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은 운문면 순지도에 있으며 해발 약 700m이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절벽과 기묘한 바위로 되어 있어 산 꼭대기까지 올라 가자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또한 이 산은 임진왜란 때 청도 의병들이 왜적을 골탕 먹인 천혜의 지형이다.

그런데 이 산은 옆에서 보면 범이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여, 인근 주민들이 호산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보다도 호산이라 부르게 된 기막힌 유래가 전해 오고 있다.
이 산 바로 밑에서 동편으로 순지동의 한 자연부락인 범골이란 마을이 있는데 지금은 약 30호 정도의 부락이 되어 있으나, 어느때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옛날에는 단 아홉집이 옹기종기 살고 있었는데 모두들 사이좋게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집에 늙은 내외가 무남독녀인 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어머니는 나물을 뜯으면서 그날 그날을 근근히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만 되면 딸은 집에서 저녁을 지어 놓고 밖에 나가신 부모님을 마중 나가곤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해 여름철에 하루는 이상하게도 늙은 부모님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도 딸이 마중을 나오지 아니 하였다. 매일같이 마중을 나오던 딸이 그 날은 나오지 않으니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 속히 집으로 돌아와 보았으나 딸은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온 집안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들은 틀림없이 산 짐승에게 물려 갔다고들 했다.

그러나 이 처녀의 평소 얌전한 소행으로 보아 집을 뛰쳐 나갈일은 만무한 것이었다. 늙은 부모들은 딸을 애타게 찾았으나, 영영 나타내지 않으니,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한해가 바뀌어 또 다시 여름철이 되었을 때 하루는 늙은 내외가 쓸쓸한 모습으로 시름 없이 앉아 있는데, 이웃집 청년 한 사람이 땀을 흘리며 헐레벌떡 뛰어 오더니, 1년전에 없어졌던 딸을 산 꼭대기에서 보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늙은 부모는 놀라 자세히 물었더니, 청년이 말하기를 
  

"오늘 산에서 나무를 하려고 산꼭대기까지 올라 가는 참인데 바로 그 때 없어졌던 처녀가 누런 호랑이와 같이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호랑이는 짐승고기를 먹고, 처녀는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호랑이 옆에 먹고 있었습니다."
고 하였다. 부모들은 뜻밖의 소식에 놀라고 한편으로는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기뻤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그럴수가 있느냐 하고, 청년을 미쳤다고 하며 믿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처녀의 늙은 부모들은 동네 사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맨손으로 청년이 말하던 산으로 허겁지겁 올라가 보았다. 과연 거기에는 자신의 딸이 예쁜 소복단장을 하고 누런 호랑이와 다정하게 산토끼를 구워 먹고 있었다. 늙은 부모는 호랑이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딸에게 달려가 얼싸안고 울었다. 딸은 늙은 부모님을 만나기가 미안한듯한 기색으로 호랑이와 무슨 말을 주고 받고는 부모에게 말 하기를

"아버님, 어머님에게 불효 막심합니다만은 저는 지금 이 호랑이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으니 이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부모님은 내려가셔서 사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늙은 부모는 딸을 달래고 사정하고 하였으나 끝내 집으로 데려올수 없었다.


그후 수년이 지난 어느날 달밝은 밤이었다. 늙은 내외는 그날도 역시 근심에 찬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갑자기 휙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더니 마당 한가운데에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호랑이는 조용히 자기에게와서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기이하게 생각한 내외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니 호랑이는 쏜살같이 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이미 중년이 되어 버린 딸이 하얀 소복을 입고 죽어 있었다. 그 옆에 쪽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불효한 이 자식을 용서해주시고, 저는 그래도 호랑이와의 생활이 행복하였으니 저의 시체를 호랑이와 같이 살아온 이 산 꼭대기에 묻어주십시요"
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늙은 부모는 딸을 끌어안고 목메이게 울다가 딸의 부탁대로 이튿날 동네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산 꼭대기에 무덤을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고한다. 그래서 이 산을 호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도 산 꼭대기에 오르면 한 무덤이 눈에 띤다.


또 그 처녀가 살았던 마을에도 아직 30호 가구가 살고 있으며 마을 이름은 순지동 범골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 출처 네이버 지식인   덧) 내 고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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