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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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 자의로타의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의 삶을 들여다 보다!

아프리카 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동아프리카인들의 실존 문제를 매우 예리하게 그려낸 작품!

 

 

 

  얼마 전흑인 노예 역사와의 화해를 시도한 소설 빌러비드를 읽고 흑인 문학 혹은 난민을 주제로 한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 중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들의 운명에 대한 타협 없고 열정적인 통찰을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그가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되어서이기도 하지만가 닿지 못할 낙원을 향한 상실자들의 애환을 어떠한 방식으로 그려냈는지 궁금해서이기도 했다결과적으로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낙원은 아프리카 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동아프리카인들의 실존 문제를 매우 예리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어쩌면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놓은 이 세계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이제야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을 통해 조금 엿보았을 뿐이라고소설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어디에도다시없을 그곳 낙원에 대하여

 

 

  “네가 여기 있는 건 네 아버지가 사이드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야.”

  열두 살의 소년 유수프는 종종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 방문하곤 하는 부유한 상인아지즈 아저씨의 일행을 따라 집을 나선다영문도 모른 채 아지즈 아저씨네로 오게 된 유수프는 그곳에서 일하는 칼릴이라는 청년으로부터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라 사이드 즉주인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도그렇게 부모가 진 빚에 팔려 낯선 곳에서 생활하게 된 유수프는 버림받은 기분을 애써 외면해보지만밤마다 흘러나오는 눈물과 무서운 꿈은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쉬이 감추지 못한다특히 밤이 되면 어두운 거리를 배회하며 찾아오는 개들이야말로 유수프를 끊임없이 괴롭힌다창백한 반달 불빛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집요하게 노려보는 개들의 시선은 이 냉혹한 거리에서 그가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어쩌면 언젠가는그의 아버지가 성공하는 날이 온다면그를 구하러 올지도 몰랐다그는 할 수 있을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울었다때때로 그는 그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간다는 생각에 공포에 질렸다그들의 음성이나 특유의 성향-어머니의 웃음마지못해 짓는 아버지의 웃음-에 대한 생각이 다시 그를 안심시켰다그가 그들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말이 아니었다사실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을 점점 덜 그리워했다. (그는 주어진 일을 했고칼릴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완수했으며그 에게 의존하게 되었다그리고 허락을 받을 때면정원에서 일했다. / 71p

 

 

  하지만 칼릴을 따라 집안일을 배우게 된 것도 잠시유수프는 아지즈의 뜻에 따라 인도양에 위치한 스와힐리 해안에서 탕가니카 호수와 콩고를 거쳐 그 너머의 깊숙한 내륙으로 들어가는 무역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이때부터 소설은 동아프리카 상인과 현지인들부족민들인도인이슬람 아프리카인유럽 식민주의자들로 대표되는 독인인들까지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와 종교가 합류하는 매우 복잡한 역사적 공간인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이 땅의 현실과 동아프리카인들의 내밀한 삶을 유수프의 시선을 통해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를 테면 흙처럼 붉게 염색된 머리와 황갈색의 매끈한 몸을 지닌 부족 전사들을 보며 저들은 피를 마시는 야만인이라고 조롱하는 동족들부모의 출신지를 조롱하고 거기에 우스꽝스럽고 불쾌한 이름들을 갖다 붙이는 소년들불행에 저항하기보다 신의 뜻이라며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장신구를 얻기 위해 자기 사촌과 이웃들을 파는 이들처음에는 호의로 받아주었으나 역병과 재앙만을 남기고 떠난 여행자들에게 분노하는 원주민 부족들의 적대감 등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곳에서 동아프리카로 모여든 사람들은 거기에서 독특한 다언어적다인종적 문화를 형성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섞이고 또 섞이며 자신들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번역가 왕은철의 해석처럼모호한 정체성으로 뒤얽힌 동아프리카인들의 삶 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유수프의 삶 역시 매번 위태롭게 느껴진다.

