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초기쯤에 이 산중턱에 암자가 하나 잇는데 이곳 암자를 지니고 있는 행자승이 그 행하는 불도의 방법이 청결단정해서 스스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또한 물욕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변민하는 마음이 하나도 엿보이지 않았다.
날이 더우면 선을 행하여 마음과 몸을 찬 것으로 식히고 항산 차고 시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며 동설한의 추운 날씨에는 눈위에 앉아 잇어도 심정에 열기를 가함으로서 언제나 따스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스님을 사람이라 생각을 하지 않고 생불로서 대했으나 그는 조금도 교만하지 않고 찾아오는 신도들을 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찾아온 신도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였다.
"이제 나는 입적 할 날이 다가왔으니 이 암자를 찾지마시오" 하는 것이었다.
신도들은 이 말을 듣고는 한편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금치못하여 그 스님의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려고 아침 일찍 몰려들었으나 그는 이미 지난 밤중에 입적을 한 후였다.
그런데 그의 시체에는 근처에서 볼 수 없는 싱싱한 입사귀가 붙은 보리수나무의 가지로 덮여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본 신도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이 행자승을 인도해 갔음이 분명하다해서 그때부터 이 암자가 있는 산을 가섭산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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