쌓아놓고 가슴 부분을 굴려 올려서 맞추어 세우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혜명 스님은 곧장 작업장으로 달려가 공사를 지시하고 다시 시냇가로 왔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마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재미있게 떠들며 놀던 아이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는 혜명 스님 정성에 감탄한 문수보살이 스님에게 불상 세우는 법을 알려주려고 현신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삼등불상을 무난히 세워 미륵불이 완성된 때는 고려 제7대 목종 9년(1006). 무려 37년만에 높이 18.12.m, 둘레 11m, 귀의 길이가 3.33m나 되는 동양 최대의 석조불 은진미륵을 봉안케 도니 것이다. 그로부터 21일 동안 1.8m나 되는 미간의 백호 수정에서 찬란한 빛이 발하여 중국 송나라에 이르니 그곳 지안대사가 빛을 따라 찾아와 배례한 뒤 그 광명이 촛불 빛과 같다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했다 한다.
또 은진미륵이 완성된 지 얼마 후 북쪽 오랑캐가 쳐내려왔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던 오랑캐들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가사를 입고 삿갓을 쓴 한 스님이 나타나 태연히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길을 찾던 오랑캐들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가사를 입고 삿갓을 쓴 한 스님이 나타나 태연히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길을 찾던 오랑캐들은 『옳지, 저 스님을 따라가면 되겠군』 하면서 스님 뒤를 따라 강물로 뛰어들었으나 물 위를 걸을 수 없는 오랑캐들은 그만 모두 압록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부하를 잃은 오랑캐 장수는 화가 치밀어 다시 강을 건너온 스님을 칼로 내리쳤다. 그러나 장수의 칼은 스님의 삿갓 한쪽 끝을 스쳤을 뿐 스님은 어디 한 곳 다치지 않아 명장의 칼을 무색케 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스님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현신한 은진미륵이라 한다. 마치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도 관촉사 은진미륵은 3.94m의 큰 관의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꿰맨 자국을 볼 수 있다.
은진미륵은 보물 제218호.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관촉사는 몰라도 은진미륵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경내에는 미륵불 외에 보물이 또 한 점 있다. 우리낙라 석등의 기본형인 8각형과 달리 4각형 화사석에 불을 켜도록 만든 큰 기름단지 석등(보물 재232호)이 그것이다. 이 석등 앞에 5층 석탑이 있고 그 옆에 8엽연화 3개가 연가지에 달린 듯 실감나게 조각된 화강암 배례석이 있다. 이 배례석은 은진미륵 앞에 제물을 차리는 데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