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린놈이 가엾다고 생각한다면, 그놈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아들이면 어쩌지?"
벼리는 너무나 확고하게 배 속의 아기가 딸이라고 단장한 채 발언하는 사곤에게 되물었다. 그깟 게 무슨 문제람? 그가 아주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상관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사내끼리도 혼인하니까. 남처(男妻)로 삼으라고 해."
"뭐, 뭐라고?"
"저런, 아직 몰랐단 말인가? 명색이 으뜸 태주이면서? 너 말이지, 우리 단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어. 대체 내가 처음에 너 아사벼리를 보고 반한 이유가 무어라고 생각하나?"
"설, 설마...... 너, 그때...... 나를 사내라 생각하고......?"
벼리의 얼굴이 슬슬 분노로 시뻘게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너 정도의 사내라면 남첩 삼아 평생 끼고 살 만하다 내 생각했지. 그럭저럭 사내 녀석 안는 맛도 각별하거...... 으악!"
"이, 이! 죽어버려엇!"
겁도 없이 나불거리다가 마침내 제대로 날벼락을 맞았다. 그 순간, 사곤은 격노한 아내의 발길질에 채여 보기 좋게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길로 서옥으로 쫓겨났다. 한동안 벼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582~5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