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는 태양을 사랑했습니다. 항상 온세상을 따스하게 비춰주는 태양을 너무나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고 자신이 없는 그림자는 고백은 커녕 태양을 바라볼 수 조차 없었습니다. 언제나 해가 하늘에 환하게 떠있어도 그림자는 햇빛을 피해 숨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은 모두 새까맣고 어둡지만, 해는 언제나 눈부시게 빛났기 때문에 해가 자신을 싫어 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 태양도 그림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아니, 전혀 보려고 하지도.. 볼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해가 고개를 돌리면 그림자는 몸을 재빠르게 숨겼기에, 태양의 따스한 빛줄기가 그림자가 진곳에는 닿을수 없었습니다. 그림자는 햇빛과 비슷한 빛이라도 느껴지면, 얼른 몸을 움츠려 숨겼습니다.
한낮에 해가 점점 높게 뜰수록, 숨어있는 그림자의 몸은 그 빛에 점점 타들어가며 작아져만 갔습니다. 몸이 타는 고통도 그림자에겐 작은 기쁨이었죠. 해가 바로위에 높게 뜰때면 그림자의 몸은 거의 타버려서 작고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림자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 같았습니다.
태양의 온기가 실린 작은 바람을 이따금 느낄수 있는것으로 만족해 했습니다. 해가 나를 모른다 했어도 그저 사랑했습니다. 감히 내가 바라보지 못했지만 마냥 좋았습니다. 자기처럼 태양을 사랑한다는 해바리기의 그림자가 될때면, 해바라기의 큰 잎사귀 뒤에 숨어 몰래 눈물을 흘리가도 했습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바라볼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따듯한 햇볕을 맘껏 쬐일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자는 그런 해바라기가 무척 부러웠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해도 가끔 해바라기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기도 했었죠. 그럴때 마다 그림자는 좋아서 몸부림치는 해바라기를 따라 몸을 흔들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저녁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면 그림자는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몸을 늘려서 떠나는 태양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하지만, 해는 그런 그림자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고 의식도 못한채 바쁘게 가버리곤 했습니다.
해가 지고 나면, 그림자는 아주아주 커져서 해가 떠나간 세상을 대신 덮어 주었죠. 햇빛이 온 세상을 덮으면 밝고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덮은 세상은 암흑뿐이며 서늘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어두운 밤이 싫어서 불을 켜고 그림자를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림자는 더욱 해와 자신이 멀게 느껴져 또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혹시라도 저 반대편에 있는 해가 들을까봐 소리없이 흐느껴 울었죠. 그러다가 밤하늘의 별들이 해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대며 몸을 반짝거리면, 그림자는 울다가도 그 이야기에 귀기울였습니다.
해의 행복한 소식을 들을때면, 그림자는 너무나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소식을 들을때면,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아파 더욱 새카맣고 어둡게 세상을 덮어 버리곤 했죠. 달이 환한 밤에는 혹시 해의 작은 빛줄기인가 하고 놀라, 희미한 빛들 조차 피해가며 새카만 몸은 조금 움츠려 보기도 했습니다. 또 밤의 가로등 불빛, 자동차 불빛, 간판의 불빛 등에도 그림자는 깜짝깜짝 놀라서 숨고는 했죠.
불타는 태양의 모습을 닮은 해바라기도, 햇빛을 닮은 다 른빛들도.. 모두 그림자를 슬프고 힘들게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해에 대한 애정이 커져만 가는 그림자는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거든요. 지금.. 오늘 밤에도 그림자는 어딘가에 있을 태양을 그리워하며 온세상을 조용히 덮고 있습니다. 내일도 해가 무사히 떠오르기를 기도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