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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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들을 찾아가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같이 왕의 일정을 기록하고

일생을 기록한 책은 세계적으로도 귀한 유산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역사의 기록이 그러하지만 대체적으로 권력을 가진자나 승리를 한자의 기록인 경우가 많다.

이름없이 아니 이름이 있다해도 그 시대에서 낙후된 인생을 살다간 자들의 기록은 많이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천하지만 특별한'조선노비들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우선 우리가 노비들에 대한 막연한 지식을 얻게했던 사극에서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노비'라는 말자체가 남자종과 여자종을 나누어 이르는 말이라는 것도 그리고 노비주의 집안에서 생활했던

'솔거노비'와 집밖에서 생활했던 '외거노비'가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이다.

이 정도의 무지라면 위안이 되련만 공부하고 양인을 가르치는 노비까지 있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글 읽는 노비, 박인수'처럼 노비주의 집밖에서 생활하면서 글을 읽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양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노비라니, 그동안 내가 알았던 노비에 대한 생각은 여지없이 깨어진다.

노비주에게 갚아야 하는 일정량의 의무만 이행되면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늘 고개만 숙이고 비천하게 살아갔을것 같은 노비들에게도 말하자면 계층이 있고 처우가 달랐다는 뜻이다.

크게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된 노비가 있었는가 하면 술주정을 하다 주인에게 맞아죽은 노비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시대마다 양인과 노비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양인이 되거나 노비가 되는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은

지배계급이 누리고자 했던 시스템에 의해 흔히 팔자가 달라진 셈이다.

이런 시스템의 부작용으로 급격히 양인이 줄어든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유발되었다고

하니 국가의 경영에 있어 신분의 경계를 나누는 시스템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한 죄를 지은 사람을 노비로 만드는 제도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경혜공주와 같이 왕족이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가장 귀한 신분에서 가장 비천한 계급으로 추락하는 상황은 한편의 드라마같은 이야기이다.

반대로 노비의 신분에서 면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였다고 하니 평생 노비로 살다가 자식에게도 신분을

물려줘야 했던 노비들의 신세가 가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안타까운 노비들의 후손이 내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 조선시대 인구의 30%가 이런

노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의 집안은 양반이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중에 상당한 사람들이 노비들의 후손임을 알게되면

기록되지 못한 조상들의 삶이 묵직하게 다가올 것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런 불평등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감사함이 우러난다.

찾기 힘든 기록을 발굴하고 막연했던 상식을 뒤집어준 저자의 열정에 존경을 보내며 이 책에 소개된 천하지만

특별했던 노비들뿐만 아니라 이름없이 사라져간 노비들에게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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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독이는 한국의 명수필 :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피천득 외 지음, 손광성 엮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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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은 기름진 음식보다 소박하고 깔끔한 나물반찬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잘 담근 된장이며 고추장에 그저 참기름 몇방울이나 쳐서 내놓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간직한 그런 나물반찬이 그득 차려진 밥상을 받는 느낌이다.

특히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들판에서 자란 흙냄새 그득한 냉이며 쑥, 매콤한 달래에

씁쓰레한 씀바귀까지, 말미에 잘 볶은 커피를 내려 입가심까지 한 것같은 수필집을 만났다.

수필하면 피천득의 '인연'과 낙엽을 태우면 잘볶은 커피냄새가 난다던 이효석이 떠오른다.

 

 

수필은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싱싱함이 느껴지고 천연으로 물들인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고운 명주가 연상된다.

소설처럼 화려하거나 난해하지 않지만 사람냄새 물씬나는 생동감이 묻어있다.

 

'한국이 명수필'이라고 명할만큼 이 책에는 한국 수필사에 길이 남을 수필 60여편이 실려있다.

30여년동안 교단에서 문학을 가르쳐온 편자가 어렵게 고르고 고른 알토란같은 작품들이다.

한국문학의 거장들인 나도향, 이상, 피천득에 이어 최근 베스트셀러 시집을 출간했던 안도현에

이르기까지 귀한 작가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작가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부터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오래전 쓰여진 글중에는 요즘은 흔히 쓰지 않는 단어나 표현들이 들어있어 새삼 묵은 시간들이

다가오기도 한다. 요즘은 웬지 음식도 글도 예전이 더 좋았던 것같고 문득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민태원의 '청춘 예찬'-

 

이 수필은 아마도 고등학교적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이 청춘에 대한 예찬이 그 때는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태풍의 눈속에 갇힌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었다.

