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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다양한 사례와 과학적 지식을 절묘하게 엮어내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일러스트로 보는 재미까지 얻을 수 있는 과학교양서!
지난 6월 21일, 순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나로우주센터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누리호가 목표궤도에 투입돼 성능검증위성을 성공적으로 분리하고 궤도에 안착시켰으며 이로써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위대한 전진을 이루었음을 선언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로 1500kg급 실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수송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 국가가 되었다.
나는 누리호가 발사되는 경이로운 광경을 두 아이들과 시청하며 ‘우주, 저 머나먼 공간’과 ‘인간이 중력을 길들이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줄지 상상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인류가 갈망한 지구 저 너머의 세계, 그곳으로 날아오기 위한 무수한 시도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던 과학 기술의 미래.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밀어올리고 있음을, 우리 아이들이 보다 많이 경험하고 꿈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마법의 비행』에서 리처드 도킨스 역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문자 그대로 다른 세계로의 이주든, 낯선 수학적 공간을 추상적으로 날아다니는 비행이든 간에. 과학은 일상생활의 평범함으로부터 나선을 그리면서 상상력이 점점 희박해지는 높이까지 탈출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리처드 도킨스는 날아오르기 위한 위대한 시도들의 역사를 아는 일이란, 곧 우리가 세상 앞에서 엄숙해지는 일이며 우리의 존재 가치를 또렷이 느끼는 일임을 보여준다. 덕분에 이 책을 읽다보면 비행의 위대함과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이 보여준 놀라운 진화와 도약, 이를 반영한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내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운 채, 달빛이나 좋아하는 별빛 아래
나는 볼 수 있었네.
예배당 전실에 서 있는
굳은 얼굴로 프리즘을 들고 있는 뉴턴의 조각상.
홀로 낯선 생각의 바다를 영원히 항해하는
마음의 대리석 이정표를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1799 / 321p
비행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질문들
『마법의 비행』은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신작이다. 세계 최고의 지성이자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번에 선보이는 주제는 바로 ‘비행’이다. 인간과 자연이 중력을 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인간은 비행을 꿈꾸는가, 자연에서 비행은 어떤 이득이 있는가, 비행을 위해 자연이 선택한 것은 무엇인가, 또는 비행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 왜 일부 동물은 날개를 버렸을까, 비행을 향한 꿈을 위해 인간은 자연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등의 흥미로운 질문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멸종한 익룡부터 최초의 동력 비행기까지 다양한 사례와 과학적 지식을 절묘하게 엮어내,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곳곳에 수록되어 있는 매력적인 일러스트로 보는 재미까지 얻을 수 있다.
박쥐의 뇌는 자신이 낸(음이 너무 높아서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 초음파 펄스가 부딪혀 돌아온 메아리를 분석한다. 나방이 감지 범위 내에 들어오면, 틱…… 틱…… 틱 기준 속도로 내던 펄스가 타-타-타로 빨라지고, 마지막 공격 단계에서는 브르르르르 진종한다. 각 펄스를 세상을 표본 조사하는 활동이라고 본다면, 이렇게 표본 조사 빈도를 늘리면 표적의 위치를 더 정확히 파악하게 되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진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서 박쥐의 메아리 기술을 완벽하게 다듬었다. 이를 분석하는 정교한 뇌 소프트웨어도 포함해서다. 한편 군비 경쟁의 반대쪽에 있는 나방은 나름 영리한 방법을 진화시키고 있었다. 나방은 박쥐가 내는 초음파를 듣는 귀를 계발시켰다. 또 박쥐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회피 전술도 발전시켰다. 와락 돌진하고, 툭 떨어지고, 홱 비키는 행동이다. / 26p
깃털의 깃판은 수백 개의 깃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깃가지에 달린 작은 깃가지들은 이웃한 것들끼리 서로 얽혀서 지퍼처럼 잠겼다가 풀어지곤 한다. 이런 배치 덕분에 훅이 말한 가벼우면서 튼튼한 이상적인 구조를 이룰 수 있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깃털이 어긋나지 않게 잘 맞물리려면 부리로 계속 다듬어야 한다. 새를 조금 오래 관찰하고 있으면, 새가 시간이 날 때마다 부리로 깃털을 정성껏 다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새의 목숨은 말 그대로 깃털에 달려 있기에, 날개 깃털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으면 비행 능력이 떨어지고 포식자에게서 달아나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먹이를 잡지 못하거나 방향을 트는 데 실패해서 충돌할 수도 있다. / 119p



