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보따리 -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 옛이야기 112가지 살아있는 교육 23
서정오 지음 / 보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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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나무꾼이 살았어. 그런데 이 사람 살림이 너무 가난해. 나무를 한 짐 해다가 불을 때도 빈 솥에 불을 때는 거지. 아, 밥을 지으려니 쌀이 있어, 죽을 쑤려니 쌀이 있어. 양식이 없으니 그냥 빈 솥에다 불을 땐단 말이야. 이렇게 살다 보니 굶는데 아주 이골이 났어. 그렇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단 말이야. 나무꾼이 하는 일이라는 게 나뭇짐 져다 나르는 일밖에 더 있어? 그래서,
"에라, 부잣집에서는 곡식 가마니 쌓아 놓고 살지만, 나는 나뭇단이나 잔뜩 쌓아 놓고 살란다."
하고서 나무를 아주 많이 해다가 산더미처럼 쌓아 놨어.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니까 그 많던 나무가 다 없어지고 딱 석 짐만 남아 있네.
"아이고, 어떤 도둑이 나무를 훔쳐 갔나. 훔쳐 가려면 부잣집에서 썩어 빠지는 나무를 훔쳐 가지, 요렇게 지지리 가난하게 사는 집 나무를 훔쳐가. 에이, 오늘은 더 많이 해다 놔야겠어."
하고서 나무를 더 많이 해다가 잔뜩 쌓아 놨거든.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니 또 나무가 없어져. 딱 석 짐만 남고 말이야. 아 그다음부터 아무리 나무를 많이 해다 쌓아 놔도 자고 일어나면 딱 석 짐뿐이야.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28~31쪽

그래서 도대체 누가 나무를 훔쳐 가는지 알아나 봐야겠다고 하루는 밤에 나뭇가리 속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어. 잠도 안 자고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야. 그랬더니 밤이 이슥한데 하늘에서 무슨 줄 같은 게 꿀렁꿀렁 내려와. 내려오더니 줄이 저 혼자 스르르슬슬 나뭇단을 묶어. 그러더니 나뭇단이 통째로 움찔움찔 움직이거든. '하, 이거 별일도 다 있다' 싶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으려니까 이놈의 나뭇단이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훨훨 올라가네.
올라가서, 어디로 갔는고 하니 하늘나라로 갔어. 거기도 땅 세상처럼 집도 있고 들도 있더래. 나뭇단 속에서 빼꼼히 내다보니까 하늘나라 사람들이 나뭇단을 끌어 올리면서,
"이 나뭇단이 왜 이리 무거우냐? 거 뭣이 들어 있는지 끌러 보자."
하고 나뭇단을 다 끌어 올리더니 묶인 줄을 끌러. 나뭇단을 투둑 끌러 놓으니 사람이 하나 나오거든.
"너는 땅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느냐?"
"밤마다 나뭇단이 없어지기에, 누가 훔쳐 가나 보려고 지키고 있다가 달려 올라왔지요."
그러니까 하늘나라 사람들이 하하 웃어.-28~ 31쪽

"너는 타고난 복이 나무 석 짐밖에 안 되는데 자꾸만 나무를 해다 쌓아 놓아서, 나머지는 우리가 가져왔다."
그래서 휘휘 둘러보니까 제가 해 놓은 나뭇짐이 죄다 거기에 쌓여 있더래.
"그럼, 내 복은 평생 나무 석 짐밖에 안 된단 말이오?"
"그렇지."
"죽을 때까지 그렇단 말이오?"
"그렇지."
말을 듣고 보니 기가 막혀.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겨우 나무 석 짐 복이라니, 이렇게 복이 없어 가지고야 무슨 재미로 살겠어? 그래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붙잡고 통사정을 했지.
"나에게도 복을 좀 주시오. 나무 석 짐밖에 안 되는 복으로 어떻게 살겠소? 복 많은 사람 복의 반이라도 좀 주시구려."
그러니까 하늘나라 사람들 중에서 수염이 길고 허연 사람이(이 사람이 옥황상제인가 몰라) 혀를 끌끌 차더니,
"땅 사람 복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니 우린들 어쩌겠나.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복이 있으니 그걸 좀 빌려 가도록 하게나. 이 복은 '차복'이라는 사람 것이니 그 사람이 태어나면 꼭 돌려주어야 하네."
하더래. 그래서 차복이 복을 빌려 가지고 땅으로 내려왔지.
그리고 힘을 내어 전보다 더 부지런히 일을 했어.-30~31쪽

이제는 나무를 암만 많이 해다 쌓아 놓아도 없어지지 않으니까, 그걸 팔아 논도 사고 밭도 샀지. 밤을 낮 삼아 밭 갈고 씨 뿌리고, 김매고 거름 주고 하니까 농사도 잘 되어서 금세 부자가 되었단 말이야.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짓고 아주 잘 살지.
그런데 하루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웬 거지 내외가 집 앞을 지나가거든. 거지가 우산이 있어, 뭐가 있어. 그냥 비를 홈빡 뒤집어쓰고 내닫는거지. 가만히 보니까 아주머니는 홑몸도 아니야. 부른 배를 싸쥐고 애쓰는 품이 얼마나 가여운지, 얼른 나가서 집으로 불러들였어.
"이렇게 비를 맞고 가실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비나 긋고 가시오."
방으로 데리고 가서 젖은 옷도 갈아입히고, 따뜻한 밥도 지어 먹였지. 비가 곧 그치지 않으니까 하룻밤 재웠지. 그런데 그날 밤에 아주머니가 애기를 낳았단 말이야.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어.
거지 내외는 좋아서 싱글벙글 야단났고, 집주인도 덩달아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야단났지. 미역국을 끓인다, 새끼줄에 고추를 끼워서 금줄을 친다, 부산하게 한바탕 난리법석을 쳤단 말이야.-30~31쪽

그러고 나서 거지 내외가 아이 이름을 짓는다고 수군수군 의논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
"이놈 이름은 '차복'이라고 지읍시다."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아, 이런단 말이야.
'아하, 하늘나라에서 잠깐 빌려 온 복이 바로 저 아이 것이로구나. 이제 주인이 태어났으니 복을 돌려줘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거지 내외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죽 했어. 이렇게 저렇게 되어서 하늘나라에 갔다가 이 아이 복을 잠깐 빌려 가지고 왔노라 하고서는,
"내가 이렇게 살림을 일구고 살게 된 것도 다 차복이 복을 빌린 덕분이니, 이 재산이 내 재산이 아니오. 이제 주인이 태어났으니 복을 도로 돌려 드리겠소. 이제부터는 당신들이 이 집과 논밭의 주인이오."
했지. 그러니까 차복이 아버지 어머니가 펄쩍 뛰는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지나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거두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서로 받으라느니 못 받겠다느니 옥신각신하다가, 그럴 게 아니라 모두 함께 한집에서 살자고 했지. 그래서 차복이네 식구도 그만 거기서 눌러살랐대. -31쪽

차복이가 무럭무럭 커 갈수록 살림도 늘어나고,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니 좀 좋아. 뭐, 복이라는 게 따로 있나. 부지런히 일하고 마음 곱게 쓰면 그게 복이지.-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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