그 때가 청춘이었는지 아직은 신록이었는지 가늠은 안되지만 분명 내게도 피끓는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이 청춘예찬은 결코 청춘일 때는 할 수가 없다.

긴 시간이 지나서 시나브로 청춘이 떠나가고 못견디게 청춘이 그리워질 무렵에야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일. 살다보면 그런 일들은 너무도 많다.

어려서 공부로 만났던 수필들이 이제는 늙어가는 친구들의 수다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꾸밈없이 민낯으로 만나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글들이 그리울 무렵이면 이제 '노을예찬'을 쓰고도 남는

나이가 되었다는 뜻일까. 아마도 이런 명수필집은 긴 세월이 흘러 다시 집어 들어도 새록 새록 내 마음을

파고들 것이다. 붉게 멍든 가슴에 넣어도 소화 잘되는 그런 편안한 글들이어서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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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사의 건강백신 - 전 국민 건강 블로그 <뉴욕에서 의사하기>의 레알 건강 토크
고수민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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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직업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섬세한 일을 해서인지 사물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꼼꼼한 것같다. 한국에서의 의사노릇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미국이란 나라가 좀더 일하기가

좋았던 것인지 저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시험에 합격하고 총 4개의 전공을 거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얼마전 몸이 불편하여 수술을 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보통 의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만 1시간이 넘고 진료시간은 10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들은 이런 불합리함에 불만을 느끼고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를 진찰해야 하는

의사 역시 힘든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미국의 병원은 예약이 아니면 진찰이 어려운데다 하루 진찰할 수 있는 환자수도 적어서 환자나

의사들의 불만이 적다고 한다. 물론 진료비는 엄청나게 비싸지만.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미국행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대중들과 소통하게 된 계기가 영어때문이었다는데 단기간에 영어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듯이 의학이라는 것은 평생 공부하지 않으면 힘든 학문임을 고백하고 있다.

인종의 차이에 따라 혹은 환경의 차이에 따라 질병의 종류도 다르고 처방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많은 의학처방중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 혹은 잘못 알았던 것들에

대해 꼼꼼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흔히 주변에서 가장 많이 호소하는 요통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글은 그동안 알아왔던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것들이었다.

요통환자들에게는 딱딱한 침대가 좋다든가 디스크에 수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견은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주변에서도 지긋지긋한 요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빠른 수술처치를 원했던 사람들 중에는 개선되지 않았거나

다시 재발하는 등에 부작용이 있음을 봐왔기에 저자의 냉정한 조언에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뭐든 쉽고 빠른 방법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부분이 바로 이점이다.

미국의 물리치료라함은 단순히 뜸을 뜨거나 전기치료, 지압같은 것이 아니라 운동요법을

통한 근력의 강화라든지 적응력을 높이는 방법같은 조금은 느리지만 원인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들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의사가 아무리 이런 방법을 권해도 '빨리 빨리'를 외치면서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까지 내리는 태도를 고쳐야 할 것이다.

 

 

지금도 이글을 쓰기위해 컴퓨터앞에 있지만 편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증상들이 나타나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주장에 주목하게 된다.

나 역시도 오십견이나 목디스크가 아닌가 의심한 정도로 목과 어깨부분의 통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대개 디스크의 문제가 아닌 근육의 문제인 '근막통증 증후군'이라니 잘 보는 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삽결살의 지방이 엄청난 칼로리때문에 '삽결살'이 아닌 '삼겹지방'이라고 부르기를 제안하면서

사실 자신도 삼겹살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쇠고기보다는 삼겹살을 먹겠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져 왜 많은 네티즌들이 그의 글에 열광하는지 알 것만 같다.

마침 TV에서는 '의사선생님'인 시대에서 '의사놈'으로 불릴만큼 의사들의 겸양과 사명이

죽어가는 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저자가 일러주는 의학상식중에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말도 많이 있지만 상식을 뒤집는

자신의 소신을 담은 조언도 많았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그리고 삶의 질을 걱정하는

같은 시대의 동반자로서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은 이유는 바로 그의 '진심'이 아닌가 싶다.

그의 따뜻한 손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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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지혜 -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 알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희망의 선율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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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하나인 런던의 조그만 아파트 선반 위에는 기념품이 담긴 상자 두개가 놓여있다.

첫 번째 상자에는 가족들의 사진이 담겨있고 두 번째 상자에는 스크랩북 두 권이 담겨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알리스가 두 차례 이민을 하면서 가지고 다닌 스크랩북이라고 한다.

올해 우리 나이로 111세가 된 알리스는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기념품들을 버렸다고 했다.

