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이와 차이 - 장애를 지닌 언어학자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얀 그루에 지음, 손화수 옮김, 김원영 추천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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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사려 깊은 언어로 고찰한 아름다운 책!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세 살 때 척수근육위축증이라는 난치성 유전질환을 진단받은 언어학자 얀 그루에의 자전적 에세이다. 척수근육위축증이란, 표준적인 임상 사례에 따르면 스무 살이 넘으면 걷지 못하고 서른 살이 넘으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를 진행성 질환이다. ‘신경근 질환의 임상 징후를 보이며, 모든 근육 부위에 영향을 미치는 근병증일 것으로 보임. 부모와 지원 기관의 성인들로부터 상당한 추가 지원과 후속 조치가 필요함.’과 같은, 일말의 기대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병원과 기관의 음울한 언어에 규정된 삶을 살아온 그다.

 

‘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여전히 걸을 수 있었다. 한계는 스물다섯 살로 확장되었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되었고, 여전히 걸을 수 있었다. 한계는 서른 살로 확장되었다. 나는 서른 살을 넘겼다.’ 그렇게 미래를 약속할 없는 시간을 통과하며 이제는 오슬로대학교의 언어학 교수이자, 한 아내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 이렇게 살아남은 그는 이 책을 통해 ‘한 인간으로 거듭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한 인간으로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는 이 책을 통해 장애를 지닌 언어학자로서, 인간의 존재에 관한 깊은 성찰을 자신만의 언어로 실현하려 한다.

 

 

 

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부류에 속한 존재였다.

그 하나는 이상한 동물, 또 다른 하나는 낯선 하이브리드 생명체였다. / 148p

 

 

 

  “좋아 보인다” “건강해 보인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말이지만, 얀 그루에는 이 사소한 언어에서도 마음이 흔들린다고 한다. 나의 신체가, 곧 ‘나’로 규정 지어진 삶을 살아온 그로서는 사람들이 미처 내뱉지 못하고 삼킨 그 이면의 언어까지 읽어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살아 있었느냐고, 그리 오래 살지 못할 줄 알았다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미래를 예단하지 않았건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이미 그의 운명이 하나로 정해진 듯했다.

 

 

  그는 유년 시절에 대해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을 거의 누릴 수 없는 아이“였다고 회고한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했다. 다른 아이들이 추운 겨울날 운동장에서 뛰어 놀 때 교실에 홀로 있었고, 다른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받을 때는 물리치료사와 함께 있었다. 학교의 인턴 교사 또는 정형외과 의사 등등. 그들은 평가에 근거해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책임을 진 어른들이었다. 물론 지원 기관에서 나온 호의적인 사람들은 그에게 선한 시선을 보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선한 시선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외로웠다. 하나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하나의 신체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이 머무르는 하나의 대상물이 되어야 하는, 타인이나 조력 기관에 의지해야만 하는 그는 늘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응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 그것은 자의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삶의 한 형태 속에 내가 배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이 문서들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것은 의약 치료 기관, 물리치료 기관, 교육기관, 정부기관, 자치기관, 법률 기관, 여행사 들의 시선이다. 이 시선은 나를 하나의 물건, 운송 문제를 야기하는 상품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 / 49p

 

 

이처럼 묘사된 나 자신을 바라보니 매우 이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록적 언어이고, 병원과 기관의 언어였다. 기록 속에서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관한 전망도 꽤 많은 자리를 차지했으며, 그 미래는 매우 어둡고 음울하게만 보였다. 이러한 언어에서는 모든 긍정적 고려 사항은 잠정적이고 유보적이다. 병원과 기관의 언어는 절망의 언어다. 일말의 기대감도 찾아볼 수 없다. / 80p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낙인을 뜻하는 스티그마(Stigma), 즉 신뢰할 수 없는 가시적 표식에 관해 글을 쓴 바 있다. 스티그마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피부를 불에 지져 표식을 남기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 표식을 지닌 사람은 탈옥자이거나, 폴리스(Polis)에 발을 들여 놓기에 적절치 않은 사람이라 간주되었기에 사람들은 이러한 표식을 지닌 이와는 말을 나누거나 함께 어떤 일을 하는 것을 기피했다. 이 표식을 지닌 사람은 타인의 존중을 받지 못했다. 선천성 근육질환은, 병명은, 휠체어는, 얀 그루에게 있어 일종의 스티그마인 셈이었다. 덕분에 그 역시 수치심을 피할 수 없었고, 타인의 존중을 기대하기 어렵기도 했다. 정상에서 벗어난 아이, 무리에서 튀는 아이, 무리를 귀찮게 하는 아이,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죠? 여긴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얼른 나가세요…….

 

 

 

휠체어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는 것을 강요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좁은 길을 지날 때나 묵직한 대문을 지날 때면 협상을 하거나 밀어붙여야 한다. 의도치 않게 나 자신이 방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나 저 학교나 할 것 없이)은 학교 건물에 자동문을 설치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른 학생들이 문을 열어 주고 붙잡아 주면 된다고 했다. 타인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던가? 도덕적 경험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덕적 교훈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104p

 

 

나는 요구 사항이 많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문제 그 자체로 인식될 여지가 많다. 그들이 내게 차마 던지지 못했던 질문은 모든 질문 중에서 가장 명백한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 150p

 

 

 

  이처럼 병의 진단은 마치 중력장처럼 그의 일생 전체를 무겁고 강렬하게 끌어당긴다. 그것은 곧 그의 정체성이 되고 그의 삶 곳곳에서 일상을 지배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삶이 ‘생존에 관한 역사이며 불행에서 구제된 존재’였음을 안다. 그래서 자신을 닮은 사람들, 닮았던 사람들, 그리고 불행에서 구제되지 못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병약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어른이 되어서도 서사적 형태의 삶에 순응할 적절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평생 상이성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 평생 자신만의 이상한 삶을 부여잡고 살아야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무슨 일이 생길까를 물어온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내가 왜 이것을 기록하고 있는가?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내가 인간이 되기까지.

