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국토, 금수강산인 우리 나라이지만 지리적인 여건은 늘 외침으로 인하여 시달림을 받아온 민족이다. 청일 전쟁만 해도 암담함을 안겨주었던 우리 역사의 한토막이아닐 수 없다.『뱅이섬의 전설』은 청^일전쟁이 치열하던 때의 이야기다.원북면에는 유명한 학암포 해수욕장이 있다.명사십리라 할 만큼 긴 해안의 모래밭은 여름이면 해당화로 장관을 이룬다. 탁 트인 앞바다에는 많은 섬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곱개의 섬이 있으니 이름하여『대뱅이』,『굴뚝뱅이』,『거먹뱅이』,『돌뱅이』,『수리뱅이』,『질마뱅이』,『새뱅이』라는 칠뱅이(七防夷)이다.모두 오랑캐를 방어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이 뱅이(방이=防夷)라는 이름이 지어지기 까지 그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자못 감동적이다. 이 이야기는 오랑캐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때의 이야기기다.더우기 우리고장 태안은 오랑캐의 침략으로 한동안 폐군이 됐던 역사적인 수난의 시기가 기록된 것을 보더라도 오랑캐의 행패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만 하다. 어느 해, 중국으로부터 수십척의 오랑캐 군함이 처들어 왔다.그들의 진로는 중국과 가까운 학암포였다.학암포는 원북면 방갈리 해변이며, 중국과 가까운 관계로 중국과 해상을 통한 교역이 성하였었다. 학암포 옆 마을에는 개시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이름도 중국과의 무역으로 인하여 시장이 열렸다(開市)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이 학암포에서 저멀리 수평선으로 아물아물 보이는 무수한 섬들 중에 위에서 말한 일곱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일곱 섬은 원래는 여섯 섬이었는데, 오랑캐와의 전쟁 때 새로 섬하나가 생겼기 때문에 일곱 섬이 됐고, 새로 생긴 섬이라 하여『새뱅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 전쟁의 상황으로 돌아간다. 오랑캐의 군사가 수백척의 전함을 이끌고 서서히 쳐들어오자 조정에서는 긴급 국방회의가 열렸다.그러나 평소 국력을 기르지 못했고 군사 훈련을 소홀히 한 조정은 오랑캐를 물리칠 묘책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임금은 탄식과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중신들에게 물었다. “싸워야 합니다.” “화해함이 어떨는지요?” 신하들은 강경과 온건으로 나뉘여 토론을 거듭한 결과 싸우자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고, 서둘러 군사를 모으고 전열을 정비하여 서해로 진격했다.하지만 수군(水軍)이 없었다.있다고 해도 잘 훈련된 청의 군대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의기양양한 오랑캐는 점점 학암포 앞바다에까지 와서 잠시 멈추고는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폭풍전야라 했던가, 적군이 하룻밤 잠잠하는가 싶더니 다음 날 새벽, 육지를 향하여 노를 저으면서 화약총을 쏘아대는 것이었다.벼란간 천둥이 치듯 하는 굉장한 폭음에 바다는 깨어났고 총소리는 섬들을 흔들었다.천지가 개벽하듯 바다는 온통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바로 그 때였다.대나무가 무성한『대뱅이』가 옆에 있는『굴뚝뱅이』를 불렀다.이『굴뚝뱅이』는 굴뚝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보게, 굴뚝뱅이.” “왜 그러나?” “총소리가 들리지.오랑캐가 쳐들어온 거야,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저놈들이 짓밟고 있어!” “무슨 소린지 알아.” ”우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렇구 말구!” ”우리 힘으로 적을 물리치세.” 이 소리를 건너편에서 듣고 있던 『거먹뱅이』가 말했다. “나두 한몫하겠네.” “나두!” “나두!” 『돌섬』도 『수리섬』도 『질마섬』도 자기들도 적을 물치는데 일조를 하겠노라고 소리쳤다. “고맙네.” “고마워.” 여섯 섬들이 전투준비를 위한 의논을 시작하려는데, 느닷없이 섬 하나가 남쪽으로부터 고속으로 다가오며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나도 한몫 끼워주시오.” 여섯 섬들이 놀라 쳐다보니 처음 보는 섬 하나가 둥둥 떠오며, 자기도 `나라가 위태로운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여러분들과 힘을 합하여 싸울 것을 각오했노라'고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장한 일이오.그런데, 노형은 어디서 왔소?” “나는 전라도 앞바다에서 왔습니다.” “반갑소.쌍수를 들어 환영하오.” 일곱 섬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통성명을 하고는 작전회의에 들어갔다.일곱 섬들이 적을 물리칠 계책은 금방 정해졌다. 대나무가 무성한『대섬』이 맡은 임무는 대나무를 흔들어 군기가 가득 펄럭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굴뚝섬의 임무는 굴뚝에서 불꽃을 뿜어 마치 군함이 진격하는 모양을하여 적군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수레섬의 임무는 군사들이 수레에 가득 타고 달려드는 것 같이 보이기 위해 수레를 가득 실은 군함으로 변장하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돌섬이 맡은 일은 주먹만한 돌을 적의 함대에 마구 날려보내어 마치 총알이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섬들은 크고 무섭게 보이는 전함으로 변장하여 적으로 하여금 겁을 먹게 한다는 것이 일곱 섬의 전략이었다. 적군은 일격에 우리의 국토를 손에 넣은 양 사납게 물살을 가르며 진격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괴변인가! 지금까지 섬으로만 알고 있었던 섬들이 섬이 아니고 모두 전함이 아닌가! 굴뚝에서 뿔꽃이 튀었다.대섬에서 깃발을 펄럭이며 소리치면서 달려들고 있었다.돌섬에서 쏟아져 나오는 돌들은 대포알보다 위력이 더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전함마다 수레가 가득 실렸고, 창검이 번득이고 있었다.그야말로 대군이었다.큰 전함은 가득히 대군을 싣고 전투태세를 갖추어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 큰일 났습니다.” 