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사바위 이야기
원미구 도당동 춘의산 북쪽 절곡에 큰 바위가 둘 있다.
하나는 절바위이고 다른 하나는 장사바위다.
절바위는 이곳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하는데 그 절에는 빈대가 많아 중이 절을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절바위 앞에 장사바위가 있다.
옛날 어린 장사가 부평의 진산인 계양산에서 날아와서 오른 발 한쪽만이 바위를 밟고 소변을 본후에 관악산으로 날아갔기 때문에 장사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도 이바위 위에 어린이 발자욱 같이 움푹 괘인 자욱이 있다.
2) 세도가 서도라 이야기
조선시대 때 부평도호부 석천면 구지리(소사구 송내동이었다가 원미구상동에편입)에
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원래 구지리는 솔안말을 포함하고 있는 마을이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송내동은 솔안말을 한자로 옳긴 동명이다.
즉 솔은 한자로 소나무 '송(松)'이고, '안'은 한자로 '내(內)'이며 '말'은 마을의 준말이므로'동(洞)'이다. 이 마을에 이천을 본관으로 하는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이서씨는 본인이 직접 벼슬을 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의 조부가 지방관리 의 불법을 규찰하고 과시(과목을 시험함)를 맡아보던 종5품 도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도 이를 계승하여 마을에서 도사라고 불렀다.
그는 지역토호에다 성품이 포악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다 인근 전답은 거의가 그의 소유였다고 한다.
그는 소작인들을 못 살게 구는가 하면, 거기에다 심술도 대단하여 이웃집 소가 자기네 콩 밭에 들어가면 그 소를 죽이고 소값을 물어 주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날 이 마을에 남루한 과객이 찾아들었다.
고대광실 서도사의 집에 가서 구걸을 하며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그러나 서도사는 과객의 청을 들어 주기는 커녕 아래 것들을 시켜 곤장을 치게 다. 곤장 치는게 아주 서툴렀는지 아니면 주인 서도사의 행패로 시달림을 받은 종복 자신들의 분통이었는지 몰라도 곤장 몇 대에 과객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사회제도는 사농공상의 계급차가 엄격한데다가 토호들의 행패도 대단하였다.
죽은 사람이 비록 매를 맞아 죽었을 지언정 매장이라도 해주어야 마땅했다. 그래서 죽
은 자를 매장해주기 위때 염을 하려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이상한 것이 나왔다. 머슴
은 이것을 주인인 서도사에게 바쳤다. 이것을 본 서도사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즉시 하
인들에게 함구령 을 엄하게 내렸다.
그러나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데 하물며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소문이 나지 않
을리 없었다.
「서도사가 사람을 죽였데」,「죽은 사람이 암행어사란다」,「뭐 암행어사?」등···
소문은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인근에 쫙 퍼졌다.
서도사는 두렵고 무서웠다.
그는 생각다 못해 강화도에 있는 소실집을 전전하면서 피해 다녔다.
하지만 관아에서는 포졸을 풀어 그의 행방을 뒤쫓았다.
어느 때인지 모른다.
서도사가 강화로 가던 길이었는지 아니 면 그쪽에서 오던 길이었는지 모르나 강
화도 초지진에서 피살된 시체로 버려져 있는 것을 가족이 찾아 왔다.
그토록 심통 많고 욕심 많던 서도사는 객지에서 죽음으로 일생을 마쳤 는데 그가 죽
은 후 그의 집안은 망하기 시작하였다.
아래 것들은 서도사 가 살아서 부린 횡포에 대한 보복의 기회로 삼고 유족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어 죽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도사의 후손 중에 두 사람씩이나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켜 불우하게 살다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하며, 그 뒤 그의 손도 끊겨 버렸다.
생전에 후덕하지 못했던 서도사의 일생은 객지에서 죽음으로 끝맺고, 그 후손은 정
신 착란증을 일으키고 대마저 끊긴 비극을 가져온 것을 볼때 악한 자의 종말은 하늘
이 벌을 내린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