내게서 변했던 것들.

내게서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 / 221p

 

 

 



 

 

 

 

  얀 그루에는 ‘없던 몸’을 향한 슬픔과 동경은 평생 두고서도 떨쳐 버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만약 내 삶이 의사들이 예상했던 대로였다면, 만약 내가 지원 기관들이 예상했던 대로 살았다면, 만약 내가 더 넓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더라면, 내 삶의 가치는 지금보다 줄어들었을까?’ 하고 질문한다. 그래서일까, 비록 신체는 한계로 규정 지어졌을지라도 ‘나는 견고한 실체다’라고 말하는 그의 성찰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취약성이란 일이 얼마나 쉽게 잘못될 수 있는지 확신하는 것이다. / 176p

 

 

우리는 표본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길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우리는 각각 다른 삶의 방식을 하나하나 직접 시험해 보아야 하며, 어떠한 보장도 없이 수많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206p

 

 

 

  이처럼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어린 나이에 난치성 질환을 진단받은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사려 깊은 언어로 고찰한 아름다운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허투루 읽히지 않을 만큼 유려한 언어와 폐부를 찌르는 질문들은 한 권의 철학책 같은 사유하는 즐거움을 준다. 나를 비롯해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한계와 범주에 규정된 삶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숙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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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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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 자의로, 타의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의 삶을 들여다 보다!

아프리카 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동아프리카인들의 실존 문제를 매우 예리하게 그려낸 작품!

 

 

 

  얼마 전, 흑인 노예 역사와의 화해를 시도한 소설 『빌러비드』를 읽고 흑인 문학 혹은 난민을 주제로 한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중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들의 운명에 대한 타협 없고 열정적인 통찰을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그가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되어서이기도 하지만, 가 닿지 못할 낙원을 향한 상실자들의 애환을 어떠한 방식으로 그려냈는지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은 아프리카 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동아프리카인들의 실존 문제를 매우 예리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어쩌면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놓은 이 세계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제야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을 통해 조금 엿보았을 뿐이라고, 소설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어디에도, 다시없을 그곳 ‘낙원’에 대하여

 

 

  “네가 여기 있는 건 네 아버지가 사이드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야.”

  열두 살의 소년 유수프는 종종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 방문하곤 하는 부유한 상인, 아지즈 아저씨의 일행을 따라 집을 나선다. 영문도 모른 채 아지즈 아저씨네로 오게 된 유수프는 그곳에서 일하는 칼릴이라는 청년으로부터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라 사이드 즉, 주인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부모가 진 빚에 팔려 낯선 곳에서 생활하게 된 유수프는 버림받은 기분을 애써 외면해보지만, 밤마다 흘러나오는 눈물과 무서운 꿈은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쉬이 감추지 못한다. 특히 밤이 되면 어두운 거리를 배회하며 찾아오는 개들이야말로 유수프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창백한 반달 불빛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집요하게 노려보는 개들의 시선은 이 냉혹한 거리에서 그가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어쩌면 언젠가는, 그의 아버지가 성공하는 날이 온다면, 그를 구하러 올지도 몰랐다. 그는 할 수 있을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울었다. 때때로 그는 그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간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렸다. 그들의 음성이나 특유의 성향-어머니의 웃음, 마지못해 짓는 아버지의 웃음-에 대한 생각이 다시 그를 안심시켰다. 그가 그들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을 점점 덜 그리워했다. (…) 그는 주어진 일을 했고, 칼릴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완수했으며, 그 ‘형’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락을 받을 때면, 정원에서 일했다. / 71p

 

 

  하지만 칼릴을 따라 집안일을 배우게 된 것도 잠시, 유수프는 아지즈의 뜻에 따라 인도양에 위치한 스와힐리 해안에서 탕가니카 호수와 콩고를 거쳐 그 너머의 깊숙한 내륙으로 들어가는 무역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이때부터 소설은 동아프리카 상인과 현지인들, 부족민들, 인도인, 이슬람 아프리카인, 유럽 식민주의자들로 대표되는 독인인들까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와 종교가 합류하는 매우 복잡한 역사적 공간인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이 땅의 현실과 동아프리카인들의 내밀한 삶을 유수프의 시선을 통해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를 테면 흙처럼 붉게 염색된 머리와 황갈색의 매끈한 몸을 지닌 부족 전사들을 보며 ‘저들은 피를 마시는 야만인’이라고 조롱하는 동족들, 부모의 출신지를 조롱하고 거기에 우스꽝스럽고 불쾌한 이름들을 갖다 붙이는 소년들, 불행에 저항하기보다 신의 뜻이라며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 장신구를 얻기 위해 자기 사촌과 이웃들을 파는 이들, 처음에는 호의로 받아주었으나 역병과 재앙만을 남기고 떠난 여행자들에게 분노하는 원주민 부족들의 적대감 등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곳에서 동아프리카로 모여든 사람들은 거기에서 독특한 다언어적, 다인종적 문화를 형성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섞이고 또 섞이며 자신들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번역가 왕은철의 해석처럼, 모호한 정체성으로 뒤얽힌 동아프리카인들의 삶 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유수프의 삶 역시 매번 위태롭게 느껴진다.

