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도서관 - 호메로스에서 케인스까지 99권으로 읽는 3,000년 세계사
올리버 티얼 지음, 정유선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세계 최초의 도서관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였다는데 자신의 업적을 점토판에 새겨

후세에 알리고 싶은 왕이 도서관에 보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과거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이전에 책을 만드는 일은 꽤나 고단한 작업이어서 대중이

책을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쿠텐베르크의 혁명 이후 책이 대량 생산되면서 도서관도 많아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지금처럼 폭염이 계속되면 바다로 피서를 간다는 생각보다 시원한 도서관이 먼저 생각난다.

어린시절 책도 귀하고 돈도 귀하던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이 내 서재였다.

이 책에는 과거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기능보다는 대여점의 기능을 한 것으로 나와있다.

책 값이 워낙 비싸 사본다기 보다는 빌려본다는 생각이 많았던 시대에는 도서관이 그 목마름을

대신했던 것 같다. 단지 지금과는 달리 대여비를 받았던 것이 달랐겠지만.


 


나는 지금도 도서관에 가는 것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다. 물론 서점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책의 냄새도 좋고 두툼하게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트렌드인 e-book은 거의 이용해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조그만 내 서재방은 책이 넘칠만큼 차있다.

처치곤란할 정도의 책을 보면서 이제는 정리를 좀 하자 싶다가도 왠지 행복감이 덜어지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이 책은 인류의 역사이래 도서관이라는 책의 보고를 통해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과 저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문학은 세상에 현실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라는 전제에 크게 공감한다.

때로는 전쟁을 야기했던 책도 있고 사상이나 문화의 변화를 일으킨 책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들을 쓴 작가들의 존재는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오랜 시간과 고통을 가져오지만 큰 소명감을 느껴야 할 직업이지 싶다.


 


현대에 엄청난 영향을 준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사실은 양성애자였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의 이런 성향이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대부분 시대를 앞서간 작가들은 평범하지 않은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아 삶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선사한 안데르센이 사실은 이기적이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평생 독신자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오히려 그의 이런 고립된 성격이 오히려 상상속의 아름다운 동심을 이끌어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만나지 못할 자신이 그리던 세상을 작품으로 구현했으니 말이다.


호메로스에서 케인스까지 99권으로 만나는 책의 역사를 보니 닿지 못한 시간과 만나는 느낌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오래된 도서관에는 빛을 보지 못하는 대작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정약용의 하피첩이 폐지할머니의 수레에서 발견되었듯이 굉장한 대작을 찾아 동네 책방이나 기웃거려볼까 생각해본다.


99권의 책에서 당시의 시간과 작가의 성격이며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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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지 않는다 - 도쿄대 병원 응급실 책임교수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원리
야하기 나오키 지음, 유가영 옮김 / 천문장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수많은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본 것만 같다.

나도 저자가 품었던 의문을 품고 있었기에 책의 서문에서 우주와 현재의 나의 존재감은

무엇인지를 얘기할 때 내마음을 들킨 것처럼 잠시 숨이 멎었었다.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는 왜 존재하고,

우주는 누가 만든 것일까?'


 


과연 우주는 무한한 공간일까? 아니면 유한한 곳일까? 우주공간 어느쯤에 지구와 똑같은 행성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나와 똑같은 혹은 비슷한 종족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

단순히 우주의 범위나 존재여부를 떠나 과학으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의사인 저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단숨에 읽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인명을 구하고 때로는 수많은 죽음과 맞닥뜨렸을 그가 본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지, 과연 그 세계를 믿는지 듣고싶었다.

기공의 대가가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다는 병을 치료하는 모습이라든지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을 나열하는 대목에서는 다른 독자들은 몰라도 나는 얼마든지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죽음 이후 강한 빛의 세상으로 간다든지 이미 그 세상에 가있던 사람들이 마중을 나온다는 것은

임사체험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서양에서는 모르겠는데 동양권에서는 '하늘이 보고있다., 라든가 '하늘이 무섭지도 않는가' 같은 말이 있다.

영원히 살 것만 같이 온갖 욕망을 드러내고 죄를 일삼는 무리들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에 어쩌면 모든 해답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엄청난 문명의 발달을 이루고 사는 이 지구라는 공간은 정말 우주의 먼지 한톨조차 되지 못하고 우리가 머무르는 이 시간도 억겁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죽음이후 돌아가게 될 그 세상에서 보면 최후의 심판조차 겁내지 않는 무리들을 보고 어찌 가엽다 생각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체험을 하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한다. 돌아갈 저 세상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생과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겪었던 저자가 외롭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영매를 통해 만나는 장면은 쇼킹하다. 말투와 못짓, 그리고 어머니만이 알고 있을 내밀한 이야기를 영매를 통해 전하는 어머니의 영혼을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생과 사, 그리고 인간과 영혼의 경계를 이어주는 존재들이 있다.

아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미신이라고 치부하겠지만 나는 저자의 이런 경험을 믿는다.

그리고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는 말에는 육체는 죽어도 혼은 또 다른 차원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이기에 100%공감한다.