 

 

 

소년들의 부모들인 날삯꾼들은 곳곳에서 왔다카와 북쪽 우삼바라 고원지대에서도 왔고고원지대 서쪽의 아름다운 호수지역에서도 왔고전쟁에 짓밟힌 남쪽 사바나에서도 왔다상당수는 해안 출신이었다소년들은 부모 얘기를 하며 웃고그들의 노동요를 흉내내고그들이 귀가할 때 묻어오는 혐오스럽고 시큼한 냄새에 얽힌 이야기들을 서로 비교했다그들은 서로 욕하고 조롱해왔던 우스꽝스럽고 불쾌한 이름들을 부모의 출신지에 아무렇게나 갖다붙였다. / 17p

 

 

그들이 돌아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유수프는 이제는 병에 걸려 퉁퉁 부은믿을 수 없는 끔찍한 상처들을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다그는 그런 고통을 보면서 삶이 끝났으면 싶었다그는 그와 같은 것을 본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불탄 오두막 안에도 있었고 관목 가까이에도 있었고 나무 밑에도 있었다. / 169p

 

 

너는 그렇게 많은 아랍인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을지 궁금하겠지그들이 이곳에 오기 시작했을 때는 이 지역에서 노예들을 사는 것이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것과 같을 때였다그들이 직접 희생자들을 잡아야 했던 것도 아니었지물론 일부는 재미삼아 그러기도 했지만 말이다장신구를 위해 자기 사촌들과 이웃들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거든.” / 176p

 

 

 



 

 

 

 

  무엇보다 유럽 열강 세력들의 아프리카 식민지화는 아프리카인들의 갈등을 촉발시킨 절대적인 계기가 되었던 게 분명하다유수프가 유년시절을 보낸 카와는 독일인들이 내륙의 고지대로 가는 철도 건설을 위한 기지로 삼은 신흥도시였고그 덕분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 경기가 급부상하기도 했으나 그만큼 빠르게 식어가면서 도시 전체가 생지옥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해야 했다뿐만 아니라 유수프는 아지즈의 무역 상단을 따라다니면서 어디를 가나 유럽인들이 자신들보다 먼저 와 있는 것을 알게 되고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데만 관심 있는 적들로부터 지켜주러 왔다고 하면서 정작 한 푼도 내지 않고 아름다운 땅을 가져가고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이때 유수프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저 독일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목매달아 죽인다거나쇠도 씹어 먹을 수 있으며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강탈된 자유와 억압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아프리카인들의 의식 속에 이제 낙원은 그들만의 삶을 일굴 수 있었던 저 먼 과거 혹은 그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제목이 낙원』 인 이유는 그래서 더 뼈아프다.

 

 

 

나는 우리 앞에 있는 시간들이 두려워.” 후세인이 조용히 말하자 하미드는 노곤한 듯 한숨을 쉬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유럽인들은 아주 작정한 것 같아땅을 번창시키는 문제로 싸우다가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짓뭉갤 거야그들이 좋은 일을 하려고 여기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당신들은 바보야그들이 노리는 건 장사가 아니라 땅 자체라고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 / 119p

 

 

땅에서 검은 기름이 솟구치고 사탄의 파수꾼들처럼 생긴 금속탑이 물속에 서 있더래요불길이 화염 문처럼 하늘에 가득했대요거기서 아저씨는 산과 계곡을 넘어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갔대요헤라트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더래요과수원과 정원과 시냇물로 가득한 곳이었대요학식과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대요그런데 본질적으로는 전쟁과 모의를 강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대요그래서 그들의 나라들에는 평화가 없었대요. / 144p

 

 

유수프는 악몽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그는 칼릴에게 자신이 여행중에 아주 자주 살이 말랑말랑한 동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껍질에서 막 열린 공간으로 나왔는데혐오스럽고 괴상하게 생긴 짐승이 잡석들과 가시들 속으로 난 길을 맹목적으로 짓이기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그는 마지의 곳 한가운데를 맹목적으로 짓이기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그는 미지의 곳 한가운데를 맹목적으로 통과하는 그들 모두가 그런 상태였다고 말했다자신이 느꼈던 공포는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었다고 말했다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고꿈속에서 죽음의 가장자리 너머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사람들이 장사를 하려고 그런 공포를 극복해가면서 그토록 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 235p