 

 

 

소년들의 부모들인 날삯꾼들은 곳곳에서 왔다. 카와 북쪽 우삼바라 고원지대에서도 왔고, 고원지대 서쪽의 아름다운 호수지역에서도 왔고, 전쟁에 짓밟힌 남쪽 사바나에서도 왔다. 상당수는 해안 출신이었다. 소년들은 부모 얘기를 하며 웃고, 그들의 노동요를 흉내내고, 그들이 귀가할 때 묻어오는 혐오스럽고 시큼한 냄새에 얽힌 이야기들을 서로 비교했다. 그들은 서로 욕하고 조롱해왔던 우스꽝스럽고 불쾌한 이름들을 부모의 출신지에 아무렇게나 갖다붙였다. / 17p

 

 

그들이 돌아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유수프는 이제는 병에 걸려 퉁퉁 부은,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상처들을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고통을 보면서 삶이 끝났으면 싶었다. 그는 그와 같은 것을 본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불탄 오두막 안에도 있었고 관목 가까이에도 있었고 나무 밑에도 있었다. / 169p

 

 

“너는 그렇게 많은 아랍인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을지 궁금하겠지. 그들이 이곳에 오기 시작했을 때는 이 지역에서 노예들을 사는 것이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것과 같을 때였다. 그들이 직접 희생자들을 잡아야 했던 것도 아니었지. 물론 일부는 재미삼아 그러기도 했지만 말이다. 장신구를 위해 자기 사촌들과 이웃들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거든.” / 176p

 

 

 



 

 

 

 

  무엇보다 유럽 열강 세력들의 아프리카 식민지화는 아프리카인들의 갈등을 촉발시킨 절대적인 계기가 되었던 게 분명하다. 유수프가 유년시절을 보낸 카와는 독일인들이 내륙의 고지대로 가는 철도 건설을 위한 기지로 삼은 신흥도시였고, 그 덕분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 경기가 급부상하기도 했으나 그만큼 빠르게 식어가면서 도시 전체가 생지옥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유수프는 아지즈의 무역 상단을 따라다니면서 어디를 가나 유럽인들이 자신들보다 먼저 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데만 관심 있는 적들로부터 지켜주러 왔다고 하면서 정작 한 푼도 내지 않고 아름다운 땅을 가져가고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때 유수프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저 독일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목매달아 죽인다거나, 쇠도 씹어 먹을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탈된 자유와 억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아프리카인들의 의식 속에 이제 ‘낙원’은 그들만의 삶을 일굴 수 있었던 저 먼 과거 혹은 그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제목이 『낙원』 인 이유는 그래서 더 뼈아프다.

 

 

 

“나는 우리 앞에 있는 시간들이 두려워.” 후세인이 조용히 말하자 하미드는 노곤한 듯 한숨을 쉬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유럽인들은 아주 작정한 것 같아. 땅을 번창시키는 문제로 싸우다가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짓뭉갤 거야. 그들이 좋은 일을 하려고 여기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당신들은 바보야. 그들이 노리는 건 장사가 아니라 땅 자체라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 / 119p

 

 

땅에서 검은 기름이 솟구치고 사탄의 파수꾼들처럼 생긴 금속탑이 물속에 서 있더래요. 불길이 화염 문처럼 하늘에 가득했대요. 거기서 아저씨는 산과 계곡을 넘어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갔대요. 헤라트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더래요. 과수원과 정원과 시냇물로 가득한 곳이었대요. 학식과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대요. 그런데 본질적으로는 전쟁과 모의를 강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대요. 그래서 그들의 나라들에는 평화가 없었대요. / 144p

 

 

유수프는 악몽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칼릴에게 자신이 여행중에 아주 자주 살이 말랑말랑한 동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껍질에서 막 열린 공간으로 나왔는데, 혐오스럽고 괴상하게 생긴 짐승이 잡석들과 가시들 속으로 난 길을 맹목적으로 짓이기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의 곳 한가운데를 맹목적으로 짓이기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지의 곳 한가운데를 맹목적으로 통과하는 그들 모두가 그런 상태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느꼈던 공포는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꿈속에서 죽음의 가장자리 너머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장사를 하려고 그런 공포를 극복해가면서 그토록 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 235p

 

 

 

  이렇듯 소설 『낙원』은 아버지가 진 빚으로 팔려온 소년 유수프의 성장 이야기이자, 식민주의의 영향과 혼종된 정체성이 한 데로 뒤섞인 동아프리카인들의 삶을 능수능란하게 엮어낸 수작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내내 떠나질 않는다. 작가는 왜 주인공을 미소년으로 설정한 것일까? 유수프의 아름다운 외모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낯선 부족민들에게까지 호감을 산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위기로부터 그를 구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동안 아지즈의 집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님은 ‘신이 너에게 천사의 모습을 주시고 선한 일을 하라고 이곳에 보냈다’며 원하는 것을 줄 테니 유수프로 하여금 자신의 병든 몸을 치료해달라고 하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유수프가 겪는 시련은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데에서 더 큰 의문으로 남는다. 작가는 왜, 굳이,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 마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기회와 타협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 아미나를 데리고 도망치지도 못한 채 끝내 아지즈와 독일군에게 제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유수프의 체념이 주는 씁쓸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큰 그림일까.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은 고향과 자유를 상실한 아프리카인들의 처절한 운명을 다루고 있음에도 슴슴하게 읽히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유수프의 시선이 한 몫 한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아지즈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며 위험천만한 일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을 철저히 방관자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민족주의에의 향수와 자유를 상실한 난민들의 비극을 감상주의로 포장하지 않고, 이른바 피해자의 입장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냉소적으로 직시하고 있는 특유의 문체는 아프리카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듯하다.

 

 

 

그는 부모에 대한 가책을 느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수년 전에 그를 버린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그가 그들을 버릴 차례였다. 그가 붙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안도감은 이제 끝났다. 그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고자 했다. 자유롭게 평원을 돌아다니면서 언젠가 그들한테 들러 그런 삶을 시작하도록 어려운 교훈을 가르쳐준 것에 고맙다고 할지도 몰랐다. / 305p

 

 

수치스러운 것은 그들이 그에게 살도록 강요한, 그들 모두에게 살도록 강요한 방식이었다. 그들의 음모와 증오와 보복적인 탐욕이 단순한 미덕들조차 교환과 교역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떠나려고 했다. 그보다 단순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요구하는 억압적인 것들을 피할 수 있는 어딘가로 가야 했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의 단단한 덩어리가 그의 추방당한 가슴에 오래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어디를 가든 그것이 함께 있으면서 그가 작은 성취를 위해 계획하는 걸 축소시키거나 흩어놓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 308p

