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모음 법정 스님 전집 6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2년 1월
절판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이다.-107쪽

새해에는 눈을 떴으면 좋겠다. 이기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같은 인간끼리 총부리를 마주 대고 야수처럼 물고 뜯는 전쟁놀이에서 그만 눈을 떴으면 좋겠다. 우리들이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서로 할퀴고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면 싶다. 우리들은 증오를 나누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만난 것이라고, 우리들 속마음에서 저절로 울려 나왔으면 싶다.
새해에는 눈을 떴으면 좋겠다. 기술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시들어가는 인간의 영역이 새롭게 움텄으면 좋겠다. 물량의 집적만이 인간을 잘살게 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제 밖으로 밖으로만 향하던 우리들의 시선이 안으로도 방향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소음과 광란에 젖은 우리들의 귀를 안으로 돌려 인간의 가장 깊숙한 데서 울려 나오는 그 소리를 듣도록 했으면 좋겠다. 인간의 분수를 헤아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슬기롭게 가늠했으면 좋겠다.-147~148쪽

새해에는 그만 눈을 떴으면 좋겠다. 뒤바뀐 가치의식이 제자리로 제자리로 회귀했으면 좋겠다. 이웃이야 어떻게 되건 아랑곳없이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 의지해 함께 살고 있는 인간 가족임을, 본질적으로 맺어진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이웃의 불행이나 결핍이 곧 내 자신의 그것이라는 것을 자각했으면 싶다. 한편에서는 헐벗고 굶주리는데 다른 쪽에서는 비만해진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골프채를 비껴가는 이런 비정스런 단층斷層이 말끔히 가셨으면 좋겠다.-148쪽

새해에는 제발 눈을 떴으면 좋겠다. 날로 치솟아 비대해지고 있는 도시의 외곽에는 억울하게, 너무도 억울하게 살고 있는 인간 이하의 촌락이 있다는 사실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얼에 새겨졌으면 좋겠다. 이 격차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리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는 제발 정신차려주었으면 좋겠다.
읽고 싶은 책을 헐한 값으로 사보았으면 좋겠다. 도둑촌의 빈벽을 채우기 위해 만든 것 같은 겉치례의 전집류가 아니고, 읽으면 환하게 눈이 뜨일 그런 양서가 단행본으로 헐값에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아,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탐욕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게 우리 모두가 초하루 아침의 달력처럼 싱싱하고 순수하게 살았으면 좋겠다.-149쪽

"옛날 깊은 산 속에 사자가 한 마리 살고 있었소. 하루는 어떤 큰 나무 아래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사자의 얼굴을 스쳤소. 사자는 깜짝 놀라 단잠에서 깨어났소. 나뭇잎이 스친 줄을 알게 된 사자는 몹시 노해 가지고 나무를 노려보면, 어디 두고 보자고 하면서 속으로 별렸소.
그런지 사흘 째 되던 날, 산 아랫마을에 사는 목수가 수레바퀴에 쓸 재목을 구하려고 산으로 올라왔소. 사자는 이때다 싶어 '바퀴에 쓸 재목이라면 이 큰 나무를 베어가시오.'라고 목수에게 귀띔을 해주었소. 사자의 말대로 목수는 그 나무를 베었소. 그랬더니 넘어진 나무가 목수에게 이렇게 소곤거리는 것이었소. '사자의 가죽을 벗겨 바퀴에 대면 아주 단단하답니다.' 목수는 마침내 사자도 잡고 말았소. 이와 같이 사자와 나무는 하찮은 일로 해서 서로가 자신의 신세를 망치게 되었소.-178쪽

① 잉태하여 보호하는 은혜 : 열 달 동안에 치르는 갖은 고통을 말하고 있다. ② 해산할 때 고통받는 은혜 : 무섭고 두렵기 한량없고 뼈가 마디마디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라 했다. ③ 아기를 낳고 걱정을 잊는 은혜 :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들으면 모든 두려움과 걱정이 문득 사라진다는 것. ④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먹여주는 은혜 : 엄마는 사흘을 굶더라도 아기만 배부르면 견딜 수 있단다. ⑤ 마른 자리에 아기 누이고 젖은 데에 눕는 은혜 : 이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잔다는 것. ⑥ 젖 먹여 기른 은혜 ⑦ 똥 오줌 가려준 은혜. ⑧ 먼길 떠나면 걱정하는 은혜 : 자식이 문밖을 나가면 돌아올 때까지 조마조마 마음을 못 놓고 기다린다는 것. ⑨ 자식 위해 애쓰는 은혜 : 혹시 나쁜 길에 들까 늘 염려한다는 것. ⑩ 끝까지 사랑하는 은혜 : 자식은 어머니를 버리지만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자식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부모은중경--189~190쪽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 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入國査證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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