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1)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龍門寺)의 은행나무 

수령은 1,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미터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皆骨山)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이 여러 번 불탔지만, 이 은행나무는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 하여 천왕목(天王木) 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世宗)때에는 정3(正三品)의 벼슬인 당상직첩(當上職牒)을 하사(下賜)받기도 한 명목(名木)이다.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 하며, 또한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1개 부러졌고 8.15해방과 6.25사변 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전설 2) 충남 태안 흥주사(興住寺)의 은행나무

 9백 년 전인 고려 때 어떤 노스님이 절을 지우려 온 산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태화산 기슭을 지날 때였다. 스님은 풀밭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흰옷을 입은 산신령이 나타나지금 네가 누워있는 그곳이야말로 부처님이 머무르시기에 알맞은 곳이니, 잊지 말고 표시해 두거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은 그 동안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꿈에서 산신령이 가리킨 자리에 꽂아두고는 그 자리에서 몇 날 며칠 동안 기도를 올렸는데 얼마 뒤 스님이 꽂아둔 지팡이에서는 은행나무 잎이 나기 시작했다.  몇 일 뒤 산신령이 다시 나타나자식이 없는 아낙네가 이 나무에 기도를 드리면 자식을 얻게 될 것이고, 그 자식들은 부귀영화를 얻게 돼 부처님을 영화롭게 모실 것이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스님은 이 곳에 절을 짓게 되자 마을 아낙들이 하나 둘 이 나무를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자식을 얻게 됐다. 나무로부터 생명을 얻게 된 아이들은 산신령의 말대로 부귀영화를 얻게 됐고, 바로 이 은행나무 앞에 절을 짓기 위해 재산을 내놓았다.
흥주사는 절 입구의 이 큰 은행나무에 기도를 드리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믿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네들이 자주 찾는다.
이 은행나무에서 얼마 전부터 나무의 내력을 상징할 만한 특이한 현상이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20m, 가슴높이 둘레 8.5m나 되는 이 은행나무의 4m쯤 높이에서 옆으로 퍼진 가지 하나에서 남성의 생식기를 꼭 빼어 닮은 유주(乳株)가 발달한 것이다. 이 은행나무의 유주는 젊고 혈기 왕성한 젊은 남성의 성기 모습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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