 

 

 



 

 

 

 

  마님이 자유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왜 떠나지 않았는지 묻는 유수프에게 노인 음지 함다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내게 자유를 선물로 주었어. 그녀가 줬지. 그녀가 그걸 줄 수 있다고 누가 말해줬을까? 나는 네가 얘기하는 자유가 뭔지 알아. 내가 태어난 순간 가지고 있던 자유지. (…) 그들은 너를 가두고 쇠사슬로 묶고 네가 가진 하찮은 것까지 모두 남용하지만, 자유는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쓸모없어질 때도 여전히 너를 소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자유는 주어지는 것도,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자유를 속박당하고 타인의 의지에 나를 맡기곤 한다. 어쩌면 내 안에서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는 그곳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아프리카라는 낯선 이미지와 토속 언어로 인해 간간이 읽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인류의 시작점이자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지만 여전히 생소한 아프리카의 모습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자유를 찾아 자의로, 타의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작품으로도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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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ㅣ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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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 새 삶의 균형을 얻게 된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애쓰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그림이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타오르기 시작하는 한낮의 열기를 피해 그늘이 주는 아늑함을 찾아 몸을 뉘고 나면, 어느 새 잠기운이 솔솔 밀려온다. 때마침 머리카락을 살살 간지럽히며 불어오는 느슨한 바람이 잠시 나마 쉴 시간을 허락하는 것 같다. 그렇게 부단히 움직였던 하루 일과 속에서 얻은 달콤한 틈새에 온몸을 맡겨본다……. 주황빛의 얇은 시폰 드레스를 입고 익숙한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잠든 여인의 표지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의 끈도 탁 하고 풀어진다. 새하얀 몸이 고스란히 비칠 정도로 얇은 옷감과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 잠든 여인의 모습이 편안한 휴식 같은 기운을 선사한다. 덕분에 나는 제목과 그 어떤 수식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월>을 바라보며 아직 펼치지 않은 무수한 장들을 상상하는 기쁨을 맛본다. 그림이 이끄는 힘에 몸을 맡기고,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를 느끼며, 오직 나만을 위해 열린 작은 미술관 속에서 가볍게 거닐어보는 것이다.

 

 

 

그림으로부터 얻은 생의 의미들

 

 

  20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그림으로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는 김선현 작가의 책이다. 그녀는 직장인, CEO, 임산부, 치매와 우울증 환자, 청소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좋은 그림을 통해 내면에 새로운 변화를 일구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등교를 거부하던 학생이 학교에 적응해 무사히 대학에 진학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도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림의 힘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림이 우리에게 왜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 ‘그림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 시·지각 경로를 통해 뇌로 전달되고 감정과 마음이 연결’되면서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귀와 눈을 열면 의미 없는 사건도 대단한 일로 바뀐다.”던 바실리 칸딘스키의 말처럼.

 

 

 

  그런 의미에서 책은 ‘일, 사람 관계, 부와 재물, 시간 관리, 나 자신’과 같이 삶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또 가장 향상시키고픈 다섯 가지 문제를 그림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일’ 편에서는 지친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력과 에너지, 의욕을 자극해 일의 행복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그림들을 소개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한 이들을 위해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를,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를 통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자유를 선물한다. 일에 너무 매몰되어 있느라 ‘눈먼’ 상태가 되어 주변을 살피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존 밀레이의 <눈먼 소녀>를 통해 정서적 위안의 힘을 느껴 볼 수 있기를 제안하기도 한다.

 

 

 

빨간색은 사람을 ‘업’ 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눈으로 들어온 붉은 광선이 시신경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혈압과 체온을 상승시키며, 신경조직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제를 일부러 빨간색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이 그림에서 빨강이 적극 활용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겠지요. 체력이 떨어질 땐 이 그림을 책상이나 벽 등 가까운 곳에 두고 눈과 전신의 자극제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 바실리 칸딘스키, <동심원들과 정사각형들> 중에서 / 19p

 

 

잘 여문 곡식과 빛나는 태양의 고유색이 바로 노랑입니다. 곡식이 수확의 기쁨을 주고 태양이 무한한 에너지를 발하는 것처럼, 노랑은 항상 밝음의 본성을 내포하는 색입니다.

실수하거나 떨어질까봐 두려운 마음,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돕지요. 그동안 수많은 화가가 희망의 상징물에 노란색을 넣어왔고, 그 때문에 노랑의 힘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경험에 축적되어왔습니다. / 폴 고갱 <기도하는 브르타뉴의 여인> 중에서 68p

 

 

 



 

 

 

 

  두 번째 장인 ‘사람 관계’ 편에서는 외로움이나 상처처럼 사람으로부터 오는 결핍들을 치유하고, 나의 사람 관계를 돈독히 꾸려나갈 수 있는 그림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중섭 화가의 <해와 아이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주황빛 햇볕을 쬐는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하여금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의 행복감, 희망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데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장인 ‘돈’ 편에서 소개된, 데이고 리베라의 <꽃 노점상>이야말로 이 책에서 단연 인상적인 작품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림을 딱 보는 순간 커다란 칼라 꽃이 눈이 띤다. 한 송이만으로도 충분히 고고하고 아름다운 칼라지만 여기에서는 수북하게 바구니에 담겨 있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꽃 더미를 짊어진 여인에게 이내 마음이 쓰인다.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을 팔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무릎을 꿇은 여인, 돈을 벌기 위해 꽃을 팔아야 하는 이 여인에게 꽃의 아름다움은 되레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여기서 저자는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더라도 모든 일에는 노동의 고충이 숨겨져 있음을 엿본다. 하여 오늘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애쓰고 있을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이 그림이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벽에 걸어놓을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 되어야 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

르누아르의 명쾌한 모토처럼, 따뜻한 봄 햇살 같고 어느 하나 격한 요소가 없는 화목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은 구체적으로 어떤 힘을 지닐까요?

