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호봉(臥虎峰)이 된 호랑이」 

옛날, 와호봉 기슭에 자리잡은 어느 마을에서 연희라는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어머니와 둘이서 나물을 캐러 산에 갔던 연희는 광주리에 가득하게 나물을 채우고는 이마에 배어난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잠시 쉬고 있었다.  
연희의 눈 앞에는 노란 꽃이 한아름 피어 있었다.
“엄마, 저 꽃 좀 봐요. 너무나 고와요!
연희가 꽃을 꺾으려고 가까이 가 보았더니 빨간 꽃과 하얀 꽃들도 여기저기에 피어 있었다.  

연희가 꽃들 사이를 누비며 이 꽃 저 꽃을 꺾고 있는데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 여기에 웬 호랑이 새끼가 있지?
검은 줄이 쳐진 노란 새끼호랑이 한 마리가 연희를 올려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연희가 호랑이 새끼를 안고 가자 어머니가 놀라며 말했다.
“아니, 얘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걸 가지고 왔니?
“왜요? 엄마”
“새끼를 가져가면 어미 호랑이가 찾아와서 해코지를 한단다. 어서 원래 있었던 데다 갖다 놓아라”
“하지만 이걸 좀 봐요. 젖을 먹지 못해서 빼빼 말랐어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너무 불쌍해요”
“정말 그러네. 어미가 사냥꾼에게 잡혔나 보구나”
“엄마, 집에 가져다가 길러요”
두 모녀는 새끼 호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어미의 젖 대신 콩물을 떠 먹이면서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연희는 잠을 잘 때도 곁에서 함께 자게 할 정도로 새끼호랑이를 귀여워했다.  
「호돌이」라고 이름도 지어 주었다 
연희가 “호돌아” 하고 부르면 얼른 알아듣고 달려오고는 했다.
작은 새끼 호랑이었던 호돌이가 제법 크게 자랐을 때, 연희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집에는 연희와 호돌이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마을의 부자가 불쑥 연희네 집에 찾아왔다.
“네 어머니가 살았을 때 내게 진 빚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아무래도 네가 갚을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대신 우리 집에 와서 잔심부름이라도 해야겠다” 라고 말하고 휑하니 가버렸다.
“호돌아, 이젠 우리 둘이서 같이 함께 살 수가 없단다. 내가 커서 살 곳을 만들게 되면 그 때 다시 함께 살자”
남의집살이를 하게 된 처지여서 호돌이까지 데리고 갈 수 없게 된 연희는 슬퍼하면서 말했다.
그 후, 연희와 호돌이는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샘터나, 밭에서 이따금 만날 수는 있었다

세월은 흘러 연희는 어느덧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고, 호돌이도 제법 늠름한 호랑이 티가 나게 되었다.  연희는 같은 마을에 사는 더벅머리 총각을 사랑하게 되었고, 호랑이도 그것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흑심을 품은 부잣집 주인이 연희의 방에 몰래 들어와 그녀를 범하려 했다.
“아앗, 저리 비켜요!
깜짝 놀라며 저항하던 연희는 베고 있던 목침으로 그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치고는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신 없이 뛰어서 산기슭까지 온 연희는 그만 기진맥진하여 쓰러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새벽녘쯤 되었을까?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연희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호랑이가 옆에 앉아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  

연희는 너무나 반갑고 서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호랑이는 갑자기 자기 등을 꼬리로 치면서 연희에게 타라는 시늉을 했다.  

연희가 의아해 하며 등에 타자 호랑이는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가더니 어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연희는 그 동굴에 머물면서 호랑이가 가져 다 준 것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 날 한밤중이 되었을 때 난데없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으응?
연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더벅머리 총각이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  

연희는 너무나 반가워 말을 잇지 못했다.
“호돌이가 데려다 준거라오. 밤중에 갑자기 내 방에 뛰어들더니 다짜고짜 나를 등에 태우고 여기로 달려왔다오”
“아! 그랬군요. 역시 호돌이가 당신을 데려다 주었군요”
이튿날. 동이 틀 무렵이 되자 호랑이가 다시 동굴로 찾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옷자락을 물어 당겼다.
“으응?
“호돌이가 왜 이러는 거지?
두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자 호랑이는 또 자기 등에 타라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두 사람이 등에 타자 호랑이는 천천히 달려가 마을로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랐다.
호랑이는 곧장 부자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집 안은 썰렁했으며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호랑이가 전날 밤에 총각을 동굴까지 업어다 주고 다시 부잣집으로 가서 부자를 물어 죽이고 나머지 식구들을 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연희와 더벅머리 총각은 부잣집의 재산과 양식을 모두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 행복한 가정을 꾸며나갔다.
그 후, 호랑이는 항상 마을 앞산에 웅크리고 앉아 연희를 지켜주다가 그대로 굳어져 산이 되었는데, 그 산을 사람들은「외호봉(臥虎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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