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소화라는 아름다운 궁녀가 살았답니다.
소화가 어떻게 궁녀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복숭아빛 뺨에 앵두빛 입술을 가진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소화가 어느날 임금님의 눈에 띄게 되었지요. 그녀의 고운 자태에 취한 임금님과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된 소화는 빈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고, 궁궐의 한 곳에 처소가 마련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날 이후로 임금님은 소화의 처소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시샘한 후궁들이 임금님의 사랑을 빼앗길까봐 계략을 꾸몄던 게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소화는 이제나저제나 임금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안타까운 세월만
흘러 갔습니다.
행여 임금님이 자신의 처소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담장 옆을 서성이거나
혹시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까 하여 귀 기울이며 날이 새는지도 몰랐습니다.
소화는 매일같이 담장 너머로 임금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다 점점 여위어 갔지요.
결국 어느 무더운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하룻밤 사랑으로 임금님을 그리다 죽어간,
임금님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소화의 장례식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구중궁궐 속에서 외롭게 죽어간 소화는 한 많은 생을 마감하면서
"담장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 라는
애절한 유언을 남기게 되었죠.
이듬해 여름 소화가 살았던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여인의 한을 담은
주홍색의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피어났지요.
임금님이 오시려나 조금이라도 멀리 밖을 보려고 더 높은 곳으로,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까봐 꽃잎을 더 넓게 펼친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능소화였답니다.
능소화는 언제나 담장 너머 귀를 내밀듯
늘 담장 너머로 꽃을 내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