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부터 우리는 그녀를 줄리아나 포티스가 아닌 알렉스로 부르기로 한다.

그녀는 이미 법적으로 이세상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알렉스란 이름도 사실 그녀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장 많이 불리워진 이름이 알렉스이므로 우리도 그녀를 알렉스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녀가 컬럼비아 의대에 입학하고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고 다시 정부의 일을 하기까지

불리던 이름은 그들이 그녀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을 때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꼬리가 달리지 않는 신분으로 그녀는 안성맞춤이었다. 조금쯤은 냉철한 부모도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외동이었으며 다소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져 친밀한 이웃이나 친구조차 가지질 못했다.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그녀의 조건에는 냉철한 이성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무거운 입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정부쪽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개발한 수많은 약물중에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사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살상용 화학무기도 있었다.

그녀는 모든 화학물질들을 고르고 합성해서 인간의 힘을 무력화시키거나 혹은 고통을 잊게 만드는 약물로 반국가적인 활동을 하는 배신자들의 입을 열게 하는 '케미스트'가 되었다.


 

 

미국 첩보국을 대상으로 한 영화들이 그렇듯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정부쪽 사람들도 서로 견제가 심했다.

그녀의 상사이기도 했던 카스턴도 CIA의 견제가 못마땅 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쏟아부었던 알렉스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녀가 너무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최고 권력을 가지려는 자가 인류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개발된 바이러스를 이용해 권력을 쟁취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수 있는 관련자들을 하나 둘 처치하기 시작했다.

결국 알렉스는 가장 사랑했던 동료이자 스승인 바나비박사가 그들에게 살해당하자 홀로 탈출하여 계속 신분을 바꿔가며 도망치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가 얻은 셋집자체가 커다란 부비트랩이 되었고 그녀는 방독면을 쓴 채 화장실 욕조에서 잠드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녀를 쫓던 카스턴이 어느 날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해오고 그들의 조건을 들어주는 대신 그녀를 놓아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고독한 업무는 최고의 마약왕이 고용한 테러리스트 대니얼 비치였다.

그는 교사로 가장한 채 남미를 오가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겨왔고 마약에 섞어 유통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고의로 인플루엔자를 퍼뜨리고 백신을 팔아먹었을 것이라는 몇 년전 사건을 기억해낸다.

만약 알렉스가 건네받은 파일이 맞는다면 대니얼은 수십만명을 살상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행방을 아는 테러리스트였다. 알렉스가 카스턴의 제의를 수락한 것은 자신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것보다 수십 만명의 억울한 죽음을 막겠다는 사명감이 더 컸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독고다이식 첩보전은 결국 대니얼을 납치하고 그녀가 개발한 약물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저절로 자백에 이르게 하는 약물을 투여받고도 대니얼은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의 눈동자는 너무 선해서 알렉스는 잠시 그가 테러리스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아지트에 뛰어든 한 남자로 인해 그녀는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꽤 묵직한 분량을 읽어내리면서도 잠시도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작고 아담한 알렉스의 모습에 레옹에 나왔던 어린 마틸다의 얼굴이 겹쳐졌다. 여리지만 강하게 버틸 수 밖에 없었던 마틸다처럼 알렉스역시 전사로 변모한다.

괴물처럼 여겨졌던 '케미스트'란 이름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다시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 등불이 되었다.

그리고 음지에서 고독한 업무를 수행하는 첩보원들의 삶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세상에 군림하는 수많은 권력들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끝내 알지 못하는 수많은 비밀들이 묻혀있을 것이다.

알렉스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했고 결국 힘들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알렉스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는 세상에서.


숨막히던 추격전과 보이지 않는 암살자들과의 머리싸움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릴 만큼 뜨거웠던 더위도 잠시 잊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형제를 위해 정면대결을 펼치는 마지막 장면들은 정말 압권이었다.

분명 괜찮은 영화제작자들이 판권을 사들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알렉스의 마음을 흔들었던 대니얼은 누가 적당할지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한반도를 들었나 놨다하는 폭염을 잊게할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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