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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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미완성, 고뇌와 좌절의 역사로 바라본 예술의 세계!

미술의 이면을 비추는 책이지만 그래서 미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책!

 

 

 

 

  “ET IN ARCADIA EGO(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니콜라 푸생의 작품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는 한 무리의 목동들이 돌로 된 석관에 쓰인 글을 읽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들이 사는 아르카디아는 곧 낙원, 죽음이나 고통이 없어야 마땅한 곳이나 어찌된 일인지 이 축복의 땅에서 무덤이 발견되었으니 모두 충격에 빠질 만하다.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라는 말은 ‘너희도 나처럼 죽을 것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삶 속에 죽음이 존재하니, 행복 속에서 불행을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벌거벗은 미술사』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의 양정무 교수는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 속의 메시지처럼, 생명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있고 에덴의 동산에 선악과가 있듯이 아름다운 미술에도 그늘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여느 그림에세이와 달리 그간 고상한 취미나 교양으로 포장되곤 했던 미술의 또 다른 얼굴, 즉 시대의 영광과 몰락, 인류의 도전과 좌절, 영욕의 인류사를 담은 미술의 생생한 실체에 다가가려 한다. ‘미’라는 개념의 허상을 걷어내고 완벽과는 거리가 먼 미술의 이면을 비춰보는 이러한 여정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생물 같은 속성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미’를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

 

 

  우리는 흔히 ‘고전미술’ 하면 <벨베데레의 아폴로>, <밀로의 비너스>처럼 순백색의 대리석에 아름다운 몸의 곡선과 균형미가 두드러지는, 고전시대의 모든 아름다움을 집약한 듯한 조각품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사람은 빙켈만이라는 독일 출신의 고전주의자였다. 그는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스 미술을 찬양하며 유럽의 지배층들을 열광시킨 바 있다. ‘우리의 조상은 누구이고 어디서 왔을까?’에 관한 유럽인들의 궁금증에 대해 빙켈만 같은 이들은 그들의 뿌리를 아폴로같이 이상화된 신의 얼굴을 한 그리스 조각들에서 찾음으로써 그들의 우월함을 수사화한 것이다. 이는 서양 근대미술에도 영향을 주어 고전미술로 집약되는 절대적인 ‘미’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하에 지금까지도 여기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근대미술의 수용 과정을 거친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처럼 저자는 고전미술이 신비화되는 과정을 짚어냄으로써 우리가 품고 있는 미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이 착각이거나 허상일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미란 인간의 감정에 광범위하게 관계하기 때문에 단지 몇몇 개념이나 조건으로 단순화할 수 없음을, 마찬가지로 우리는 미술 역시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미술교육의 중심은 바로 드로잉이었습니다. 드로잉은 선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프랑스어로 하면 데생이죠. 고전 조각이나 그것의 석고상을 따라 그리는 데생 훈련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퍼져 근대 미술교육의 핵심이 되었고, 이 미술교육 방식이 아시아까지 건너왔던 겁니다.

혹시 고전미술을 오래되거나 우리와 관계없는 낯선 예술이라고만 생각하셨나요? 고전미술을 중심으로 짜인 교육과정은 20세기 초까지 서양미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한국의 근대 미술교육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예비 작가들이 고전미술의 석고상 그리는 법을 암기하듯 훈련했고, 이 때문에 고전미술은 지난 20세기 내내 우리의 미감을 좌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18p

 

 

그리스 조각에 대한 관심이 샘솟던 르네상스 시기부터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이 원래 채색되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복제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니까요. 이런 이유로 르네상스 이후 ‘조각 하면 순백색 대리석 조각을 이상적인 피부의 재현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게 됩니다. 인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이 시기에 새하얀 대리석 표면은 맑고 깨끗한, 질병 없는 백인의 신체를 연상시켰나봅니다. / 25p

 

 

다시 말해 ‘육체의 파시즘 사회’였던 것입니다. 전사를 끊임없이 육성해야 했던 그리스에서 건강한 신체를 선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존강령이었겠지만, 다른 한편 신체적으로 약하거나 뒤떨어진 사람들은 살아나기 힘든 사회였다고 봐야겠죠.