의사이면서도 과학으로 설명되기 힘든 현상에 대해 이해하려고 많은 연구와 재집을 해온 그의 열정에 깊은 존경을 보낸다.

저자나 나처럼 우주와 죽음, 그 이후의 세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조금쯤은 답을 얻을 것이고 지금 머무는 이 순간들이,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관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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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반하다 - 유럽의 도시.자연.문화.역사를 아우르는 순간이동 유럽 감성 여행 에세이
김현상.헬로우트래블 지음 / 소라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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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해마다 여름이 오면 지긋지긋한 폭염이 두려워서 저기 남쪽 남반구의 어느나라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절친의 버킷리스트에는 은퇴후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소원이 들어있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진짜 여행! 우선 정말 가고 싶은 나라 20여개국을 추려서 딱 한달씩만

머무르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깃발을 쫓아 다니는 그런 여행말고 진짜 그런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면 제일먼저 가는 코너가 바로 여행서가 있는 곳이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 하지만 언젠가는 꼭 닿기는 바라는 그곳을 먼저 만나보고 싶은

염원때문이다.


 


이십여년 전 일때문에 갔던 유럽은 그야말로 주마간산같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다시 간다면 꼭

이 책에 소개된 곳들을 가보고 싶었다. 너무 많이 알려진 곳보다는 그 나라의 특징이 가장 많이

드러난 곳들. 그래서 한달을 머무르지 않아도 흠뻑 그 나라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곳들을 너무도

잘 짚어낸 여정들이다.


 


영국은 가본적이 없지만 언젠가 꼭 가야할 나라 리스트에 담겨있다. 다만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해서

여비가 넉넉히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그 곳을 먼저 이 책으로 만나본다.

런던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진 코츠월드는 오래전 영국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마을이 모여있다는

곳이다.

중세의 마을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그 곳에 가면 시간이 얼마쯤 정지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만같다.

그리고 첨가되지 않은 천연의 모습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휴식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 꼭 가보리라

마음 먹는다.


 


이 책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한 때는 찬란했던 인류의 문명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스페인광장이며 트레비분수, 트레팔가광장을 오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흡족해진다.


 


오래전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의 패권을 움켜쥐었던 영국의 트레팔가르 해전은 이순신의

노량해전만큼이나 유명한 역사가 숨어있는 곳이란다. 한 척의 배도 잃지 않고 스페인과 프랑스를 격파했던 넬슨제독을 기리는 넬슨 기념탑에서 영국민들의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여수는 이순신광장이 있다. 거북선을 복원해놓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긴 했지만 조금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았는데 나라밖의 누군가도 이 광장을 찾아줄만큼 기억되는 곳이라면 좋겠다.


영화로 혹은 문화작품속에서 만났던 곳들도 자세하게 소개해주어서 막상 처음 간다고 해도 전혀 낯설지

않을 것만 같은 여정이었다. 다만 숙박이나 음식, 비용에 관한 조언이 조금 부족해서 아쉬웠다.

하긴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데 그깟것이야 언제든 다시 검색해도 좋을 일이다.

책을 읽는동안 나는 유럽의 호젓한 마을을 지나고 돌이 깔린 광장을 걷고 오래된 시장에서 눈요기를 실컷 했다.  갈 사람도 가지 못할 사람에게도 깊은 갈증을 풀어주는 여행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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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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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부터 우리는 그녀를 줄리아나 포티스가 아닌 알렉스로 부르기로 한다.

그녀는 이미 법적으로 이세상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알렉스란 이름도 사실 그녀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장 많이 불리워진 이름이 알렉스이므로 우리도 그녀를 알렉스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녀가 컬럼비아 의대에 입학하고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고 다시 정부의 일을 하기까지

불리던 이름은 그들이 그녀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을 때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꼬리가 달리지 않는 신분으로 그녀는 안성맞춤이었다. 조금쯤은 냉철한 부모도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외동이었으며 다소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져 친밀한 이웃이나 친구조차 가지질 못했다.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그녀의 조건에는 냉철한 이성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무거운 입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정부쪽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개발한 수많은 약물중에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사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살상용 화학무기도 있었다.

그녀는 모든 화학물질들을 고르고 합성해서 인간의 힘을 무력화시키거나 혹은 고통을 잊게 만드는 약물로 반국가적인 활동을 하는 배신자들의 입을 열게 하는 '케미스트'가 되었다.


 

 

미국 첩보국을 대상으로 한 영화들이 그렇듯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정부쪽 사람들도 서로 견제가 심했다.

그녀의 상사이기도 했던 카스턴도 CIA의 견제가 못마땅 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쏟아부었던 알렉스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녀가 너무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최고 권력을 가지려는 자가 인류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개발된 바이러스를 이용해 권력을 쟁취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수 있는 관련자들을 하나 둘 처치하기 시작했다.

결국 알렉스는 가장 사랑했던 동료이자 스승인 바나비박사가 그들에게 살해당하자 홀로 탈출하여 계속 신분을 바꿔가며 도망치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가 얻은 셋집자체가 커다란 부비트랩이 되었고 그녀는 방독면을 쓴 채 화장실 욕조에서 잠드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녀를 쫓던 카스턴이 어느 날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해오고 그들의 조건을 들어주는 대신 그녀를 놓아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고독한 업무는 최고의 마약왕이 고용한 테러리스트 대니얼 비치였다.