책을 읽다보면 기술과 진화 양쪽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트레이드 오프’ 이른바 ‘균형과 타협’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온다. ‘날개는 그들에게 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날개는 그들 나름의 생활 방식에 불리할 것이기 때문에, 설령 날개가 그들에게 유용할지라도 경제적 비용이 그 유용성을 초과하기 때문에’ 한때는 있었던 날개를 버린 동물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를 테면 개미의 조상은 날개 달린 말벌이었으나 현대 개미는 진화 과정에서 날개를 잃었다. 한 둥지에 있는 일개미 수천 마리에게 날개를 네 개씩 달려면 적잖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여왕개미의 경우에도 원래 살던 집에서 멀리 떠나 새 둥지를 차리기 전까지는 날개를 필요로 하지만, 땅속에 둥지를 짓게 되면 날개가 필요 없어지면서 이를 떼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하늘을 나는 조류들로서는 가벼울 필요가 있다는 점이 진화의 압력으로 작용했고, 실제 그들은 뼈의 속을 비웠다. 심지어 이빨까지 버리고 더 가벼운 각질의 부리를 택했다. 이처럼 진화라는 개념 속에는 ’이 기관은 어디에 좋을까‘라는 이점을 묻는 질문, 즉 트레이드오프라는 경제적 계산을 수반하며 이익과 비용 사이의 형평을 헤아린 끝에 모든 생물종이 발전해왔다고 하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새는 어느 별을 항로 파악에 쓸 수 있는지 어떻게 알까?” 그는 유전자에 별 지도가 새겨져 있다는 가설 대신에, 이주하기 전에 어린 새가 밤하늘의 회전하는 별들을 지켜보면서, 특정한 영역에 있는 어떤 별들은 회전 중심 가까이에 있어 거의 돌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고 추정했다. 이 방법은 북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먹힐 것이다. 회전하지 않음을 알아볼 수 있는 영역이 하늘에 여전히 있을 것이고, 그곳이 북쪽일 것이다. 남반구의 새라면 그곳은 남쪽이 된다. / 44p
콜루고는 수평 거리로 약 백 미터까지 활공할 수 있는 반면, 독수리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활공이 가능한 높이로 올라갈 수 있으며, 그 거리면 다른 온난 상승 기류의 아래쪽가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높이 올라가 다시 다른 온난 상승 기류의 아래쪽까지 활공할 준비를 할 수 있다. 글라이더 조종사는 온난 상승 기류들이 ‘도로’처럼 늘어서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도로를 따라 온난 상승 기류를 차례로 탄다면,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을 만치 무한정 떠 있을 수 있다. 독수리와 황새도 같은 방식으로 그런 도로를 이용한다. / 138p
세포 자연사, 다시 말해 ‘세포 예정사’에 대한 설명도 퍽 흥미롭다. 오리나 해달처럼 물에 사는 주류와 포유류는 흔히 발에 물갈퀴가 나 있다. 사람도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조금 난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가 가끔 있다. 저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배아 발생 때 나타나는 세포 자연사, 즉 ‘세포 예정사’라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설명하자면, 손가락은 사람의 배아를 포함하여 배아가 발달할 때, 넓게 펼쳐진 조직에서 사이사이가 깎여 나가면서 마치 조각되듯 만들어진다. 이때 세포들은 면밀하게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죽어 나가는데, 물갈퀴가 필요한 수생 동물이나 박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자궁에 있을 때 손가락에 있던 물갈퀴를 이루는 세포들이 죽어 사라진다고 한다. 간혹 물갈퀴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들은 세포 자연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결과라고 하니, 인체를 비롯해 자연의 모든 생물들은 알면 알수록 참 놀랍고 신비로운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앨버트로스처럼 활공 전문가이지만 몸집이 아주 큰 동물은 이륙이 꽤 문제가 된다. 앨버트로스는 날개를 칠 수 있지만, 대개 날개를 치는 비행은 커다란 새에게는 에너지가 많이 들 뿐 아니라 아주 힘겹다. 육지에서 이륙할 때 그들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다. 양력으로 날개가 들어 올려질 만큼 충분한 대기 속도에 이를 때까지, ‘활주로’를 빠르게 달려서 바람에 올라탄다. 실제로 앨버트로스의 번식지에는 비행기의 활주로 비슷한 것이 뚜렷이 나 있다. / 179p
날도마뱀은 날다람쥐처럼 피부로 된 비막이 있다. 하지만 네 다리를 쫙 뻗어서 비막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갈비뼈가 양옆으로 뻗어 나와서 좌우의 섬세한 피부막을 지탱한다. 진화가 새 제도지를 깔고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한다고 한 말을 기억하는지? 같은 숲에는 ‘날아다니는’ 뱀도 산다. 날뱀은 갈비뼈 사이에 펼쳐지는 날개 같은 것이 없다(그리고 모든 뱀이 그렇듯이 다리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갈비뼈를 양옆으로 내밀어서 몸 전체를 충분히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몸의 단면이 비행기의 날개 단면 같은 곡선을 이룸으로써, 낙하산 효과를 낸다. / 290p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고, 해마다 여름 섭식지로 이주하는 것 등은 모두 날개의 직접적인 혜택이다. 자연 선택은 새가 비행을 함으로써 그런 혜택을 얻도록 날개를 완벽하게 다듬었다. 모양과 작동 방식 등 모든 세세한 측면을 전부 완벽하게 고쳤다. 인간은 그런 새의 모습을 통해 날고자 하는 꿈을 키웠고 그들을 관찰함으로써 ‘피칭pitching’, ‘롤링rolling’, ‘요잉yawing’과 같은 비행 기술을 익혔다. 맨몸으로 날지는 못하지만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놀라운 도약을 이뤄낸 것이다. 앞으로 ‘비행’은 우리에게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까. 과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는 요즘, 나는 누구보다도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예비 과학자의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열어 보일 누리호의 미래를 고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