미술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육체를 숭배한 그리스 사회는 미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남성 육체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기에 이를 기초로 미술에서 ‘남성 몸 보여주기’ 역시 가능했거든요. / 63p

 

 

 



 

 

 

 

  1장이 고전미술의 신비화 과정과 그 안의 허상을 들여다본다면 2장에서는 ‘왜 초상화에는 웃는 얼굴이 드물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이 장에서는 미술과 웃음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고대-중세-르네상스-근대-현대의 시대정신과 각 시대의 문명을 대표하는 표정을 탐구해본다. 이러한 과정은 미술이 어떻게 문명을 비추는 거울로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업으로, 종교와 경제, 정치 등 삶의 전 분야를 넘나드는 미술사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석조 조각의 가장 큰 미덕은 죽어 있는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입가의 미소는 조각에 생명의 충만함을 추가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어로 웃음을 가리키는 ‘겔로스’는 건강을 의미하는 단어인 ‘헬레’에서 유래했죠. 삶의 충만함을 추구했던 고대인들에게 미소는 신성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86p

 

 

「누가복음」 6장 25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교리를 충실히 따랐던 중세인들에게 웃음이란 경박하고 죄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이 때문에 중세 사회 속에서 웃음이 허용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100p

 

 

20대부터 성공을 위해 거침없이 살아왔던 그가 유행의 변화에 뒤처지면서 거듭된 투자 실패, 가족의 잇단 죽음, 극심한 경제난 등으로 인해 처절히 변해가는 모습을 제 손으로 그린 자화상을 통해 냉정히 보여줍니다. 한편 렘브란트의 경제적 실패는 당시 네덜란드 경제의 쇠퇴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1652년부터 1667년까지 두 번에 걸쳐 벌인 전쟁은 네덜란드 경제를 점차 위축시켰고, 이 과정에서 렘브란트는 경제적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은 화가 개인을 넘어 17세기 네덜란드 사회를 대표하는 표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126p

 

 

 

  3장 ‘반전의 박물관’ 편에서는 길면 300년, 짧게 잡으면 200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여온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에 대해 살펴본다. 놀랍게도 박물관의 시작점이 혁명과 약탈의 서사, 치열한 국가적 경쟁으로 점철되었던 패권주의·제국주의와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폴레옹의 원정대가 이탈리아 전역을 평정하며 수많은 미술품을 파리로 옮겨온 것이 박물관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누가 고전을 중심으로 세기의 명작을 차지하는가가 곧 유럽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하는가의 문제로 직결되었음을 시사한다. 이후 영국을 비롯해 독일에서도 박물관 건립의 붐이 일었던 것을 보면, 박물관의 위상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발휘할 정통성과 군사적 승리를 인정받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박물관은 침탈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썩 유쾌하지는 않으나 더 이상 미술품을 사치품이 아닌 문명화된 삶의 본질로 삼으려 했다는 점, 지속적으로 인류의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할 듯하다.

 

 

 

이 칙령의 다른 대목을 보면 혁명에 성공한 프랑스는 위대한 국가인 반면 봉건 체제에 머물러 있는 이탈리아는 나약한 국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대신 프랑스가 ‘자유의 조국’을 수호하면서 미술을 통해 그 위대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국립 박물관’, 즉 루브르가 있으며 이곳을 약탈한 미술로 채워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포고령 속에는 인류의 유산을 보호하여 널리 알린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서 살펴본 오늘날의 박물관 개념과 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보호라는 미명하에 타국의 미술품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 154p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루브르에 부여하는 까닭은 이곳이 바로 프랑스혁명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구체제의 심장이었던 왕궁을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방한다느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이곳을 과거의 지배층으로부터 몰수한 미술품으로 채운다는 것도 놀라운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미술관으로 개방된 루브르 궁전의 회랑을 걸으면서 새로운 세계가 왔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을 겁니다.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건설된 웅장한 회랑이 이제 시민들의 공간이 되었고, 지배층만이 누려왔던 미술품들을 시민들도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 161p

 

 

영국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같은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은 세계의 주인공이 귀족과 소수 엘리트 집단에서 시민사회로 교체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명칭을 그대로 풀면 ‘국민의 미술관’이 되는데, 소수 지배층과 대다수 국민 사이의 오래된 투쟁의 추가 국민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당시의 정치가 토머스 와이즈는 ‘미술이 사치가 아니라 문명화된 삶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면서 미술을 ‘강력한 만큼 보편적인 언어’로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미술이 몇몇 소수의 특권층에 한정된 세계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 184p

 

 

 



 

 

 

 

  이외에도 책은 팬데믹 시대에 따라 화려한 미술 속에 담긴 질병의 그림자까지 함께 살펴봄으로써 미술이 단순히 미적 가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사유하고 개인과 시대적 고민에 끊임없이 맞서 싸운 도전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덕분에 예술은 넓게 보면 완벽과는 거리가 먼 오류의 세계이며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산물임을 느끼게 해준다. 미술의 이면을 비추는 책이지만 그래서 미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미술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안목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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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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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어느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소소하지만 따뜻한 풍경들!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늘 내 하루의 모든 것이 위안이 된다!

