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로부터 은인 처녀를 살린 두껍 능의 전설
지금의 분당 동 건너편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었는데 이 산의 이름이 두꺼비 능 산이다. 두꺼비를 갖다가 장사를 지낸다고 하여 두껍 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두꺼비를 묻게 되었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걸까?
그 유래에는 마음씨 착한 한 처녀와 두꺼비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아주 마음씨가 착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집안의 자식이라곤 이 처녀가 전부였기에 집안 일은 물론 농사일까지 부모를 도와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아주 성실한 처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밥을 짓기 위해 부엌으로 나갔는데 어디선가 두꺼비 한 마리가 들어와서 밥짓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녀가 저녁밥을 다 짓고 밥상을 차릴 때까지 두꺼비는 계속 앉아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처녀는 남은 밥 한 주먹을 두꺼비에게 주며 "네가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자 이 밥 좀 먹어보렴" 하면서 두꺼비에게 건네주었다. '그 동안 많은 집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렇게 마음씨가 고운 처녀는 처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두꺼비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달도 계속 두꺼비는 처녀의 집을 다녔고 그때마다 처녀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두꺼비에게 밥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기가 꽉 찬 처녀는 드디어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 동안 처녀가 베풀어준 따뜻한 정성을 잊지 못한 두꺼비는 자기 자신도 처녀가 가는 곳을 함께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내 결혼식이 끝나고 이웃마을로 가마 타고 가는 처녀의 뒤를 두꺼비도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처녀가 시집을 간 집은 너무 오래되어서 여기 저기 썩은 나무가 많았고 지붕도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그런 집이었다. 이런 모습을 본 두꺼비는 이제는 자기도 그 처녀를 위해 할 일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것은 지붕에서 떨어지는 온갖 벌레들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두꺼비는 처녀가 자는 방을 지키며 떨어지는 벌레를 잡아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꺼비는 아주 이상한 빛이 천장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가 그 빛에 의해 잡아먹힐 것만 같은 그런 빛이었다. 두꺼비는 분명히 새아씨를 잡아먹을 괴물이라고 생각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같이 빛을 뿜어내던 괴물도 두꺼비의 빛에 못 이겨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다. 알고 보니 그 이상한 괴물은 천년을 이 집에서 묵은 '지네' 였다. 결국 두꺼비의 힘으로 지네는 죽게 되었고 처녀 역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기도 전에 너무나 많은 힘을 소모한 두꺼비는 그만 죽고 말았다.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처녀에 대한 은혜를 죽음으로 갚은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온 마을에 퍼져 마을 사람들은 두꺼비의 시신을 앞산에다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산의 이름이 두껍능 산이 되었다고 한다.
토정 이지함 선생이 찾은 명당
옛날 토정 이지함 선생이 묘자로 쓸만한 좋은 자리를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던 중에 수내 동 앞을 지나고 있었다. 잠깐 쉬어 갈려고 앉았는데 바로 눈앞에 아주 좋은 묘자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선생은 드디어 좋은 자리를 찾게 되었다며 쉴 틈도 없이 앞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밑에서 봤던 그 자리가 올라와 보니 안 보이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토정은 다시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역시 아까 본 그 자리는 산등성이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산을 올라가 보았지만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참 기이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한 토정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토정의 앞에 웬 백발노인이 소를 몰고 나타나는 게 아닌가?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 이상한 광경이 토정 앞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노인이 소에게 말하기를 "이 토정만큼 미련한 놈아 올라설 줄만 알고 한발 내려설 줄 모르는 구나" 하면서 자신의 소를 꾸짖고 있었다. 순간 토정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자신이 서 있던 곳에서 한발 짝 내려서 보았다. 신기하게도 그 자리가 밑에서 봤던 그 명당자리 였 던 것이다.
토정은 노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려고 뒤를 돌아 봤으나 노인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산신령이셨나 보다 생각한 토정은 그 좋은 명당자리에 할아버지의 묘를 썼다. 지금의 그 자리가 중앙공원 뒷산에 자리잡은 이장윤의 묘라고 한다.
이경류 선생의 무덤 앞을 지나가던 일본사람이 혼난 이야기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왜군들이 조선 땅 천지를 노략질하면서 다닐 때였는데 어느 날 왜군들이 수내동 앞을지나고 있었다. 당시 수내 동 한편에서는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이경류 선생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선생의 애국을 생각하여 말을 타고 이 무덤 앞을 지날 때면 꼭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그런데 왜군들은 이러한 예의를 무시한 채 선생의 무덤 앞을 그냥 지나치려 하였다.
순간 이상하게도 말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채찍질을 하고 말을 끌어 봐도 말발굽은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왜군들은 마침내 자신이 타고 온 말의 목을 그 자리에서 베어 죽게 하고 말았다. 전쟁 중에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말이 없으면 그 군대는 패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자신들의 말을 모두 죽였으니 일본군대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군은 패망했고 임진왜란은 조선의 승리로 끝났다. 이처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이 바로 이러한 사건들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지금도 중앙공원 안에 있는 이경류 선생의 묘 앞으로는 아주 큰 길이 나 있다. 비록 전설이기는 하지만 걸음이 저절로 멈춰지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