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독이는 한국의 명수필 :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피천득 외 지음, 손광성 엮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아주 가끔은 기름진 음식보다 소박하고 깔끔한 나물반찬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잘 담근 된장이며 고추장에 그저 참기름 몇방울이나 쳐서 내놓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간직한 그런 나물반찬이 그득 차려진 밥상을 받는 느낌이다.

특히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들판에서 자란 흙냄새 그득한 냉이며 쑥, 매콤한 달래에

씁쓰레한 씀바귀까지, 말미에 잘 볶은 커피를 내려 입가심까지 한 것같은 수필집을 만났다.

수필하면 피천득의 '인연'과 낙엽을 태우면 잘볶은 커피냄새가 난다던 이효석이 떠오른다.

 

 

수필은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싱싱함이 느껴지고 천연으로 물들인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고운 명주가 연상된다.

소설처럼 화려하거나 난해하지 않지만 사람냄새 물씬나는 생동감이 묻어있다.

 

'한국이 명수필'이라고 명할만큼 이 책에는 한국 수필사에 길이 남을 수필 60여편이 실려있다.

30여년동안 교단에서 문학을 가르쳐온 편자가 어렵게 고르고 고른 알토란같은 작품들이다.

한국문학의 거장들인 나도향, 이상, 피천득에 이어 최근 베스트셀러 시집을 출간했던 안도현에

이르기까지 귀한 작가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작가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부터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오래전 쓰여진 글중에는 요즘은 흔히 쓰지 않는 단어나 표현들이 들어있어 새삼 묵은 시간들이

다가오기도 한다. 요즘은 웬지 음식도 글도 예전이 더 좋았던 것같고 문득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민태원의 '청춘 예찬'-

 

이 수필은 아마도 고등학교적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이 청춘에 대한 예찬이 그 때는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태풍의 눈속에 갇힌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었다.

그 때가 청춘이었는지 아직은 신록이었는지 가늠은 안되지만 분명 내게도 피끓는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이 청춘예찬은 결코 청춘일 때는 할 수가 없다.

긴 시간이 지나서 시나브로 청춘이 떠나가고 못견디게 청춘이 그리워질 무렵에야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일. 살다보면 그런 일들은 너무도 많다.

어려서 공부로 만났던 수필들이 이제는 늙어가는 친구들의 수다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꾸밈없이 민낯으로 만나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글들이 그리울 무렵이면 이제 '노을예찬'을 쓰고도 남는

나이가 되었다는 뜻일까. 아마도 이런 명수필집은 긴 세월이 흘러 다시 집어 들어도 새록 새록 내 마음을

파고들 것이다. 붉게 멍든 가슴에 넣어도 소화 잘되는 그런 편안한 글들이어서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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