 

 

 

 

  어린이날이라고 야구장에 가고 싶다던 아이들이 열흘 전부터 야단이었다. 야구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룰도 잘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가 보는 야구TV를 시청하며 무턱대고 ‘파란 팀’을 응원하던 아이들은 그저 야구장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는가 보다. 시끌벅적한 야구장에서 신나게 응원가를 부르며 맛있는 치킨 먹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은 다음에 또 가자고 벌써 또 난리다. 마침 연달아 어버이날도 있으니 양가 어르신들 뵙고 그 주의 휴일을 바쁘게 보내고 났더니 지치긴 했나보다. 우리 부부가 덜컥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려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도 40도까지 열이 들끓어 밤새 해열제를 먹이고,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이며 갖은 노력을 다해보았지만 지독한 A형 독감에 가족 모두가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 새삼 ‘가정의 달’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다 번거롭게 느껴지면서,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아이들과 집에서 요양을 하고 나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5월도 어느 덧 중순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두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나자 집안이 고요하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시려니 이 시간이 참 귀하고 달다. 내친김에 오랜만에 햇빛 좀 보자고 산책길로 걸음을 나서니 어느 새 초록 풀잎사귀가 무성하다. 벤치에 앉아 독감 때문에 그간 손에 잡히지 않던 책을 펼쳐 한 장 두 장 넘기는 이 여유로운 시간이 오늘따라 더 고맙고 다정하다.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 아파보고 나니 이 시간도 무척이나 귀한 것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마침 읽은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란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삶의 매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거나 놓치지 않길. 겨울이 지나면 봄마다 새롭게 꽃이 피듯, 더러 구름이 끼어 보이지 않아도 365일 매일매일 밤하늘에 별이 빛을 발하고 있듯, 삶 속에는 늘 사랑과 기쁨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길.” 애써 찾지 않아도 내 삶의 곳곳에 만발해있는 행복과 감사할 일들을 그저 놓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이미 풍요로운 것이 된다. 그러다 혹여 오늘 내 하루에 무심했던 듯한 기분이 들 땐 이 말을 떠올려보는 거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이렇게 행복이 있는데, 하고.

 

 

 




 

 

 

 

아이야, 행복에 특별한 조건을 달지 말렴.

이것만 있었어도, 이것만 없었어도.

삶이 힘겨울 때도

뭔가 비범하고 대단한 해법을 찾지 말렴.

공기와 물처럼, 나무와 바람처럼

소중한 것은 언제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란다. / 14p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을 담아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소소하지만 그 속에서 비범한 행복을 발견하게 하는 화가 강진이의 그림일기책이다. 소박하고 자잘한 날들의 기쁨을 채집하듯, 행복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 폭의 그림과 자수로 담아내 엮어냈다. 어린 시절 사이사이를 누비던 골목길의 풍경, 평상 위에 둘러앉아 한 그릇씩 가득 받아 입도 손도 옷자락도 빨갛게 수박 물을 들이며 먹던 그 날의 맛, 인형 하나 제 이부자리에 틈을 내어주고 곤히 잠든 아이들의 모습, 향긋한 오이소박이 냄새, 족집게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뽑아낸 외할머니의 흰 머리카락까지… 우리의 삶 어느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풍경들이 잔잔하지만 따뜻하게 글과 그림 속에 녹아있다.

 

 

 

의기양양하게 국수를 헹구고 한 줌 집어 물기를 뺀 국수를 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이때 먹는 국수가 가장 맛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어느새 둘째도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섰다. 새끼 제비 두 마리처럼. 소파에서 큐브 맞추기 삼매경이던 아빠 제비는 이 광경을 놓치지 않고 흐뭇하게 바라보다 외친다. “나도, 나도!”

