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리왕산>과 <검단산>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가리왕산의 유래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 위치한 가리왕산은 고산의 준봉답게 그 스케일이 장대하다. 첩첩산중이란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일 정도로 이 일대는 산들이 밀집해 있다. 가리왕산에는 갈왕의 전설이 서린 지명이 많다. 망경대는 갈왕이 이 대에 올라 잃어버린 옛 땅을 바라보며 환국의 날을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시녀암은 갈왕의 시녀들이 이 바위에 올라 서서 고국쪽을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그리워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밖에도 갈왕이 난을 피해 숨었던 서심 등이 있다. 가리왕산이란 이름 역시 갈왕과의 인연으로 해서 붙여진 것이다. 역사적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갈왕의 전설은 가리왕산을 더욱 그윽하게 하고 있다.
2.검단산의 유래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검단산이란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남한산에서 도를 닦던 검단도사가 있었다. 하루는 소년을 만났는데 그 소년은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고픈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과 만나면서 그 효성에 감동을 받은 검단선사는 소년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검단선사는 깜박 소년과의 약속을 잊었고, 그 사이 소년의 어머니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검단선사는 자신의 경솔을 자책하며 이 산에 은거하게 되었다. 산에서 지내며 검단선사는 수도에 전념해 도를 깨치게 되었다. 그후 검단선사가 있었던 산이라 하여 검단산이라 하였다 한다. 이러한 전설을 가진 때문인지 검단산은 영산의 하나로 추앙받고 있는데 지금도 산악인들이 주축이되 연초마다 이 곳에서 시산제, 산신제를 올리려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3.계명산의 유래
충주시에 위치한 계명산은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백제 때의 일이다. 이 산에는 옛날부터 지네가 많았다. 너무 많은 지네로 인해 피해가 자주 발생하였다. 그 수가 점점 늘자 이를 걱정하던 촌로 한사람이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다. 며칠 후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닭을 길러보라고 권했다. 촌로는 꿈속에 노인이 일러준대로 닭을 풀어 산에 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촌로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도 얼마 후부터 산에 닭들을 내놓고 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과연 이 산에 지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산에 풀어놓은 닭의 수가 너무 많아졌다. 닭들이 아무것이나 파헤치는 바람에 이곳 부자들이 자꾸 망하게 됐다. 당시 이 산 곳곳에서 닭이 울었기 때문에 계명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4.관악산의 유래
관악산 정상 부근에 연주대라고 부르는 깍아지른 절벽이 있다. 마치 일부러 만든 것처럼 절묘하게 서있는 연두대에서 북쪽을 보면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의 유신 열사람이 이 관악산 절에 숨어살았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연주대에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한다. 그래서 임금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연주대가 되었다고 한다. 연주대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노라면 옛 충신의 애통함이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진다.
또 다른 설이 전해온다. 이성계가 여기에 연주암을 중창했는데 효령대군이 그 아래쪽 지금의 연주암 자리로 위치를 옮겼다. 태종의 첫째와 둘째인 양녕, 효령대군은 아버지가 왕위를 셋째 충녕대군에게 물려줄 뜻을 비치자 대궐을 빠져나와 관악산에서 입산수도 하였다. 그들은 연주대에 올라 한양의 왕궁을 바라보며 아버지 태종을 그리며 지냈다고 전한다. 전망이 뛰어나고 보기드문 절경을 이루고 있어서인지 이래저래 사연 많은 연주대라 할 수 있다.
이끼계곡 가리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