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노벨 문학상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가수 밥 딜런에게로 돌아갔다.
가장 유력한 수상후보였던 하루키는 자신도 밥 딜런의 팬이라고 말함으로써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 듯 하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굳이 수상을 의식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매해 수상후보로 오르다보면 은근히 기대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미
여러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이라는 것이 살짝 거부감이 없진 않으나 오로지 작가로서의 역량만 본다면 결과가 아쉽다.
나는 그의 작품이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해왔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더불어 유럽에 대한 모더니즘스런
분위기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요리만해도 하루키의 그런 선망이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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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일본음식보다는 서구화된 요리를 등장시킨 하루키는 미식가적인 일면이 있는 듯하다.
실제 여행애호가로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만난 서양요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측면도 작용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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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기 위해서 혼자 만드는 음식이라는 스파게티는 말 그대로 레시피가 간단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국수를 삶듯 스파게티면을 삶아 소스에 버무린 간단한 요리. 하지만 하루키가 그린 스파게티 요리는 면 삶기부터 아주 섬세하다. 면의 가운데
심의 거친 질감이 남아있는 상태인 알텐테가 되기를 기다리는 심오한 면삶기 과정을 보면 결코 간단한 요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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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킨 요리는 소설속 인물들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요리인지라 유심히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없이 혼자 만드는 스파게티라든지 퇴근하는 아내를 위해 독신 때 즐겨먹던 중국식 야채볶음을 만드는 남자가 등장하는 '태엽감는 새
연대기'는 아내가 소고기와 피망을 같이 볶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말로 남편과의 거리를 나타낸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는 애인과 헤어지고 자신의 집에서 와타나베에게 튀김과 완두콩밥을 지어준다.
한껏 먹고 정액을 많이 만들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부드럽게 풀어줄테니까.
미도리의 요리는 요염한 여인의 정념이 스며있다.
이렇게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는 조연이지만 주연 못지 않은 페이소스가 깃들어 있다.
오죽하면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이 생겨났을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를 시연하면서 문학을 해석하는 이색모임이 생길정도라면 조만간 노벨 수상소식도 들려올 것 같다. 소설을 눈으로 코로
입으로 느끼는 독자가 이렇게 많은데 너무 늦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멋진 쉐프가 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다음 소설에 등장할 그의 요리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