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1
이정운 지음 / 동아발해 / 2010년 7월
품절


"덕배야."
응답이 없다. 재야는 다시 한 번, 성까지 붙여 말하였다.
"박덕배."
- 응응, 우리 에엿븐 재야가 날 부른 겨?
등껍질에서 목을 쑥 빼며 거북이 물었다.
북방신北方神 현무. 우울증 상태라면 이름을 듣고 제 신세를 한탄하며 대답도 안할 텐데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조증 상태인 모양이었다.
현무는 조울증 환자로 우울증과 조증을 번갈아가며 겪는데,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에는 말도 잘 하지 아니하고 등껍질 안에 움츠린 채 가만히 있기 일쑤였다. 반면 조증을 앓고 있을 때에는 기분이 격앙 되어서인지 별 것 아닌 일에도 포복절도는 예사요, 사방신 체면은 어디다가 팔아먹었는지 방정맞은데다가, 무엇보다도 말 못하고 죽은 아낙네 귀신이 붙었는지 듣는 사람의 골이 울릴 정도로 말이 많았다.
- 표정이 왜 그런 겨? 우리 재야,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테니까 얼굴 펴. 음, 수수께끼 하나 넬 테니까 마초(맞혀) 볼 겨? 감은 감인데 못 먹는 감 세 개가 뭔 줄 아는감?
재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하였다.
"영감, 대감, 상감."-110~111쪽

특히 마지막. 애초에 먹을 수 있을 리도 없지만 선우공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속이 더부룩하고 찝찝하였다.
- 맞아, 영감, 대감, 상감!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현무는 한참을 꺄르르륵 숨넘어가게 웃더니 이어 말하였다.
- 좋았어. 그럼 하나 더 내 볼 터이니 마초 볼 겨? 동생과 형이 싸웠는데 부모님이 동생편만 드는겨. 이럴 때 사람들은 형의 신세를 어떻게 한탄하겠는감?
"형편없는 세상......"
- 그렇지! 형편없는 세상! 이 빌어처먹을 세상!
그렇게 맞장구 친 현무는 또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는 것이었다. 원래 조증 상태일 때에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실성한 것처럼 웃어대는 현무였다. 현무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재야는 자신의 뼈아픈 실수를 인정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재야가 용정차를 한 모음 마신 후 말하였다.
"덕배 나가."
- 뭐? 뭐라? 우리 에엿븐 재야가 지금 나보고 나가라고 한 것인감? 그런 겨? 내 귀가 잘못된 거지? 그런 거지? 지금 우리가 보름 만에 만나는 건데 나보고 나오자마자 돌아가라는 거 아니지?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수수께끼가 맘에 안 든 겨? 다른 수수께끼를 내볼까? 아니, 스무고개가 좋은감? 재미있는 이야기는? -111~112쪽

그도 아니면 실뜨기라도 할까? 이 상태로는 무리니까 사람으로 변해야......
"덕배 나가."
- 남자로 변할까, 여자로 변할까? 우리 재야는 어느 게 좋은 겨?
재야의 표정이 여전하자 현무는 다급히 말을 바꾸었다.
.....................................................................................생략
"박덕배 나가."
- 못난이 재야.
현무는 악담을 하고 사라졌다.-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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