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까마귀

<예산·향천사>

백제 의자왕 때다. 7척 키에 인물이 준수하며 범학에 뛰어난 보조국사 의각 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평소 반야심경을 늘 지송했다.


스님이 중국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잠자리에 들려던 혜의 스님은 밖에서 섬광이 일고 있음을 엿보았다.

『아니 이 밤중에 웬 빛일까?

놀란 혜의 스님은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창틈으로 엿보았다.

「저 곳은 의각 스님 방이 아닌가.

이때 의각 스님은 방에 단정히 앉아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간밤에 내가 눈을 감고 반야심경을 백 번 외우고 눈을 떠보니 사방벽이 뚫린 듯 뜰 밖까지 훤히 보이더군요. 웬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만져 보았으나 벽과 창이 모두 달려 있어 다시 앉아서 경을 외웠는데 역시 뜰 밖이 보였습니다. 이는 반야의 부사의한 묘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이때 혜의 스님이 일어나 간밤에 본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 후 의각 스님은 더이상 중국에 머물 것이 아니라 고국에 돌아가 불법을 널리 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 포교의 원력을 세운 의각 스님은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석불상 353위와 삼존불상을 모시고 지금의 충청도 예산 땅에 도착했다.

스님은 모시고 온 불상을 봉안키 위해 명당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황금빛 까마귀 한 마리가 스님의 머리 위를 맴돌면서 「까악까악」 울어댔다.

『오 -, 네가 절터를 안내하겠단 말이지. 그래 내 따라갈 터이니 어서 앞장서거라.

스님의 말귀를 알아차린 듯 까마귀는 서서히 날기 시작했다.

얼마 후 까마귀는 덕봉산 기슭에 내려앉았다. 스님은 그 자리에 절터를 닦기 시작했다.

어느새 인근 마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중국에 다녀오신 큰스님이 우리 마을에 절을 세우고 3청불을 모신다지요?

『우리 마을의 경사가 아니고 뭐겠어요. 작은 힘이지만 우리 모두가 뜻을 모아 법당이 속히 완성되도록 불사에 동참하도록 합시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도 정성이 담긴 시물을 의각 스님에게 전했다.

어느 날 아침, 떠꺼머리 총각이 의각 스님을 찾아왔다.

『아직 이른 시각인데 어쩐 일로….

『벌써부터 스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시물을 마련치 못해 망설이다 오늘 용기를 내어 이렇게 빈손으로 올라왔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흙을 파내고 나무를 나르는 등 불사를 돕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참으로 고맙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란 시물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라오. 나를 만나고 싶고, 법당을 세우는 이 현장에 오고 싶은 그 마음엔 벌써 불심이 가득했으니 부끄러워 말게나.

『스님, 제게는 몸져누워 계신 노모님이 계십니다. 이 몸 장가도 들지 못하여 변변히 모시지 못하니 불효가 큽니다. 법당이 완성되면 제 모친의 병환이 속히 완쾌되길 부처님께 간곡히 기도 올리려 합니다.

『그대의 효심이 그리 장한데 어찌 기도가 성취되지 않았소.

스님은 그 총각에게 반야심경을 수지독송토록 일러줬다. 종일 일하면서 한줄씩 외우기 시작한 것인데 어느새 총각은 반야심경을 줄줄 외우게 됐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 머리맡에 앉아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병환에 차도가 있길 기원했다.

법당 낙성식이 거행되는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새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새 절로 향했다. 떠꺼머리 총각도 그날은 깨끗한 옷으로 몸을 단정히 하고 어머니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올렸다. 그때였다.

『얘야, 나 좀 일으켜다오. 나도 법당 낙성식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싶구나.

『어머님, 아니 됩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저 혼자 다녀오겠어요.

『아니다. 이상스럽게 오늘 아침 몸이 아주 가볍구나.

어머니 청에 못 이겨 아들이 손을 내밀자 총각의 어머니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거뜬히 일어났다. 떠꺼머리 총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머님, 부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부둥켜안고 울던 모자는 3월의 햇살을 받으며 낙성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길을 걸어 갈증을 느낀 노파는 법당 옆에 있는 샘물을 마시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들에게 물을 권했다.

샘물에서는 전날과 달리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이를 확인한 스님은 그날 낙성식에서 절 이름을 향천사라 명했다. 그리고 덕봉산은 금 까마귀가 안내했다 하여 금오산으로 고쳐 불렀다.

훗날 마을 사람들은 의각 스님이 처음 배를 댄 곳을 배논이라 불렀고, 스님이 타고 온 배가 포구에 닿았을 때 어디선가 한밤중에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 하여 마을 이름을 종성리라 명했다. 또 그 바닷가는 석주포라고 했으며 황소가 돌부처를 실어 나른 후 바위 옆에서 크게 소리치며 쓰러져 죽었으므로 절 입구의 바위를 고함바위라 불렀다. 지금도 향천사 극락전에는 1,053위의 부처님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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