런던 대학교 세미르 제키 교수는 유명화가의 미술작품을 감상한 대상자에게 ‘아름다움’ ‘보통’ ‘추함’ 등으로 느낌을 표현하도록 유도하고 뇌 활성도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아름답다고 평가했을 때는 뇌 전두엽의 보상계인 내측안와전두엽이 활성화되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보상계란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즐거움과 쾌락을 느끼는 뇌의 영역입니다.

시각으로 인지된 그림이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좌우하는 뇌에도 영향을 미쳐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입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 중에서 87p

 

 

미술치료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는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는 과거의 아픔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훌륭한 안내자가 되는 그림입니다.

(…) “괴로워서 나뒹구는 내가 있다” “아파하며 울부짖는 내가 있다”라는 관찰이 가능하겠죠. 현상은 하나이지만, 이 경우 벌써 감정의 온도가 몇 도쯤 식은 것 같지 않나요.

이 그림은 나의 문제를 관망함으로써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차분히 사색할 수 있게 합니다. 과거 일로 여전히 마음은 아프지만, 시선을 조금만 다르게 취할 수 있다면 어떤 고통의 격랑도 나를 쉽게 휩쓸어가지 못할 것이며, 나는 결국 고통의 정복자가 될 것이라고 예감하게 합니다. /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중에서 237p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함께 ‘검토하지 않는 삶을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자 역시 ‘나를 들여다보고 자기 삶을 검토함으로써 마음의 균형을 일군 사람이라면 외부의 기준과 가치에 휘둘려 내가 텅 비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림은, 더 나아가 모든 예술 작품은 우리가 그 안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삶을 검토함으로써 마음의 균형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치가 아닐까. 나는 어떤 색깔에서 더 안정감을 얻을까, 그림 속 주인공 중 누구에게 더 마음이 기울고 있을까, 그림 속 인물과 상황에 나를 이입해 공감하다보면 어느 새 위로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삶의 위로를 받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오늘은 ‘그림의 힘’을 얻어 보시라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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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키 7cm가 우리 아이 미래를 바꾼다 - ‘키’가 경력이 된 시대, 유전자를 뛰어넘는 성장 법칙
이선용 지음 / 부커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왕이면 제대로 알고 공부하면 숨은 키 5cm는 더 클 수 있다!

우리 아이의 성장을 위해 부모가 알아두어야 할 생활 속의 유용한 팁을 소개한 책!

 

 

 

  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첫째 아이는 또래 보다 키가 크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고, 실제 신체검사 결과 평균 보다 6cm가 큰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키에 대해서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4살 된 둘째 아이의 신체검사 결과지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또래보다 작다고 느끼긴 했지만 하위 2% 정도에 불과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해 전에 입었던 여름옷이 아직도 여유 있게 입히는 것을 보면 1년 사이 거의 크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의사 선생님 역시 내년에도 하위 2% 밖에 되지 않는다면 따로 검사를 받고 성장 주사를 맞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챙겨 먹이지 않은 나의 불찰인 것 같았다. 밤잠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진즉에 형은 먼저 잠이 들었는데, 둘째는 밤 11시가 되어도 자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아침까지 푹 자는 것도 아니어서 무엇보다 잠이 부족한 게 큰 원인인 듯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시리얼에 우유를 태워서 먹여보고, 30분이라도 더 일찍 재우기 위해 시간을 앞당겨 소등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칼슘 영양제도 부랴부랴 주문했다. 반찬에 멸치는 꼭 빠뜨리지 않았고, 달걀이나 다른 유제품도 챙겨서 먹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답보상태인 아이의 키를 보며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이러다 키가 잘 자라지 않으면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성장주사 같은 것을 맞지 않고도 아이의 키를 키울 수 있을까, 하고.

 

 

 

키가 경쟁력이 된 시대, 우리 아이의 키를 키우는 방법

 

 

 

  그야말로 키가 스펙이고 경쟁력이 된 시대다. 1990년 피츠버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이레네 한손 프리츠가 동료와 함께 MBA 졸업생들을 분석한 결과 비슷한 나이, 체중, 사회적 신분, 종교를 가진 남성들은 키가 약 1인치씩 커질 때마다 초봉이 약 570달러(한화 약 50만원)씩 높아졌다고 한다. 2016년 영국 엑서터대학교 의학부의 조사에서도 키가 수입에 실제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정환경이나 후천적 현실을 배제하고, 오로지 유전적 영향을 받은 키를 계산한 수치에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런 구체적인 결과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우리 사회는 키가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키는 우리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키가 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볍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에이, 키는 어차피 유전이지.”라고 말하면서 키 크게 해준다는 각종 홍보물들은 다 장삿속이라고 제쳐두는 것이다. 정말 키는 유전이 좌우하는 것일까? 키를 단순히 유전에만 맡기지 않고 더 크게 키울 수는 없을까?

 

 

 

 『숨은 키 7cm가 우리 아이 미래를 바꾼다』는 12년차 개원의이자 세 아들을 둔 의사 아빠가 유전자를 뛰어넘는 성장 법칙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키는 공부하면 할수록, 단순히 유전자가 키를 크게 하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생활 습관이 키를 크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와 논문들을 토대로 키가 클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또 키에 얽힌 잘못된 속설들을 바로잡으면서,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며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키가 크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키가 크려면 딱 ‘두 가지 법칙’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첫 번째는 ‘키는 정해진 시간 동안만 큰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태어난 직후에 가장 많이 크고 나이를 먹을수록 성장 속도가 줄어드는데, 어린 시절의 충분한 관리가 최종 키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오로지 성장기 때만 크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키가 커질 수 있더라도 그 시기를 놓치면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키가 크려면 ‘모든 것이 충족된 후’여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병이 있거나 영양 섭취가 미흡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이것들이 해결되고 난 후에 키가 커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뜻이다. 생존에 절대적인 것들에 부족함이 없어야만 그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키가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2가지 조건을 조합해 보면, 성장기 때 아프지 않고 골고루 영양 섭취를 해줘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키를 발현시킬 수 있다.