 

 

 

  이렇듯 소설 낙원은 아버지가 진 빚으로 팔려온 소년 유수프의 성장 이야기이자식민주의의 영향과 혼종된 정체성이 한 데로 뒤섞인 동아프리카인들의 삶을 능수능란하게 엮어낸 수작이다다만한 가지 의문이 내내 떠나질 않는다작가는 왜 주인공을 미소년으로 설정한 것일까유수프의 아름다운 외모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낯선 부족민들에게까지 호감을 산다심지어 목숨을 잃을 위기로부터 그를 구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얼굴이다그동안 아지즈의 집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님은 신이 너에게 천사의 모습을 주시고 선한 일을 하라고 이곳에 보냈다며 원하는 것을 줄 테니 유수프로 하여금 자신의 병든 몸을 치료해달라고 하기까지 한다이 때문에 유수프가 겪는 시련은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데에서 더 큰 의문으로 남는다작가는 왜굳이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마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기회와 타협하지 못하고사랑하는 여인 아미나를 데리고 도망치지도 못한 채 끝내 아지즈와 독일군에게 제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유수프의 체념이 주는 씁쓸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큰 그림일까.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은 고향과 자유를 상실한 아프리카인들의 처절한 운명을 다루고 있음에도 슴슴하게 읽히는 경향이 있다여기에는 유수프의 시선이 한 몫 한다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아지즈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며 위험천만한 일에 휘말리기도 하지만자신의 삶을 비롯해 주변 인물들을 철저히 방관자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아프리카 민족주의에의 향수와 자유를 상실한 난민들의 비극을 감상주의로 포장하지 않고이른바 피해자의 입장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냉소적으로 직시하고 있는 특유의 문체는 아프리카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듯하다.

 

 

 

그는 부모에 대한 가책을 느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그러지 않을 것이었다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수년 전에 그를 버린 사람들이었다이제는 그가 그들을 버릴 차례였다그가 붙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안도감은 이제 끝났다그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고자 했다자유롭게 평원을 돌아다니면서 언젠가 그들한테 들러 그런 삶을 시작하도록 어려운 교훈을 가르쳐준 것에 고맙다고 할지도 몰랐다. / 305p

 

 

수치스러운 것은 그들이 그에게 살도록 강요한그들 모두에게 살도록 강요한 방식이었다그들의 음모와 증오와 보복적인 탐욕이 단순한 미덕들조차 교환과 교역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렸다그는 떠나려고 했다그보다 단순한 것은 없었다모든 것이 그에게 요구하는 억압적인 것들을 피할 수 있는 어딘가로 가야 했다그러나 그는 외로움의 단단한 덩어리가 그의 추방당한 가슴에 오래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그리고 어디를 가든 그것이 함께 있으면서 그가 작은 성취를 위해 계획하는 걸 축소시키거나 흩어놓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 308p

 

 

 



 

 

 

 

  마님이 자유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왜 떠나지 않았는지 묻는 유수프에게 노인 음지 함다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내게 자유를 선물로 주었어그녀가 줬지그녀가 그걸 줄 수 있다고 누가 말해줬을까나는 네가 얘기하는 자유가 뭔지 알아내가 태어난 순간 가지고 있던 자유지. (그들은 너를 가두고 쇠사슬로 묶고 네가 가진 하찮은 것까지 모두 남용하지만자유는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야네가 쓸모없어질 때도 여전히 너를 소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자유는 주어지는 것도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자유를 속박당하고 타인의 의지에 나를 맡기곤 한다어쩌면 내 안에서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는 그곳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아프리카라는 낯선 이미지와 토속 언어로 인해 간간이 읽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작품이다무엇보다 인류의 시작점이자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지만 여전히 생소한 아프리카의 모습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자유를 찾아 자의로타의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작품으로도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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