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홍교

전설 속에 살아있는 무지개다리 고흥 홍교
120여개의 조각돌로 짜 맞춘 수박다리 홍교가 지금도 변함없이 보존되고 있다.

옛날 옛적에 난데없는 홍수로 고흥읍 시가지에 바닷물이 범람하여, 풍양 축두에 정박하고 있던 범선이 바닷물에 밀려 주월산을 넘었다는 신화 같은 설화가 있다. 지금도 고흥과 두원을 사이에 두고 주월산(고흥의 주산)이 우뚝 솟고 있는데 이 때 크나큰 홍수 피해를 입은 고흥 땅은 남쪽 조계산 밑으로 형성되고 있는 등암리를 기점으로 포두면 장수저수지 종점까지 길게 흘러 내렸다는 장수천이 생겼고 그 후 남계천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홍수로 피해가 극심한 백성들의 건강과 평온을 기원하기 위하여(어느 때 황후인지는 불명) 일국에 황후가 이곳 수덕산에 오셔서 백성의 안녕을 기도했다는 설화가 있다.

수덕산 하능 약수터에서 발원하여 현 홍교다리와 연결하여 오색찬란하게 무지개가 펼쳐져 한때 이 무지개를 타고 선녀가 등천했다는 전설이다. 수덕산 옥녀봉에서 동남으로 내려다보면 북쪽에 고흥의 주산 주월산이 높이 솟아 있고 성인군자가 태어난다는 상서의 봉황새가 복음자리를 잡았다는 봉황산 명산이 남쪽 조계산의 기운을 한 몸에 담고 있는 듯 평화를 상징하면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홍교와 연결된 성지를 응하고 있는 마치산이 앉아 있고 옛날 어느 때고 흥양현에 설치된 현종을 힘차게 쳐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옛날이야기는 항상 신비롭다. 어쩌면 진짜 같기도 하고 또 얼토당토 않은 것이 많다.

그러하기에 지금도 옛 이야기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들고 있다. 그런 꿈같은 이야기 속에 120여개 조각돌로 짜 맞춘 수박다리 홍교는 분명 건축문화의 신기함을 나타내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다리는 수덕산과 마치산에서 기원되어 흐르는 하천의 수구 홍교로서 세종 1441년 약 450여 년 전 가설된 다리였으며 오랜 세월을 지나고 고종 18년에 확장 보수된 다리로 추정된다.

이 다리는 중앙 상벽에 용두석이 부착되어 있어 다른 지역에 수많은 홍교와 또 다른 특색이 있다. 옛 군주시대에 그 지역에서 정승이 배출되지 않으면 용문석을 부착할 수 없다는 법제가 있어 함부로 용문석을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흥 땅에는 풍양면 한동에서(양리) 태생한 유비가 훗날 원나라 외교에 공이 많아 고흥 부원군에 봉해지고 도첨의 정승의 벼슬에 올라 이 용문석을 부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 상상해보면 그런 신비스런 일이 있을 법도 하다.

성안에서는 어느 가난한 선비의 아내가 있었는데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서문쪽에 있는 옹달샘 물을 떠다 놓고 이 홍교다리에 촛불을 밝히면서 100일 기도를 하여 남군의 무과시에 급제토록 했다는 갸륵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옛적에 선녀들이 내려와 이 홍교 다리 밑에서 목욕을 하고 수덕산에서 기원한 무지개를 타고 등천하는 곳으로 꿈을 키워 소원 성취했다는 이야기이다.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내의 정성으로 무과에 급제한 충신장군이 동방에 나르는 비장으로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음으로 시아버님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약 뿌리를 구해 탕재로 만들어 이 홍교다리 밑에서 정성들여 공을 들이고 약 2년간 용봉탕을 봉양한 정성이 헛되지 않고 하늘까지 감동시켜 57세 된 시아버님이 8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했다는 갸륵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홍교는 해방 후 지방 유형 문화제 제 73호로 지정됐다.  - 출처 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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