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1.04.14 00:12 / 수정 2011.04.14 00:23


이철호
논설위원
일본이 그제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수준을 체르노빌급(級)으로 올렸다. ‘7등급’의 방사능 유출도 겁나고 ‘7등급’ 수준의 정보 은폐도 한심하다. 문제는 방사능보다 더 무서운 방사능 공포다. 뜬금없는 방사능 괴담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 이미 인터넷에는 ‘체르노빌 괴물’ 사진이 흘러 넘치고 있다. 길이 4m짜리 메기, 뱀만큼 굵고 긴 지렁이, 송아지만 한 끔찍한 쥐…. 징그러운 사진들 밑에는 “체르노빌 방사능을 맞아 돌연변이를 일으켰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있다. 사실이라면, 생각만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먼저 진실이 밝혀진 것은 괴물 쥐(위 사진)다. 중국 미술대학원생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모형으로 드러났다. 누가 엉뚱하게 ‘체르노빌 쥐’로 포장해 인터넷에 올려 퍼나르기가 시작된 것이다. 방사능 지렁이도 마찬가지다. 체르노빌이 아니라 원래부터 호주와 남미에 서식하는 자이언트 지렁이다. 보통 1m고, 최대 3m까지 자란다. 방사능 공포를 띄우느라 미술작품을 방사능 쥐로 둔갑시키고, 지렁이는 원산지까지 속인 것이다. 아무리 장난이라 해도 도가 지나쳤다. 그 바람에 동네 수퍼의 미역과 다시마까지 동났다.
체르노빌 괴물에 대해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는 “한마디로 대응할 가치도 없는 사진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여 년간 수많은 돌연변이 실험을 한 전문가다. 그는 “동물의 돌연변이는 일부 염색체에 이상이 생길 뿐, 모든 조직이 골고루 3~4배씩 커지는 경우는 발생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피폭 사태는 체르노빌이 아니라 원폭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서 일어났다. 이 교수는 “히로시마에서 키 5m 인간이 태어났는가? 나가사키에서 코끼리만 한 쥐가 발견됐는가?”라고 반문했다.

4m짜리 메기(아래 사진)의 진실도 정반대다. 민물고기 권위자인 중앙내수면연구소의 이완옥 박사는 “원래 체르노빌 주변의 드네프르강에 사는 대형 웰스메기의 하나”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스페인·영국 등에선 심심찮게 2~3m급 메기가 잡힌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1m가 넘는 토종메기 3마리가 발견됐다. 이 박사는 “최고 포식자인 메기는 남획되지 않고 50년 이상 자라면 당연히 몸집이 쑥쑥 커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체르노빌 메기 동영상에 함께 등장하는 잉어를 눈여겨보라고 주문한다. 보통 잉어보다 2~3배 큰 대어(大魚)다. 25년간 체르노빌 일대에 인간 출입이 금지되면서 물고기에겐 최고의 서식 환경이 제공된 덕분이다. 돌연변이라기보다 정상적 발육이라는 의미다. 이 박사는 “체르노빌 메기는 방사능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방사능 공포의 수혜자로 보는 게 훨씬 과학적”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체르노빌 괴물’ 사진들이 여과 없이 전파되고 있다. 몰랐다면 무식한 것이고, 전문가에게 확인조차 안 했다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가장 궁금한 대목은 누가, 무슨 의도로 괴담을 퍼뜨리느냐는 것이다. 광우병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천안함 사건, 방사능 공포까지 주기적으로 열병을 앓고 있다. 뜬금없는 동영상 하나에 온 세상이 뒤집어진다. 오래 전 찰스 매케이는 『대중의 미망과 광기』에서 “군중은 한번씩 집단적으로 미쳤다가 엄청난 비용을 치른 뒤에야 자각을 되찾는다”고 갈파했다. 우리 사회도 미망의 덫에 사로잡힌 느낌이다. 갈수록 집단적 광기의 주기는 짧아지고 진폭은 커지고 있다. 전문가 이야기는 씨알조차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이러다간 언제 그림 속의 시조새가 ‘체르노빌 참새’로 둔갑할지 모른다. 영화 속의 ‘고질라’까지 ‘후쿠시마 방사능 원숭이’로 몰리지 않을까 겁난다.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분간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는 게 힘인지, 모르는 게 약일지조차 헷갈리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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