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 환경과 생태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상상력 아우름 16
최원형 지음 / 샘터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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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는 가끔 몇 년전 오늘 무슨일이 있었나를 알려주는 사진이 뜬다.

바로 얼마전인듯 한데 이렇게 세월이 흘렀었나 싶어 놀랄 때가 많다.

그 사진속의 풍경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사실 속내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은 그때와 결코 같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거울속에 비친 내 얼굴만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서서히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에 각성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저자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인간의 무지함에 절로 얼굴이 찡그려진다.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 로맨틱한 사랑의 징표로 등장하는 장미에게 아프리카의 눈물이 숨어있다니.

유럽에서 팔리는 장미의 70%를 생산하는 국가가 아프리카 케냐이고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람사르

습지인 나이샤바 호수 주변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장미농장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난한 국가의 경제를 책임져주는 이 장미가 왜 눈물의 장미가 되었던 것일까.

장미 한송이를 키우는데 대략 10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무한할 것 같은 호수의 물이 장미를 키우기 위해 사라진다는 것이다.

장미를 키우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쓰는 물도 부족해지고 농약의 사용은 늘어나고 수질은 점점

나빠지고 부족해져서 호수에 기대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진다고 하니 아름다운 장미에 숨은 눈물의 진실은 가슴 아프다.


 


자연은 순환이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영화 '대지'에서는 주인공이 복숭아를 먹고 무심코 버린 씨가 자라 무성한 나무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씨를 심기전에 자연은 스스로 알아서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었었다.

그 씨앗하나로 인해 연결된 인연을 보면 씨앗하나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 나무가 잘려져 표백제와 방부제로 목욕을 하고 인간에게 나무젓가락으로 자신의 모든것을

내주기까지의 긴 시간과 인연을 생각한다면 나무젓가락의 무게가 결코 가벼울 수가 없다.


 


무심코 버리는 비닐봉지 한 장, 가볍게 올리는 보일러의 온도 스위치조차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자각하기 시작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은 높아지고 이상기후로 인해 태풍과 폭우, 가뭄같은 재해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은 욕망을 멈추지 못한다. 지구의 허파가 결딴나고 구멍이 뚫려도 당장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한다.

브레이크 없는 욕망은 이제 파멸의 길로 향할 뿐이다.

나비의 팔랑거림이 지구 반대편에서 폭풍이 되듯 언젠가 되돌아올 재해를 예방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을 대체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욕심을 줄일 수는 없는 것일까.

물 한동이를 채우기 위해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커피콩을 따고 몇푼을 버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살아갈 소중한 지구를 위해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내가 내려놓은 욕심이 누군가에게 웃음으로 연결되고 그 웃음은 내 아이들에게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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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 춘추전국,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의리를 찾아서 아우름 15
공원국 지음 / 샘터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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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이란 말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옛것을 익히어 새것을 앎'이란

뜻이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속담도 있다.

흔히 새것만 쫓고 열광하는 우리들에게 옛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이라고 하겠다.

과거의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심오한 말도 있다. 이렇듯 지나온 시간속에 녹아있는 지혜를

건져내는 것이 진정한 현자가 아닐까.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한 저자의 노고를 빌어 선인들의

역사를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한다.


 


세상이 아무리 진화하고 질서가 바뀌고 가치관이 변한다해도 정신의 몸뚱이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기계의 능력이 우리를 잠식해도 고전의 중요함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군웅할거시대이기도 했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과 사건을 통해 지혜를 건져내는 저자의

솜씨가 대단하다.

'스스로 관대하고 남에게 혹독한 사람이 남의 위에 오르면 흔히 압제가가 되고 남의 아래에 있으면

광폭한 사람이 된다'.

매운 시집살이를 한 여인이 다시 매운 시어머니가 되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영원할것만 같았던 진시황이 죽자 나가가 어지러웠다.  그 시절 난다긴다하는 장수들이 모두 패권을

다투었으나 미천한 출신의 백수건달 유방이 나라를 평정하고 한나라의 왕이 된다.

그가 비록 배운것이 없고 게으름뱅이였으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사람이었기에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고 결국 한나라의 왕이 되었던 것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신의 결점을 알기에 남에게 관대한 사람, 바로 보통 사람들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

관대함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관대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더 까칠해지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한다. 진나라가 어지러웠을 때 유방이 나라를 평정한 것처럼 지금 우리곁에 유방과 같은 보통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승과 패를 오갔던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과연 공과 사를 어떻게 구분지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과연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혹은 리더가 공과 사를 어떻게 구분지어야 하는지

굴무와 장왕의 이야기에 해답을 찾아보게된다. 자반과 자중이 사적인 원한을 공적인 힘으로 푸는 바람에 나라가 망할뻔 했듯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사적인 일로 써버리면 자반이나 자중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귀절에서 절로 무릅을 치게 되는 것이 역시 옛 거울을 나를 비추어 봤다면 이런 사달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 큰 힘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

과연 맞는 말이다. 마치 천 년을 살것처럼 잠시 쥐어진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말처럼 국민이 부여해준 힘을 바르게 쓰지 못한 권력자들이 너무도 많다.