가족이 둘러앉아 후루룩후루룩 국수 한 그릇 말아 먹으며 보내는 휴일 오후. 마음속으로 오늘 하루 제목을 붙여보니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만큼이나 완벽하다. / ‘완벽한 어느 하루’ 중에서 21p

 

 

안방 한가운데로 볕이 가득 들어차는 날이면 조그만 낮잠 베개를 베고 누운 외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뽑았다. 철부지 내게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은 양 볼 부풀려 불던 달콤한 풍선껌 같았다. 족집게로 꼭 집어 올리면 쏙 뽑히는 머리카락. 힘없이 빠지는 흰 머리카락들은 동그란 거울 위에 잡초처럼 붙여두었다. 여덟 살 땐 한 개에 십 원, 열 살 땐 열 개에 오십 원. 재 작은 손이 족집게에 익숙해질수록 할머니 머리 위 흰 눈은 더 많이 쌓여갔다. 족집게로는 미처 잡을 수 없었던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 ‘흰머리 뽑던 날’ 중에서 27p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을 향해가는 가을에도 자연은 급한 것이 없다. “익어가는 것들은 숨 가쁘게 달리지 않는다”고 박노해 시인은 가을을 노래했다. 노란 잎도, 촘촘한 열매도 이내 떨어져 이리저리 나뒹굴다 흔적만 남겠지만,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람을 느끼는 나무는 의연하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자연은 서로를 부러워하거나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제 생긴 그 모습대로 잘 익어가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 ‘익어가는 것들’ 중에서 49p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모이처럼 덥석덥석 받아먹고, 동네 친구들과 땅따먹기와 소타기말타기를 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난 시절의 내가 있었으니, 또 내 아이들의 뱃속에 하나하나 맛난 음식들을 채워주고 토닥토닥 잠자리를 봐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별 것 아닌 것들이 수놓은 일상이 내가 살아간 힘이었음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일상도 모든 게 위안이 된다. 그러니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아야지. 오늘 내가 양손에 쥔 두 아이의 손과 남편의 다정한 배려에 감사해하며 나의 일상을 사랑해야지, 하고 나를 다독여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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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ㅣ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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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라는 감각 혹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 따위가 무의미해진 척박한 지하 도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 여린 존재들에게!

이런 작가가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라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

 

 

 

  “우린 산 채로 묻힌 거야. 이런 걸 산송장이라고 한단다.”

  하늘을 본 적이 없으니 하늘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바다를 본 적이 없으니 헤엄치고 싶다는 것은, 드넓은 대지를 본 적이 없는데 마음껏 뛰고 싶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일 테지만, 인간에겐 유전으로 학습된 기억이란 것이 있어 지금의 지하 도시인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짓지도 않은 형벌을 받아야 하는 인류가 되어버렸다. 지상이 멸망한 뒤 인류는 지하에서 삶을 연명하는 길을 택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추방된 쪽에 더 가까울지도.

 

 

 

  정확히 언제 그들이 지하로 들어왔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지상을 탐사하는 선발대 모집은 6년 전을 끝으로 기약이 없고 우주 탐사대 역시 완전히 죽어버린 직업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인구가 늘어 포화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허가받은 아이만이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한된 인구 정책, 엄지손톱만한 칩을 심어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 지하 도시 생활의 유지에 필요한 VA2X를 복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에게 엄격한 경제 활동이 요구되는 이곳에 자유와 인권은 자연히 사치다. 이것이 지상이 멸망한 뒤 지하 도시로 들어간 인류의 모습을 담은 연작소설집 『이끼숲』이 그리는 기후 위기 시대 이후의 미래다.

 

 

 

어디에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사막화가 되어버린 인류의 미래를 담아낸 전작 『랑과 나의 사막』에 이어 이번에는 절멸된 지상 그 이후의 세계를 그린 『이끼숲』으로 돌아왔다. 전작의 배경이 되었던 사막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 편의 연작소설집의 배경이 되는 지하 도시 세계 역시 숨 막힐 듯 사실적으로 묘사한 천선란 식 SF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집이다. ‘나태함과 무기력함, 게으름과 우울’이 가장 무서운 ‘전염병’처럼 나도는 지하 세계, 출구도 희망도 없이 오직 절망만이 일상의 공기처럼 떠도는 이 ‘닫힌 세계’를 기어코 목전에 둔 우리의 낭패감을 이미 봐버린 듯한 기분이랄까. 그래서 읽는 내내 가슴이 무겁고 목이 조이는 듯 갑갑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나는 몇 번이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인간 복제는 인간의 한계 같아. 그 한 사람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면 아무도 인간 복제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할걸. 인간은 영생에 실패했고, 뇌 정복에 실패했어. 전부 다 실패했어. 고작 똑같은 인간 만들고 땅이나 파고 있다니. 최악의 진화 아니니? 이런 세상인 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건데. 너는?”

