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부학 <시어머니, 시어머니>를 그리다보
             나에겐 생각지도 않게 엄청난 이야기 자료가 노트에 수북이 쌓여져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려도 끝나지 않을 만큼 많은 스토리다.


인간이 사는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나라가 있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이란 땅덩어리에서의 시어머니, 며느리 얘기는
             유별나게도 끝도 한도 없이 생산되고 있다.
             무슨 연유에서일까?
             우리네 민족성의 독특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혈육관계 때문은 아닐까?
             이 시리즈가 거의 100회를 넘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 해답을 확실하게 제시할 수 없다.
             무한정 그리다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해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쉼표 없이 그려나간다.


소재가 많다보니 그리는 나는 즐겁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리 즐겁게만 생각할게 될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씁쓸한 기분도 든다.
           그리 유쾌하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중에는 고부갈등, 시련, 원망, 복수, 앙갚음 같은 
           냉혹한 이야기가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혹자는 나에게 가혹한 이야기를 던질 때도 있다.
           - 왜 고부갈등을 부채질만 하는가?
           - 당신 이야기가 아닌가?
           - 나쁘게만 비하하지 말라.
           - 작가의 편협된 사고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독자로써는 당연한 항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다보면 도덕교과서처럼 선의의 이야기만 골라서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재미가 없다.
           아니, 재미보다는 거짓얘기로 비화될 수가 있다.
           인생의 이야기란 갖가지 삶의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고부간은 의외로 많이 있는 현실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 문제가감 없이 솔직히 들춰내는 것이 작가의 할 일이다.
           그럼으로써 나름대로의 해결책도 자연히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이 시리즈 '시어머니'전체가 그런 불유쾌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가슴 뭉클하고 눈물겨운 이야기들도 섞여있다.
           그것으로 나는 스스로 위안을 받으며 또 다른 의욕으로
           오늘도 그려나간다.


오늘은 모처럼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오래전에 내 블로그의 이웃지기 한분이 보내 온 사연이었다.
            내가 스스로 그린 그림인데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박수를 치고 싶어 죽을 뻔 했다.
            바보처럼...
            그래, 바보라도 좋다.
            바보의 가슴 한편에선 갑자기 뭉클하게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얼마나 시원하고 멋진 며느리인가?
            저런 며느리라면 세상에 '고부갈등'이란 단어자체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짝짝짝!
            여러분도 나와 같이 바보(?)가 되자.  -강인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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