'남용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차라리 사적인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저자의 이 일갈이 지금 우리가 원하고 있는 정의이다.

세상이 이렇게 진화해도 변하지 않는 고전의 진리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굳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만 무섭다 할 것인가. 고전속에 예언이 있으니 마땅히 거울처럼 비추어야 할 것이다.  작지만 큰 교훈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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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혁신이 가져올 새로운 전문직 지형도
리처드 서스킨드.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위대선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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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의 50%가 없어지고 30년 이내 인간의 노동력은 80%이상 기계로 대체될 것이란 예견이 나오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수많은 직업이 만들어지고 사라진 것은 물론 지금도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는 수많은 기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왔다.

그런면에서 이같은 예견은 적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직종중에서도 '전문직'이라고 일컫는 직종에 관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전문직이라는 정의를 보면 인류가 살아가가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실무에 선두를 달리는 직업, 예를 들면 의사, 변호사, 회계사등이 있고 언론인이나 건축가도 전문직이라고 볼 수 있다.

각분야에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제공하고 이를 제공받는 사람들의 의존성이 높은 직종들이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의 공저이다. 광범위한 분야의 전문직들을 파악하고 연구하여 썼을 이 책이 그만큼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이유도 아마 이같은 특징이 있기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의존도와 비례하여 우리는 전문직을 가진 이들을 높이 평가하고 대접해온 것도 사실이다.

전문직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비용을 지불해왔고 존경으로 그 노력을 치하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존경받는 전문직이 미래에도 존재할 것인가. 실제로 사무실임대료조차 못낼 정도로 치열해진 변호사들은 부동산중개업에 뛰어들기도 하고 회계사와 컨설턴트는 변호사와 보험계리사의 사업영역에 진입해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경영인들이 해왔던 일을 IBM의 컴퓨터 왓슨이 대행하거나 의료계통에서도 로봇이 등장하는등 기계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100년동안에 진행되었던 일들이 이제는 그 시간이 단축되어 불과 10년 만에도 가능해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무쌍의 시대에 과연 미래의 전문직의 모습을 어떻게 달라져야하는지를 저자들이 제시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지렛대는 바로 인터넷의 발달을 꼽는다. 그동안 전문가의 지식이나 능력을 빌어야 했던 영역을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차지하거나 공유하면서 전문직이 설 자리는 점점 적아지리라는 것이 저자들의 예측이다. 하지만 분야에 따라 인간이 설 자리가 더 넓어지는 곳도 분명 있다고 한다.

어쨌든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희망하는 사람들은 기계와 함께하는 미래를 설계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미래의 전문직은 더 세분화되거나 여러직종의 전문직과 융합되고 다각화되어 그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에 기존의 전문가들은 재구성되는 현실에 능숙해져야 한다. 미래의 전문가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즉 '유연성'이 있어야 하고 나날이 변화되는 의사소통방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 책은 전문직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미래 인간이 맞닥뜨릴 직업이나 산업구조에 대해 전반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전문직을 원하는 사람이나 정책결정자 그리고 학자등이 읽어야 할 이유이다.

새롭게 제시된 미래의 모델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섬세하고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미래에 선망받는 직종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는 산업구조에 알차게 대처할 수 있도록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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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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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노벨 문학상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가수 밥 딜런에게로 돌아갔다.

가장 유력한 수상후보였던 하루키는 자신도 밥 딜런의 팬이라고 말함으로써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 듯 하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굳이 수상을 의식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매해 수상후보로 오르다보면 은근히 기대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미 여러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이라는 것이 살짝 거부감이 없진 않으나 오로지 작가로서의 역량만 본다면 결과가 아쉽다.

나는 그의 작품이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해왔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더불어 유럽에 대한 모더니즘스런

분위기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요리만해도 하루키의 그런 선망이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전통적인 일본음식보다는 서구화된 요리를 등장시킨 하루키는 미식가적인 일면이 있는 듯하다.

실제 여행애호가로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만난 서양요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측면도 작용한 듯 싶다.


 


혼자 먹기 위해서 혼자 만드는 음식이라는 스파게티는 말 그대로 레시피가 간단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국수를 삶듯 스파게티면을 삶아 소스에 버무린 간단한 요리. 하지만 하루키가 그린 스파게티 요리는 면 삶기부터 아주 섬세하다.  면의 가운데 심의 거친 질감이 남아있는 상태인 알텐테가 되기를 기다리는 심오한 면삶기 과정을 보면 결코 간단한 요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킨 요리는 소설속 인물들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요리인지라 유심히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없이 혼자 만드는 스파게티라든지 퇴근하는 아내를 위해 독신 때 즐겨먹던 중국식 야채볶음을 만드는 남자가 등장하는 '태엽감는 새 연대기'는 아내가 소고기와 피망을 같이 볶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말로 남편과의 거리를 나타낸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는 애인과 헤어지고 자신의 집에서 와타나베에게 튀김과 완두콩밥을 지어준다.

