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후살이었다...
새벽 별을 이고 방을 나서면... 내가 잠든 다음에야 돌아오셨던...
몸에서 항상 소금냄새가 났던... 고을 원님의 후살이었다...
어머니는 열 일곱에 나를 낳았고....
사람들은 나를 서출이라 불렀다....
황보윤이라는 나의 이름보다... 서출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지 이십 사년만에...
처음 아버지라고 불러본... 바로 그날......
그 분이 돌아가셨다...
많이도 원망했던 분인데.... 내 가슴에 그리 바람이 드나들었던 걸 보면...
나도 몹시 그분을 그리워했던 모양이야...
그 날 나는 처음으로 후회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것과...
내 마음도 들여다볼 줄 모르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너는 네 자신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느냐...?
반은 양반의 피를... 반은 천민의 피를 가진 나는...
...사람도 종도 아니었다...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의 밥을 먹고... 사람의 말을 하고도...
난 아버지나... 내 형제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 차라리.. 종처럼 땀냄새라도 풍기며 살고 싶었지만...
아무도 날 종으로 살게 허락하지도 않았다...
, 사람의 옷을 입혀놓은 개, 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난 더 이상 고분고분한 개처럼 살기 싫어 져서..
닥치는 대로 물고 뜯었다....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지..
한나절이면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 구년동안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는 오기와 독 밖에 없었다....
인적 없는 암자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를 달래고 키운 것은...
...나를 향해 휘둘러대던 목검 한 자루와...
거짓말처럼 내 눈물을 거두어간... 한 아이였다..일곱 살... 계집 아이..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하느냐?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 그 아이가 내 곁에 있지만...
나는 그 아이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다...
옥아... 나는... 니가 이 세상을... 무사히...
사람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허나, 너는 내가 한 발만 나아가기를 원하면 두 발을 나아간다....
사지에서의 그 한 발이 생사를 가늠한다는 걸 왜 모르느냐?
병법에도 물러설 자리를 살피고 싸우라 했다...
....넌 왜 항상 배수진을 치고 스스로를 백척간두로 몰아넣는 게냐...
....네게 통부를 반납하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만 상한 마음을 거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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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나를 힘들게 하지 마라..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거라

이럴 일이었다면 ...가겠다는 널 끝내 잡았어야 했다...
파직은...얼마든지 감당할수 있다...
...너만 내곁에 있어준다면...

굳이 애쓰지 마라...
부질없는 짓이다...
너를 이길로 들어서게 하는것이 아니었는데...
속절없는 회한만 드는구나...
내가 있거나 없거나...
너의 신산한 세상살이가 무에 달라지겠는가마는..
부디 살길을 도모해...나와 같은 인연을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채옥아.... 안된다.... ...죽지마라..! 명령이다...! 

...잘못된 것입니다... 바뀐 것입니다...
데려가신다면 이놈을 데려가십시오...

...이리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아직... 가슴에 묻은 말을.. 한마디도 못꺼냈어...
...채옥아.......내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애비가 죽고...어미와 오라비와도 헤어져...
아무런 희망도... 의미도 없이 살던 니가....
내가 있어... 한순간이나마 숨쉬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 않았더냐.
그 말을 듣고... 내 가슴이 얼마나 벅차게 뛰었는 줄 아느냐...
...,돼지보다 못한... 반쪽 양반 피에...
시래기죽이나 끓이며 손발이 부르튼... 후살이 어머니를 둔 나 또한...
무슨 희망이 있어 살았겠느냐....
...나도 그랬다....나도.... 니가 있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십오년이 흘렀구나....
...가지마라... 나는 아직... 너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
...들리느냐...... 옥아..... 가지... 가지마라....

니가 천인의 신분이 아니었더라도... 나를 혈육처럼 느낀다고만 하겠느냐?
, 니 부모도 아니고.... 또한 오라비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를 아끼는 사내일 뿐이다....

이제 ...더 이상은.... 날 위해 살지 마라....

...하늘을 거스르는 자의 칼은... 주인을 따르지 않는 법이다...

...살아있는 것이냐......
...다시 너를 보지 못한다면....나도 살아있는 목숨은 아니다....

...내가 비천해지면 된다...!
...가자....장성백을 잊을 수 있는...... 먼 곳으로 가자...
...어디든 가자......더이상 나를 속이며 살지 않을 것이다...
....서자로 돌아가도 좋다..! ..백정으로 살아도 좋다...!
... 너는... ...나로 인해 숨을 쉰다고 하지 않았더냐...
...나도 그렇다.......너 없이는... 내가 살지 못한다....

...너와.... 하나인 줄 알았다.......이런 날이....이런 날이 올 줄 몰랐구나...
....베거라.... ...나를 베서.... 너의 의지를 보이거라.......
그래야... 너와 장성백의 인연을 믿겠다....
...어차피... 한 사람은... 베야 한다.....
어서....

.......가거라.....
.........이제 나는...... 십오년 전 부르튼 발로..... 빗길을 걸어온
일곱살 짜리 계집 아이만을 기억하겠다...
재희라고 하던... ...그 아이만을 기억하겠다......가거라....

...거짓말처럼 내 눈물을 거두어 갔던 아이.....
.....일곱 살... 계집 아이... 지금 그 아이가 내 곁을 떠난다...
....그 아이를 위해...무엇 하나 해 준 게 없는데.......
....가거라.... .....가거라.... 훨훨 날아가거라......
...아무도....아무것도.... 너를 속박하지 않는 곳으로.....

..옥아.... 인연은 만날 때 묻는 것이 아니고.... 끝날 때 묻는 것인가보다...
...고맙다...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을 주어서....

.....나를 베고... 그 아이를 보내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청이다....

...저 아이의 목숨이.... 너의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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