그는 교사로 가장한 채 남미를 오가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겨왔고 마약에 섞어 유통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고의로 인플루엔자를 퍼뜨리고 백신을 팔아먹었을 것이라는 몇 년전 사건을 기억해낸다.

만약 알렉스가 건네받은 파일이 맞는다면 대니얼은 수십만명을 살상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행방을 아는 테러리스트였다. 알렉스가 카스턴의 제의를 수락한 것은 자신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것보다 수십 만명의 억울한 죽음을 막겠다는 사명감이 더 컸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독고다이식 첩보전은 결국 대니얼을 납치하고 그녀가 개발한 약물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저절로 자백에 이르게 하는 약물을 투여받고도 대니얼은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의 눈동자는 너무 선해서 알렉스는 잠시 그가 테러리스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아지트에 뛰어든 한 남자로 인해 그녀는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꽤 묵직한 분량을 읽어내리면서도 잠시도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작고 아담한 알렉스의 모습에 레옹에 나왔던 어린 마틸다의 얼굴이 겹쳐졌다. 여리지만 강하게 버틸 수 밖에 없었던 마틸다처럼 알렉스역시 전사로 변모한다.

괴물처럼 여겨졌던 '케미스트'란 이름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다시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 등불이 되었다.

그리고 음지에서 고독한 업무를 수행하는 첩보원들의 삶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세상에 군림하는 수많은 권력들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끝내 알지 못하는 수많은 비밀들이 묻혀있을 것이다.

알렉스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했고 결국 힘들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알렉스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는 세상에서.


숨막히던 추격전과 보이지 않는 암살자들과의 머리싸움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릴 만큼 뜨거웠던 더위도 잠시 잊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형제를 위해 정면대결을 펼치는 마지막 장면들은 정말 압권이었다.

분명 괜찮은 영화제작자들이 판권을 사들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알렉스의 마음을 흔들었던 대니얼은 누가 적당할지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한반도를 들었나 놨다하는 폭염을 잊게할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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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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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지금 내가 살고 이 세계 외에 또다른 공간에 현실과 똑같은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뿐 아니라 '나'역시 존재하고 다만 그곳의 '나'와 이곳의 '나'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오직 하나의

세상에서만 살아간다고 믿는 것이다. 흔히 이런 상상은 영화에서 현실화되기도 한다.

'평행이론'이나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영화처럼 실제하는 곳이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하시는 10년 전 같은 영어회화학원을 다니던 동료들과 함께했던 '구라마 진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모인다. 그 진화제에서 실종된 하세가와의 존재에 대해 서로가 입을 다문 채

각자 그 사이에 있었던 기이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카이씨가 다녀왔다는 오노미치, 다케다군이 다녀왔다는 오쿠히다, 그리고 유일한 여성인 후지무라가 다녀왔다는 쓰가루, 다나베씨의 덴류쿄여행까지.

그 여행에서는 '야행'이라는 동판화를 연작했다는 기시다의 그림과 닮은 곳들이 등장한다.

으스스한 밤을 주제로 어둠이 짙은 그림속에는 눈, 코, 입이 없이 마네킹을 닮은 여인이 오른 손을 들어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듯한 모습이 닮겨져 있다.

모두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현실이었지만 여정이 계속되면서 전혀 현실같지 않은 공간을 다녀온 듯한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야행'연작 시리즈을 만든 기시다의 밤의 살롱을 드나들던 사내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분명 눈으로는 보고 있지만 결국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우리의 눈을 가려줍니다....당신은 부지불식간에 '언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어라는 틀에 갇혀 눈에 보이는 것조차 틀에 얽매였던 적은 없었을까.


 


기시다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여인은 어둠의 여행을 했던 사람들의 무의식에 존재했던 자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연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친구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각자의 가슴속에 가두어 두고 숨겼던 어둠의 자아들.


오하시는 어느 순간 기시다가 남겼다는 '서광'의 연작속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곳 세상은 하세가와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실종된 것으로 되어있고 과거 영어회화학원의 동료들은 또 다른 삶들을 살고 있다. 심지오 하세가와와 기시다까지.


참으로 기묘한 소설이다. 여행자들의 여정에는 일본 특유의 어둠침침한 스릴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리고 '야행'과 '서광'의 세상을 대비하여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반전의 묘미.

아마 독자들은 나처럼 어쩌면 '야행'의 어두운 세상이 있는가 하면 '서광'의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은 '야행'일지 '서광'일지도.


'밤은 어디에서나 통한다. 세계는 늘 밤이다.'

밤의 칠흑같은 어둠은 국경도 시간도 없이 늘 통한다. 그렇다면 어둠을 깨는 빛은 모든 것을 꿰뚫지 못하고 한시적인 세상만 보여주는 것일까.

폭염경보로 몸살을 앓는 이 여름에 잠시 어둠과 빛의 세상을 오가며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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