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등산과 벼락산

지금으로부터 수억년 된 천등산과 벼락산이 있어 풍양면을 상징하고 있다.

천등산은 옛날에 천등을 밝힌 곳이라 하여 산의 이름을 천등산이라고 불러 왔다는 것이다. 이산 상봉에 등림하면 마치 기상천외의 푸른 창공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 한다.

이곳에는 전설에 얽힌 설화를 비롯하여 각종 유적의 흔적이 엿보이며 특히 신라시대의 선덕여왕의 태장이 묻혀 있다고 고서에 기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식촌부곡이 풍안현으로(고려때) 승격되어 현이 설치될 당시 천등산을 배후로 송정리 일대에 축설됐다는 고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분명 역사적 사적지가 아닌가 싶다. 고려말기부터 조선왕조 500년 동안 풍양면으로 감싸고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으며 갖가지 전설 속에 벼락산의 전설을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국이 1945년 해방이 된지 50개 성상이 흘러간 오늘에 와서도 벼락산은 악산이라고 규명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은 지금도 집을 지을라하면 벼락산 상봉이 비치면 해를 보는 등 집의 취이가 좋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한 풍수지리상으로 보아 산의 형이 마치 호랑이 상이라 하여 그 부근에 묏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천등산보다 높은 산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천지조화로 벼락을 때려버렸다는 것이다.

이곳에 사는 유지가 부락민을 설득시켜 월동리를 호랑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만든 마을 명을 영호리로 내무부장관 승인을 받아 개칭하게 되었다. 그 후 동명을 개칭한 이래 젊은 사람이 때때로 죽어 나간다는 흉측한 일이 간혹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동민들은 회합하여 영호리를 월동리를 개명하였다는 이야기다. 그 후 부터는 전설 같은 사실이 없기를 바라면서....

지난 1999 3월 동백문화사상기념사업회 이사장 및 구산그룹 이사장인 류일신이 한국의 각종 민족단체와 종교단체가 총망라한 대표자로서 백두산의 대간맥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천등산 정맥을 찾아 남북통일을 민족적 염원이 담긴 천인지대화합신원비와 신원의 제단 구용정을 장엄하게 세웠다.  - 출처 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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