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편치 않은 마음으로 신립을 내보내고 나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작은 사위인 이항복을 들어오게 한 다음에 "자네 근간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 줄 수 있겠나?"
마치 부처님이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듯이 얼러대니
낙천가이며 앞뒤가 꽉 막히지 않은 이항복은 대번에 권율 장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빙장께 말씀드리기는 심히 송구스러우나 얼마 전에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희안한 일을 겪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려도 될런지요?" "아무렴 되고 말고 그야 여부가 있겠나."

이렇게 하여 말문이 트인 이항복의 이야기에 의하면ㅡ
이항복도 거의 같은 시기에 나름대로의 볼 일을 끝내고 귀가하던 중에 비를 만나게 되어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심정으로
가까운 주막에 찾아들어 주모가 이끄는대로 방에 들어가 여독이 적당히 밀려와 누워서 편안히 쉬는데
주문을 받아야 할 주모는 오지를 않고 누군지 모를 한 여인이 말도 없이 들어오는데 세상에나!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너무 개성있게 생긴 여인이라 깜짝놀라 바라보는데도
이 여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누워있는 이항복의 곁에 다가와서 엉뚱한 행동을 하더랍니다.  

은근슬쩍 호기심이 발동한 이항복이 하는 꼴이나 두고 보겠다는 심정으로 모른 척 하고 있으려니
점점 더 대담해지는 이여인은 장족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는 이항복의 몸을 더듬는 건 기본이요
바지까지 벗기고 자신도 치마를 벗더니 오만의 극치가 아닌 요상의 극치를 떨더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이항복 자신에게는 전대미문이며 전무후무할지도 모를 황당무계하리만큼 요상한 일을 겪으면서도
초지일관으로 그냥 모른 척 했더니 얼마동안 요상의 극치를 달리고 달리던 개성있는 얼굴의 이 여인은 잠시 행동을 멈추는 가 싶더니
혼잣말 비슷이 "바로 이런 거 였구나." 이 한 마디를 남기며 봄바람에 눈녹 듯 제풀에 사그라드니
그 길이 바로 극락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이제 이항복은 큰 일 났습니다. 단 둘이 있는 밀실에서 파트너가 유언도 안 남기고 사망했으니
졸지에 살인자의 누명을 덮어쓰게 되었습니다.
이건 뭐랄까, 증명도 안되고 반박의 자료도 없으니 도저히 빠져 나갈 길이 없었지요.
잠시 정신을 가다듬어 상황을 정리한 이항복이 주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에 어색하고 쑥스럽기는 하지만
바로 조금 전의 일을 설명하니 거기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이항복에게 참으로 좋은 일을 했다고 반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에 오히려 더 놀란 이항복이 무슨 영문이냐고 반문을 했더니
그 마을에서는 제법 어른인 듯한 사람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으니 그 내용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문제의 그 여인은 너무 지나치게 개성이 강하게 생겨서 동네 남정네들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는 잠시 머물다 가는 과객까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자꾸 흘러가서 혼기도 놓치다 보니 정말 볼품없는 신세가 되어
이제는 죽기 전에 단 한 번 만이라도 남자를 가까이 하고 싶었었는데도 하늘도 무심하시지 .
아니 이 세상의 남정네들이 한결 같이 무심하지.
아니 그래, 죽은 사람 유언도 들어주는 판인데 살아 있는 여인의 소원 하나도 못들어 주는감.
그러던 차에 뜻하지 않은 이항복의 출현으로 이제서야 처녀귀신을 면하고 극락으로 갔으니
이 얼마나 좋지 않다고 아니 할소냐가 되었다는 겁니다.

멋적은 웃음을 띄우며 남자들끼리의 세계에서는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머시기가 있지 않느냐는 표정을 짓는 작은 사위에게 권율 장군은 나무라지도 않고
" 여인의 평생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정말로 좋은 일을 했네." 하며 격려아닌 격려를 하면서
'항복이 저 녀석의 얼굴에 있던 요상한 기운을 그 여인이 죽으면서 몽땅 가져 가서 저 녀석의 신수가 환해졌구만.
그러면 그렇지. 세상 일에는 결과가 있기 전에 원인이 있는 법인데 앞으로 항복이는 잘 풀릴테지만 신립이가 문제로군'
꼭 그래서 그런건 아니었겠지만 결국 신립은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 왔고 이항복은 승승장구했지요.

여러 해가 지난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군의 선봉부대가 정발 장군이 지키는 부산진성과
송상현 장군이 지키는 동래성을 차례로 격파하며 여세를 몰아 문경 새재로 가는 방향에 놓인 일련의 성들을 무너뜨릴 때
새재의 관문을 지키던 신립 장군이 고심하던 끝에 새재의 사수를 포기하고
충주의 탄금대로 물러서서 배수진으로 결사항전을 하고자 했을 때 처음 보는 스님이 나타나서
"장군께서는 탄금대로 물러서지 말고 새재의 관문을 지키는 게 훨씬 유리할 것이오."
극구 타이르고 설득했으나 신립이 말하기를
"우리의 군세는 미약하여 사방이 열린 곳에서는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 갈 궁리를 할테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탄금대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용기백배할 것이오."
끝내 스님의 권유를 무시하고 탄금대로 전선을 물리었고
오래지 않아 문경 새재의 입구에 다다른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주변의 산세를 바라보니
우측에는 주흘산이 버티고 있고 좌측에는 조령산의 연봉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가히 천험의 요새라,
주흘산과 조령산의 협곡에 매복해 있다가 쳐들어 오는 적을 맞이한다면 일당백의 기세니 잠시 진군을 멈추게 하고
척후병을 내보내 정세를 살펴보게 했지만 이미 탄금대로 후퇴한  조령은 텅 비었지요.
그래도 신중한 고니시는 자신이 직접 살펴보며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매복은 없다.
이런 요충지에 군사를 매복시키지 못하는 조선을 공략하는 건 시간문제다. 이제 조선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렇게 자신의 군대를 독려하며 탄금대로 진격하여 배수진을 치고 있는
신립 장군의 군대와 일전을 벌여 전원 몰사 시키고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하였지요.
신립 장군이 이끄는 군사가 새재를 지키고 있었더라면 왜군의 진격속도를 한참 늦출 수 있었다는 후세 역사학자의 의견입니다.  
중요한 고비에서 길게 버티지를 못하고 많은 군사를 살상시킨 탄금대 전투는
가뜩이나 모자라는 조선군사에게 전의를 상실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많은 교훈을 안겨준 잊을 수 없는 전투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