한껏 먹고 정액을 많이 만들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부드럽게 풀어줄테니까.

미도리의 요리는 요염한 여인의 정념이 스며있다.

이렇게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는 조연이지만 주연 못지 않은 페이소스가 깃들어 있다.

오죽하면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이 생겨났을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를 시연하면서 문학을 해석하는 이색모임이 생길정도라면 조만간 노벨 수상소식도 들려올 것 같다. 소설을 눈으로 코로 입으로 느끼는 독자가 이렇게 많은데 너무 늦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멋진 쉐프가 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다음 소설에 등장할 그의 요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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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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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3주 앞둔 라파엘은 사랑하는 연인 안나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인기있는 스릴러 작가인 라파엘은 3년 전,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런던을 찾았다가 나탈리를 만났었다.

나탈리는 생물학자인데다 첨단 의료장비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하루 열 여덟 시간씩 일하는 사업가였다.

어쩌다가 나탈리에게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고 테오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하지만 테오가 세상에 나온지 열흘만에 일에 복귀한 나탈리는 캘리포니아로 떠나기로 했다고 선언한다.

좋은 엄마와 아내가 될 자신이 없다면서 냉정하게 그를 떠났었다.

그후 아들 테오를 양육하느라 글을 쓸수도 없었고 결국 테오가 열이 불덩어리처럼 오르던 날 소아과 병원에서 인턴인 안나를 만나게 된다. 그후 6개월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제 결혼을 앞둔 라파엘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가 안나에게 이제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비밀을 갖지 말고 서로 고백하자고 제안하기 전까지는.


 


사실 안나는 자신의 과거를 거의 말하지 않았다. 너무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안나에 대해 라파엘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라파엘의 제안에 급격하게 어두워진 안나는 자신의 테플릿PC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저지른 짓이라고 고백한다.

사진을 본 라파엘은 구토를 일으킬만큼 큰 충격에 빠져 안나를 뒤에 두고 펜션을 뛰쳐나온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펜션에 돌아갔을 때에는 이미 안나는 사라진 후였다.

어떤 과거가 되었든 지켜주겠노라고 큰소리쳤던 라파엘은 깊은 후회에 빠지고 안나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에도 친구에게도 그녀의 흔적은 없다. 휴대폰마저 꺼버린 안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라파엘에게 보여주었던 사진에 얽힌 그녀의 과거와 비밀은 무엇일까.


 


사진에 찍힌 불에 탄 시체는 누구이고 과연 그녀가 그런 짓을 하기는 했을까? 온통 의문투성이에 빠진 라파엘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강력계형사출신 마르크의 도움을 받아 안나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밝혀지는 안나의 행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느 날 갑자기 파리에 나타난 열 여섯 소녀의 진짜 이름은 클레어 칼라일!  거짓 이름으로 비밀스럽게 살아온 안나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오래전 소녀들을 납치한 범인에 의해 사라졌던 소녀들과 유일하게 지옥에서 탈출했던 소녀.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인물로 판명이 났고 그 뒤 파리에 나타난 소녀는 안나라는 이름으로 8년을 살게 된다.  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던걸까. 얼핏 연쇄납치범에 의해 희생된 소녀의 사건을 수사하는 것 같은 이 소설은 진실에 다가갈 수록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음을 알게된다.

평범했던 교수와 그의 제자가 세상의 거대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과거를 세탁하게 되고 그 나비의 날개짓은 멀리 파리에 언어연수를 왔던 소녀에게 비극적인 바람으로 몰아치게 된다.

"당신은 권력을 쟁취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군요?"

라파엘은 권력의 뒤에 숨어있던 비선 실세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법의 공정성은 믿어요? 세상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법이 있다면 바로 강자의 법이죠."

허탈하다. 대통령 탄핵으로 권력의 시녀들에게 농락당한 우리들에게 비수를 꽂는 말이다.

다수에게 도움을 되는 권력을 얻고자 했다는 그들의 말도 안되는 논리에 분노가 치밀 뿐이다.


우연이었을까. 이 비극적인 소설의 범인은 욕망과 추함을 가진 권력의 실세들이었다.

작가인 라파엘은 추적끝에 맞닥뜨린 이들에게 어떤 판결문을 던질 것인가.

사라졌던 클레어는 다시 라파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책장을 덮기 몇 분 전 드러나는 작가의 기막힌 반전은 또 어떠하고.

선한 표정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비선실세들의 추악함과 자식을 잃은 아비의 또 다른 복수가 얽혀 도무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 때문에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이 없고 끔찍한 사건또한 언제든지 이어질 것이다. 소설이지만 현실보다 더 리얼한 스토리에 권력을 위해 상처를 준 많은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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