 

 

 

성장통은 키 성장 때문에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성장통이 주로 발생하는 시기에는 키가 그리 많이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장통 시기가 지나고 나서 아프다는 말을 별로 안할 때 키가 더 많이 크죠. / 21p

 

 

세 번째는 허벅지와 종아리입니다. 키 크는 데 가장 비중이 큰 뼈 부위죠. 발목 부위는 18세 이전에 성장이 끝납니다. 무릎 부위도 18세 때 60~70%가 닫혀있습니다. 즉 평균적으로 봤을 때 1년에 2cm 이상 크기가 힘든 거죠. 그러다가 19~20세까지 급격하게 닫힙니다. 다리의 경우 20세 이후로는 성장을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키가 자랄 수 있는 마지노선은 18세라고 보면 됩니다. 각 부위는 18세에서 19세로 넘어가면서 급격하게 닫히거든요. 그 이후부턴 개인차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고요. / 31p

 

 

 

  저자는 유전적 요인이 키를 좌우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환경요인으로도 얼마든지 키를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극복하고 더 큰 키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는 식습관과 잠자는 습관, 운동 외 다양한 생활 습관들을 소개한다. 그 중 키가 크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영양소부터 알아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자는 키 클 때 많이 필요한 영양소는 미네랄이라고 강조한다. 칼슘이 대표적인데, 우유나 치즈 등 칼슘을 음식으로 섭취하지 못할 경우에는 영양제로 어느 정도 보충해줘야 키 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몸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지 않고 오로지 외부에서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경로로든 충분한 섭취가 요구된다. 아연도 중요하다. 아연은 우리 몸에 철분 다음으로 많은 미네랄 성분으로, 5세가 되기 전에 아연을 먹으면 성장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칼슘 흡수를 위해서는 마그네슘과 비타민 D가 필요하며, 칼슘과 마그네슘 비율은 2:1이 좋다고 한다. 또 흡수한 칼슘을 뼈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K2가 필요한데, 낫토 같은 콩 발효 음식이 이에 좋다고 하니 신경 써서 챙겨 먹여봐야겠다.

 

 

 

성장호르몬을 봅시다. 키가 클 때 가장 중요한 건 호르몬이죠. 뼈뿐만 아니라 장기와 피부, 온몸을 자라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성장호르몬이 직접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IGF-1이란 형태로 변형이 돼야 합니다. 이 IGF-1은 성장호르몬에서 전환되기도 하고, 뼈끝 성장판에서 분비되기도 하죠. 그러니 키 크는 데 무척 중요한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GF-1을 분비시키도록 자극하는 호르몬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렙틴’이란 호르몬이 IGF-1이 분비되도록 자극하죠. 렙틴은 우리가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를 때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이 렙틴이 IGF-1의 분비를 촉진시킵니다. / 53p

 

 

 

  책에서는 성장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는데, 의외로 키 크는 데 좋은 음식 3가지가 있어 기억해두고자 한다. 첫 번째는 시리얼이다. 시리얼이라니, 간혹 시리얼만 먹이고 대충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의 미안한 마음에 위안이 되는 음식이지 않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저자는 김이나 햄과 밥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는 것보다 오히려 시리얼을 추천한다. 혹자는 시리얼에 당류가 많아 아이들 건강에 안 좋은 게 아닐까 염려하는데, 한 끼 섭취에 들어있는 당류는 8~10g 내외로 1일 영양 성분 기준치의 8% 정도에 불과하며 이는 오렌지주스 한 컵이나 요구르트보다도 적다고 하니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두 번째는 잡채다. 키가 크는 데 좋은 소고기, 표고버섯, 목이버섯, 시금치, 당근을 고루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호두를 넣은 멸치볶음이다. 멸치에 든 칼슘과 호두에 든 아르기닌이 조합을 이루어 키 크기 위해 꼭 필요한 성분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기억해두자.

 

 

 

먼저, 치즈입니다. 우유 속 카세인을 뽑아 발효시킨 치즈는 동서양을 넘어 사랑받는 식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치즈는 칼슘과 단백질, 지방을 공금해 주는 훌륭한 공급원이죠. 게다가 아연, 인, 리보플라빈은 물론, 비타민 A와 비타민 B1, B2에도 들어있습니다. 특히 동일한 무게의 우유와 비교해 7배의 단백질, 5배의 칼슘을 가진 치즈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만큼 이점도 많습니다. 우유 및 기타 유제품에 대한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즈가 특히 중요한 영양 공급원입니다. / 103p

 

 

낮잠을 자는 경우가 있는데 낮에는 잠을 길게 자지 마세요. 자더라도 30분 이내로 자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생체시계 때문에 낮엔 잠을 자더라도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밤에 숙면을 하는 데 방해될 뿐이죠. 잠자는 시간은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중요한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전에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녁은 웬만하면 일찍 먹도록 하세요. 잠잘 때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게 성장호르몬 분비를 원활히 하는 데 좋습니다. 그러니 저녁 먹고 난 후에 먹는 간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달콤한 간식은 더욱 좋지 않으니 웬만하면 피하세요. / 139p

 

 

 




 

 

 

 

  이 외에도 운동 직후에 우유를 마시면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어 성장호르몬 분비가 방해되니 운동 전후 2시간 동안은 우유나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자기 직전에도 우유를 마시는 것은 키 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니 유념해야겠다. 또 중앙대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가려움 때문에 숙면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성장호르몬 분비가 감소하여 키가 자라지 않을 수 있다고 하니 아토피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특히 더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아이가 밤마다 벅벅 피부를 긁어대는 소리에 나 역시 잠을 자주 깨곤 하는데, 그것이 아이의 성장에도 방해가 된다고 하니 자기 전에 충분한 보습을 통해 아이가 깊이 잘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

 

 

 

2번에 걸쳐 호르몬 분비가 확 올라온 게 보이시죠? 첫 번째 상승은 낮 시간 동안의 운동에 의한 거고, 두 번째 상승은 잠잘 때 증가하는 겁니다. 앞서 인슐린이 성장호르몬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죠. 인슐린은 식사 후 2시간 정도가 됐을 때 최대치로 분비됩니다. 그러니까 인슐린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선 아침을 8시쯤에 먹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운동할 때도 성장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인슐린의 방해를 안 받으려면 운동하고 나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겁니다. 학교에 다닌다면 체육 시간이 오전에 있는 게 좋겠죠. / 87p

 

 

(어린이 홍삼 식품에 대해) 정리하자면,

  • 때문에 홍삼을 꺼릴 필요는 없습니다.
  • 키 크는 데 큰 기대를 해서도 안 됩니다.

