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유화는 햇빛을 받고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그 알에서 남아(男兒)가 나와 성장하니 이가 곧 주몽이다. 주몽이 7세 때 이미 활을 잘 쏘는 등 영특하고 총명하자 금와왕의 장자 대소(帶素) 등 일곱 왕자 및 여러 신하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다. 이에 유화부인의 뜻을 따라 화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로 남하, BC 37년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라 칭하고, ()을 고()라 하였다. BC 36비류국(沸流國) 의 왕 송양(松讓)의 항복을 받았고,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건립하였으며, BC 33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BC 28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다.

[백제의 초대왕 은조]

백제를 세운 온조는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둘째 아들이다. 고구려, 신라와는 달리 알에서 깨어났다는 설화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백제의 시조 온조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하다. 주몽은 졸본 부여에 와서 둘째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은 비류이고 둘째 아들은 온조였다.
한편 주몽이 북부여에서 나올 때 두고 온 예씨 부인도 아들을 낳았는데 유리였다. 유리 태자가 졸본 부여에 와서 왕위를 이어받자 비류는 이 곳에 남아 있는 것이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고 온조와 함께 오간, 마려 등 10여명의 부하들과 남쪽으로 내려가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한산에 이르러 사방을 둘러보니 들이 넓고 기름져서 농사를 짓고 살기에 좋아 보였다.
그러나 비류는 그 곳 땅이 못마땅하여 아우 온조와 나누어 미추홀(지금의 인천 부근)로 떠났고 온조는 하남 위례성(지금의 경기도 광주 부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십제'라고 하였다. 이때가 기원전 18년이었다.
한편 비류가 정착한 미추홀은 토지가 습하고 물맛이 짜서 살기에 적당하지 않아 비류를 따르던 백성들을 모아 다시 위례로 돌아왔다. 그 후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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