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때로 지금 내가 살고 이 세계 외에 또다른 공간에 현실과 똑같은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뿐 아니라 '나'역시 존재하고 다만 그곳의 '나'와 이곳의 '나'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오직 하나의

세상에서만 살아간다고 믿는 것이다. 흔히 이런 상상은 영화에서 현실화되기도 한다.

'평행이론'이나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영화처럼 실제하는 곳이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하시는 10년 전 같은 영어회화학원을 다니던 동료들과 함께했던 '구라마 진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모인다. 그 진화제에서 실종된 하세가와의 존재에 대해 서로가 입을 다문 채

각자 그 사이에 있었던 기이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카이씨가 다녀왔다는 오노미치, 다케다군이 다녀왔다는 오쿠히다, 그리고 유일한 여성인 후지무라가 다녀왔다는 쓰가루, 다나베씨의 덴류쿄여행까지.

그 여행에서는 '야행'이라는 동판화를 연작했다는 기시다의 그림과 닮은 곳들이 등장한다.

으스스한 밤을 주제로 어둠이 짙은 그림속에는 눈, 코, 입이 없이 마네킹을 닮은 여인이 오른 손을 들어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듯한 모습이 닮겨져 있다.

모두 여행을 시작했을 때에는 현실이었지만 여정이 계속되면서 전혀 현실같지 않은 공간을 다녀온 듯한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야행'연작 시리즈을 만든 기시다의 밤의 살롱을 드나들던 사내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분명 눈으로는 보고 있지만 결국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우리의 눈을 가려줍니다....당신은 부지불식간에 '언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어라는 틀에 갇혀 눈에 보이는 것조차 틀에 얽매였던 적은 없었을까.


 


기시다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여인은 어둠의 여행을 했던 사람들의 무의식에 존재했던 자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연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친구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각자의 가슴속에 가두어 두고 숨겼던 어둠의 자아들.


오하시는 어느 순간 기시다가 남겼다는 '서광'의 연작속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곳 세상은 하세가와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실종된 것으로 되어있고 과거 영어회화학원의 동료들은 또 다른 삶들을 살고 있다. 심지오 하세가와와 기시다까지.


참으로 기묘한 소설이다. 여행자들의 여정에는 일본 특유의 어둠침침한 스릴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리고 '야행'과 '서광'의 세상을 대비하여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반전의 묘미.

아마 독자들은 나처럼 어쩌면 '야행'의 어두운 세상이 있는가 하면 '서광'의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은 '야행'일지 '서광'일지도.


'밤은 어디에서나 통한다. 세계는 늘 밤이다.'

밤의 칠흑같은 어둠은 국경도 시간도 없이 늘 통한다. 그렇다면 어둠을 깨는 빛은 모든 것을 꿰뚫지 못하고 한시적인 세상만 보여주는 것일까.

폭염경보로 몸살을 앓는 이 여름에 잠시 어둠과 빛의 세상을 오가며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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