감기에 잘 걸리고, 식욕이 떨어진 아이에게 간접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키 크려고 찾아서 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 195p

 

 

 

  아이들의 성장에 꼭 필요한 정보들만을 쏙쏙 담아 놓아 부지런히 메모해가며 읽은 책이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런저런 홍보물에 현혹되었던 지난 시간들을 뒤로 하고, 꼭 챙겨줘야 할 것들만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키는 때가 되면 다 큰다, 키는 유전이다.”라는 말들만 그저 믿기보다 제대로 알고 공부하면 숨은 키 7cm는 더 클 수 있다고 하니, 아이의 작은 키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시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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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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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례와 과학적 지식을 절묘하게 엮어내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일러스트로 보는 재미까지 얻을 수 있는 과학교양서!

 

 

 

 

  지난 6월 21일, 순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나로우주센터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누리호가 목표궤도에 투입돼 성능검증위성을 성공적으로 분리하고 궤도에 안착시켰으며 이로써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위대한 전진을 이루었음을 선언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로 1500kg급 실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수송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 국가가 되었다.

 

 

 

  나는 누리호가 발사되는 경이로운 광경을 두 아이들과 시청하며 ‘우주, 저 머나먼 공간’과 ‘인간이 중력을 길들이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줄지 상상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인류가 갈망한 지구 저 너머의 세계, 그곳으로 날아오기 위한 무수한 시도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던 과학 기술의 미래.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밀어올리고 있음을, 우리 아이들이 보다 많이 경험하고 꿈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마법의 비행』에서 리처드 도킨스 역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문자 그대로 다른 세계로의 이주든, 낯선 수학적 공간을 추상적으로 날아다니는 비행이든 간에. 과학은 일상생활의 평범함으로부터 나선을 그리면서 상상력이 점점 희박해지는 높이까지 탈출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리처드 도킨스는 날아오르기 위한 위대한 시도들의 역사를 아는 일이란, 곧 우리가 세상 앞에서 엄숙해지는 일이며 우리의 존재 가치를 또렷이 느끼는 일임을 보여준다. 덕분에 이 책을 읽다보면 비행의 위대함과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이 보여준 놀라운 진화와 도약, 이를 반영한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내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운 채, 달빛이나 좋아하는 별빛 아래

나는 볼 수 있었네.

예배당 전실에 서 있는

굳은 얼굴로 프리즘을 들고 있는 뉴턴의 조각상.

홀로 낯선 생각의 바다를 영원히 항해하는

마음의 대리석 이정표를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1799 / 321p

 

 

 

비행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질문들

 

 

  『마법의 비행』은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신작이다. 세계 최고의 지성이자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번에 선보이는 주제는 바로 ‘비행’이다. 인간과 자연이 중력을 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인간은 비행을 꿈꾸는가, 자연에서 비행은 어떤 이득이 있는가, 비행을 위해 자연이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또는 비행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 왜 일부 동물은 날개를 버렸을까, 비행을 향한 꿈을 위해 인간은 자연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등의 흥미로운 질문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멸종한 익룡부터 최초의 동력 비행기까지 다양한 사례와 과학적 지식을 절묘하게 엮어내,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곳곳에 수록되어 있는 매력적인 일러스트로 보는 재미까지 얻을 수 있다.

 

 

 

박쥐의 뇌는 자신이 낸(음이 너무 높아서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 초음파 펄스가 부딪혀 돌아온 메아리를 분석한다. 나방이 감지 범위 내에 들어오면, 틱…… 틱…… 틱 기준 속도로 내던 펄스가 타-타-타로 빨라지고, 마지막 공격 단계에서는 브르르르르 진종한다. 각 펄스를 세상을 표본 조사하는 활동이라고 본다면, 이렇게 표본 조사 빈도를 늘리면 표적의 위치를 더 정확히 파악하게 되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진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서 박쥐의 메아리 기술을 완벽하게 다듬었다. 이를 분석하는 정교한 뇌 소프트웨어도 포함해서다. 한편 군비 경쟁의 반대쪽에 있는 나방은 나름 영리한 방법을 진화시키고 있었다. 나방은 박쥐가 내는 초음파를 듣는 귀를 계발시켰다. 또 박쥐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회피 전술도 발전시켰다. 와락 돌진하고, 툭 떨어지고, 홱 비키는 행동이다. / 26p

 

 

깃털의 깃판은 수백 개의 깃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깃가지에 달린 작은 깃가지들은 이웃한 것들끼리 서로 얽혀서 지퍼처럼 잠겼다가 풀어지곤 한다. 이런 배치 덕분에 훅이 말한 가벼우면서 튼튼한 이상적인 구조를 이룰 수 있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깃털이 어긋나지 않게 잘 맞물리려면 부리로 계속 다듬어야 한다. 새를 조금 오래 관찰하고 있으면, 새가 시간이 날 때마다 부리로 깃털을 정성껏 다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새의 목숨은 말 그대로 깃털에 달려 있기에, 날개 깃털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으면 비행 능력이 떨어지고 포식자에게서 달아나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먹이를 잡지 못하거나 방향을 트는 데 실패해서 충돌할 수도 있다. / 119p

 

 

 




 

 

 

 