아마도 과거의 상처가 배어있거나 슬픈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내 기억은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까. 내 삶은 내 마음속에 있거든요."

 

100년 하고도 3년이란 시간을 살아온 알리스가 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면서 바로 여기에 모든 기억이

있노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가 얼마나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몸은 쇠락하였으나 기억을 담은 그녀의 뇌는 여전히 젊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가 간직한 기억속에는 수많은 아픔들이 쌓여있을 것이다.

그녀가 타고난 낙천주의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악독한 나치의 살육전에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지만 사람은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야 생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알리스의 긍정역시 놀라운 일이다.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은 알리스가 예술가의 기질을 가진 어머니 소피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 연주가가

된 것은 그녀가 헤치고 지나야 할 비극적인 삶에 긍정의 요소일 뿐만아니라 삶을 지탱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분명 그녀의 재능은 전 세계에 알려졌을 것이고 행복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체코의 나치 수용소인 테레진에서의 그녀의 피아노 연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에게

커다란 선물이 되었다.

 

'우리에게 음악은 음식이었어요. 난 이 말은 할 수 있어요. 영혼을 울리는 것을 갖고 있으면 음식은 필요치

않아요. 음악은  생명이었어요.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할 수도 없었고, 포기하려 들지도 않았어요.'

-145p

 

그 지독한 전쟁과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힘도 음악이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을 하면서

지금까지 오랫동안 살아온 힘도 음악이었다.

100년을 살아오면서 그녀가 경험한 것들은 대부분 경이로운 것들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TV를 보고 심지어

아이폰에 이르기까지..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경이로움을 호기심과 특유의 적응력으로 극복했다.

 

'증오는 독특한 것이다. 가장 낮은 수준의 문화가 있는 곳에서는 증오가 가장 강하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괴테-

'경솔함과 사악함 사이에는 묘한 상호 의존이 있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나치가 인류에게 행한 그 지독한 악(惡)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에 때로 인간은 가끔 선한 모습으로

무장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백년을 넘어 살아온 알리스는 단순히 그냥 오래산 할머니가 아니다.

그녀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넘어 인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사랑'이 아닐까.

물론 그녀의 말처럼 단순한 '섹스'의 뜻이 아닌 서로가 존경의 경지에 이르는 가장 아름다운 소통들.

그녀를 알았던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도 그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유가 바로 해답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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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내려놓기 - 깨달음을 주는 74가지 이야기
황통 지음, 최인애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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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베이비붐세대에 태어난 내 또래의 사람들은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끼고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자그마한 것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쓰임이 있을까 싶어 모아둔 것들 때문에 집은 늘 어수선하다.

어느 통계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다시는 쓰지 않을 물건이 70%가 넘는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덜어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온갖 것들을 끼고 살고 있다.

 

'깨달음을 주는 74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단순히 '생각 내려놓기'뿐만 아니라

덜어내는 법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다.

 

 

생각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운명이 된다는 진리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운명은 순탄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욕칠정에 둘러싸인 인간의 탐욕은 '내려놓기'나 '덜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스로가 알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어떻게하면 최단코스를 이용하여 성공의 지름길을 달려갈 것인지에 골몰한다.

하지만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가들은 결코 직선의 길을 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그재그로 빙 돌아서 가는 길이 결국은 정상에 닿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하는데 빤히 보이는

정상을 두고 빙 둘러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이었지만 원수처럼 서로 으르렁 거리는 부부의 이야기는 사실

남의집 이야기가 아니다.

잠깐 참으면 될 일을 서로가 상처를 주는 말로 할퀴고, 그렇게 나간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크게 후회하고 만다. 하지마 마침 그 차를 타지 못해 화를 면한 아내가 돌아오자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물론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상대방을 대한다면 어찌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겠는가.

 

'비워내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사람들이 채우고자 하는 그 탐욕의 방은 이미 아름다운 것보다는 더러운 것들이 그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꾸 채우고 싶은 욕망은 사그러들지 못하고 오늘도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청빈한 삶을 살다간 법정스님의 삶에서 우리는 '내려놓기'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매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부족함을 느껴 더 많은 황금알을 얻기위해 거위의 배를 갈랐다는 부부의 우화처럼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기위해 소중한 무엇인가를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이 귀한 이야기들을 채집하였는지 모르지만 단순한 우화가 아닌 지금도 우리 실생활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어리석은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어른우화집이라고 하겠다.

잠시 채우려고만 했던 밥통을 내려놓고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자.

곁에 있는 맑은 물에 통을 깨끗이 씻어 비우고 이제 더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채워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권해주고 싶은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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