척후병이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 대장에게 보고했다. “적의 함대가 굉장한 위력으로 우리를 향하여 질주해오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적의 함대는 한 척도 없다고 보고한 것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잖느냐?” “하오나, 상황이 급박하옵니다.” 갑판에 오른 대장이 앞을 바라보니 흐끄므레 밝아오는 수평선으로 부터 그야말로 놀랍고도 남을 거대한 함정이 그것도 일곱척이나 몰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돌섬에서 쏘아대는 돌 총알이 눈앞에 핑핑 떨어지며 더러는 함대 위로 날아와 군사를 쓰러뜨려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었다. “복병이다.” “섬으로 위장한 적의 대 전함이다.” “승산이 없을 것 같습니다.” “후퇴하라!” 오랑캐의 함대는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후일 포로로 잡힌 오랑캐의 말을 빌리면, `그 때 그 섬들은 정말 군함과 똑 같았다'고 술회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 군사들이 학암포 해변까지는 왔으나 적의 전함이 모두 퇴각하고 없어 그를 이상히 생각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세계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무엇보다도 국가간의 교역이 성행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일본이나 중국이 바로 이웃이 됐다.무역선이 드나들고 색다른 문화가 우리에게 선보이게 됐다.개화의 눈이 트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과의 국교를 맺고 화친의 교역이 이루어지는가 했지만 그것만도 아니었다.이들 나라들은 우리나라에게 언제나 흑심을 품고 속국으로 삼을 방편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조정은 여기에 대처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쟁만 계속하고 있었다.정부는 부재하고 국민은 도탄에 빠졌다. 이런 틈을 탄 일본은 그 세력을 점점 확산하고 침략의 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학혁명이 일어났다.동학의 수장 전봉준은 나라의 부패와 관리들의 횡포에 항거하고 나아가 외세의 팽창을 거부했다. 1894년 동학군은 삽시간에 전국 곳곳을 점령하고 조정이 있는 한양으로 진격했다.당황한 것은 조정이었다.서둘러 군사를 보내어 동학군을 막으려 했지만 관군은 승리보다 패하고 도망가기가 일쑤였다. “이러다가는 동학군에게 전국이 함락될지도 모르겠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청국의 도움을 받읍시다.” 군관회의에서 얻어진 결론은 청의 도움을 받자는 것이었다.서둘러 청에게 원군을 청했다.그러나 이미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일본은 청의 군사가 원군으로 오는 것을 좋아할리 없었다.양국의 흑심은 결국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우리 국토를 제물로 그들의 세력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우리 백성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었다.구원의 요청을 받은 청은 좋은 기회라 여겨 당장 원군을 보냈다.원군의 명분이야 동학군을 진압한다는 것이었으나 그 속셈은 우리 국토를 넘보는 것이었다. 한편, 일본은 청의 군대가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서둘러 해군을 서해로 파병하기에 이르렀다.바다에서 전쟁을 일으켜 퇴각시킨다는 작전이었다.이런줄도 모르고 청의 군대는 수 십척의 전함을 이끌고 서해안까지 접근하고 있었다.그때 청의 군대가 상륙하려고 정한 상륙지점은 역시 학암포였다. 이것은 분명 망국의 조짐이었다.강대국의 양 세력이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흔들어 놓는다면 필히 우리는 그들의 속국에 불과한 위기에 처하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소국인 우리에겐 이들의 뻔한 속셈을 저지할 힘이 없었고,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들의 한숨만 더해갔다. 청의 군대가 학암포 앞바다, 그러니까 일곱 섬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잠잠 하던 대섬이 또 여섯섬을 불러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할 일이 또 생겼소.” “옳은 말이요, 우리의 국토를 저들의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소.” “쫓아버립시다!” “우리의 작전은 전과 동일하오.오랑캐를 물리쳤던 그 솜씨를 다시 한번 발휘합시다!” 일곱 섬이 전투준비를 마치고 적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윽고 청의 군함이 야음을 틈타 접근하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풍파가 일며, 굴뚝섬에서 시뻘건 불꽃이 내뿜어지는가 하면 수많은 돌멩이가 눈뜰 새도 없이 날아드는 게 아닌가? 그뿐인가 질마섬 병마의 말굽소리에 섞여, 군사들의 함성이 새뱅이를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복병이다!” “일본놈의 군대다.” “일단 후퇴다!” 청은 일본 군함이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으로 오인하고 선수를 북으로 돌려 달아났다.좋아라 한 것은 일본이었다.일본은 청의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는 이유를 알 리 없었지만 일본군이 무서워 달아나는 것이라 착각하고 그 뒤를 쫓았다.쫓기고 추격하고, 그들은 결국 경기도의 풍도 앞바다에서 접전했다.이 싸움이 유명한 풍도전쟁이었는데, 이 싸움에서 청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하마터면 육지에서 참혹하게 벌어질 청일전쟁을 바다에서 싸우게 한 결정적 역할을 일곱섬(七防夷)이 했다고 후세 사람들은 말했다. 한토막 전설이지만 이 이야기는 약소국가의 서러움과 애국의 길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칠뱅이는 관송팔경(貫松八景)으로 꼽히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지런히 서 있다. 또한 칠뱅이는 지금도 나쁜 무리들이 우리 국토를 넘보고 있지 않는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밤낮없이 오랑캐를 방어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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