  책을 읽다보면 기술과 진화 양쪽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트레이드 오프’ 이른바 ‘균형과 타협’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온다. ‘날개는 그들에게 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날개는 그들 나름의 생활 방식에 불리할 것이기 때문에, 설령 날개가 그들에게 유용할지라도 경제적 비용이 그 유용성을 초과하기 때문에’ 한때는 있었던 날개를 버린 동물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를 테면 개미의 조상은 날개 달린 말벌이었으나 현대 개미는 진화 과정에서 날개를 잃었다. 한 둥지에 있는 일개미 수천 마리에게 날개를 네 개씩 달려면 적잖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여왕개미의 경우에도 원래 살던 집에서 멀리 떠나 새 둥지를 차리기 전까지는 날개를 필요로 하지만, 땅속에 둥지를 짓게 되면 날개가 필요 없어지면서 이를 떼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하늘을 나는 조류들로서는 가벼울 필요가 있다는 점이 진화의 압력으로 작용했고, 실제 그들은 뼈의 속을 비웠다. 심지어 이빨까지 버리고 더 가벼운 각질의 부리를 택했다. 이처럼 진화라는 개념 속에는 ’이 기관은 어디에 좋을까‘라는 이점을 묻는 질문, 즉 트레이드오프라는 경제적 계산을 수반하며 이익과 비용 사이의 형평을 헤아린 끝에 모든 생물종이 발전해왔다고 하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새는 어느 별을 항로 파악에 쓸 수 있는지 어떻게 알까?” 그는 유전자에 별 지도가 새겨져 있다는 가설 대신에, 이주하기 전에 어린 새가 밤하늘의 회전하는 별들을 지켜보면서, 특정한 영역에 있는 어떤 별들은 회전 중심 가까이에 있어 거의 돌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고 추정했다. 이 방법은 북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먹힐 것이다. 회전하지 않음을 알아볼 수 있는 영역이 하늘에 여전히 있을 것이고, 그곳이 북쪽일 것이다. 남반구의 새라면 그곳은 남쪽이 된다. / 44p

 

 

콜루고는 수평 거리로 약 백 미터까지 활공할 수 있는 반면, 독수리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활공이 가능한 높이로 올라갈 수 있으며, 그 거리면 다른 온난 상승 기류의 아래쪽가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높이 올라가 다시 다른 온난 상승 기류의 아래쪽까지 활공할 준비를 할 수 있다. 글라이더 조종사는 온난 상승 기류들이 ‘도로’처럼 늘어서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도로를 따라 온난 상승 기류를 차례로 탄다면,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을 만치 무한정 떠 있을 수 있다. 독수리와 황새도 같은 방식으로 그런 도로를 이용한다. / 138p

 

 

 

  세포 자연사, 다시 말해 ‘세포 예정사’에 대한 설명도 퍽 흥미롭다. 오리나 해달처럼 물에 사는 주류와 포유류는 흔히 발에 물갈퀴가 나 있다. 사람도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조금 난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가 가끔 있다. 저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배아 발생 때 나타나는 세포 자연사, 즉 ‘세포 예정사’라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설명하자면, 손가락은 사람의 배아를 포함하여 배아가 발달할 때, 넓게 펼쳐진 조직에서 사이사이가 깎여 나가면서 마치 조각되듯 만들어진다. 이때 세포들은 면밀하게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죽어 나가는데, 물갈퀴가 필요한 수생 동물이나 박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자궁에 있을 때 손가락에 있던 물갈퀴를 이루는 세포들이 죽어 사라진다고 한다. 간혹 물갈퀴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들은 세포 자연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결과라고 하니, 인체를 비롯해 자연의 모든 생물들은 알면 알수록 참 놀랍고 신비로운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앨버트로스처럼 활공 전문가이지만 몸집이 아주 큰 동물은 이륙이 꽤 문제가 된다. 앨버트로스는 날개를 칠 수 있지만, 대개 날개를 치는 비행은 커다란 새에게는 에너지가 많이 들 뿐 아니라 아주 힘겹다. 육지에서 이륙할 때 그들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다. 양력으로 날개가 들어 올려질 만큼 충분한 대기 속도에 이를 때까지, ‘활주로’를 빠르게 달려서 바람에 올라탄다. 실제로 앨버트로스의 번식지에는 비행기의 활주로 비슷한 것이 뚜렷이 나 있다. / 179p

 

 

날도마뱀은 날다람쥐처럼 피부로 된 비막이 있다. 하지만 네 다리를 쫙 뻗어서 비막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갈비뼈가 양옆으로 뻗어 나와서 좌우의 섬세한 피부막을 지탱한다. 진화가 새 제도지를 깔고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한다고 한 말을 기억하는지? 같은 숲에는 ‘날아다니는’ 뱀도 산다. 날뱀은 갈비뼈 사이에 펼쳐지는 날개 같은 것이 없다(그리고 모든 뱀이 그렇듯이 다리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갈비뼈를 양옆으로 내밀어서 몸 전체를 충분히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몸의 단면이 비행기의 날개 단면 같은 곡선을 이룸으로써, 낙하산 효과를 낸다. / 290p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고, 해마다 여름 섭식지로 이주하는 것 등은 모두 날개의 직접적인 혜택이다. 자연 선택은 새가 비행을 함으로써 그런 혜택을 얻도록 날개를 완벽하게 다듬었다. 모양과 작동 방식 등 모든 세세한 측면을 전부 완벽하게 고쳤다. 인간은 그런 새의 모습을 통해 날고자 하는 꿈을 키웠고 그들을 관찰함으로써 ‘피칭pitching’, ‘롤링rolling’, ‘요잉yawing’과 같은 비행 기술을 익혔다. 맨몸으로 날지는 못하지만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놀라운 도약을 이뤄낸 것이다. 앞으로 ‘비행’은 우리에게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까. 과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는 요즘, 나는 누구보다도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예비 과학자의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열어 보일 누리호의 미래를 고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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