은희는 웃으며 물었다. 마르코는 여태껏 인간의 발전과 진화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태어나보니 이곳이었다. 마르코의 삶 전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선택권이 결여된 순간이 그때일 것이다. 탄생.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자신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 「바다눈」 중에서 69p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칩에는 이름과 출생일과 고유 아이디가 들어 있어서 구역과 구역을 나누는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인식된다고 했어. 그게 꼭 있어야 한다고. 그게 없으면 ‘정체불명’ 혹은 ‘미입력자’‘불법 거주자’‘비시민’‘침입자’ 따위가 되어 체포된다고. 그다음은 몰라. 어디로 잡혀가서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보나마나 죽겠지. 지하 도시가 이미 추방된 곳인데 여기서 어디로 또 추방할 수 있겠니? / 「우주늪」 중에서 113p

 

 

 




 

 

 

 

   「바다눈」 속 주인공인 마르코는 생명공학 연구소 빅터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그는 매일 철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한다. 마르코로서는 인간의 유전 정보를 떼어다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어떤 상상이든 결국 인간의 몸을 조립하고, 아바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사고 팔 수 있는 이 세계를 영원히 납득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한편, 「우주늪」에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로 태어난 죄로, 배관 통로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평생을 숨어서 살아야하는 의조가 등장한다. 엄마는 어린 의조에게 ‘악어떼’ 노래를 부르며 엉금엉금 기렴, 악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렴, 하고 속삭인다. 의조는 자신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우주 같은 배관 통로를 하릴없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우주 찌꺼기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아니, 존재로 입증될 수 없으니 존재라고도 명명할 수 없는 ‘제로’에 가까울지도. 이렇듯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소설은 공동체라는 감각 혹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 따위가 무의미해진 척박한 지하 도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여린 존재들을 조명한다.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끝내 구하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하지만 천선란 작가가 스스로 “구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듯,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힘껏 껴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존재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며 주저앉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크게 일으킨다. ‘과거는 우주와 같아서 우리는 걸어 그곳에 갈 수 없고, 네가 꿈꾸는 아름다움은 만질 수 없는 별과 같아서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실망만 가득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들은 서로의 마음에 가 닿기 위해, 서로를 알아본 마음을 향해 나아간다. 세계를 지배한 절망보다 나약하게 핀 희망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은 “살아 있는 모든 작은 것들은 강하다”던 믿음을 실현한다. 너무나 눈부시게.

 

 

 

나는 방금 말한 것들이 간절했지만,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곳은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잃은 슬픔이 유별나다. 분하고 억울하다.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 / 「이끼숲」 중에서 232p

 

 

소마, 나는 우리가 이끼였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할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 「이끼숲」 중에서 247p

 

 

 



 

 

 

 

  화려한 꽃을 피우거나 거대하게 뿌리를 내리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 축축한 틈 곳곳에서 멸종되지 않고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어디서든 살아가는 이끼 같은 마음들이 때로는 더 강한 법이다. 거듭된 여러 편의 작품 속에서 작가 천선란이 보여주는 이 견고한 믿음이 참 좋다. 이런 작가가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라서 다행이고, 고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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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 -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좋은 사람들에게
바바라 베르크한 지음, 장윤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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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아니’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당신을 위한 책!

나를 아끼고 지키는 현실적인 거절의 기술들!

 

 

 

 

  늘 그러하듯, ‘아니’라는 말이 목 안에서 알러지 반응처럼 간질거린다. 얼른 대답해야 한다는 내 안의 압박감이 결국 망설일 틈도 없이 “그래. 난 괜찮아.” 하고 대답해버린다. ‘됐어. 내가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거지.’ ‘이게 최선이야.’ 거절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도 우리의 관계는 서로 얼굴을 붉힐 일 없이 무탈하게 흘러갔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며 나의 결정을 긍정하려 한다. 사실 나 역시 ‘아니, 안 돼’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거절하지 못한 대가는 곧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로, 나의 책임이 아닌 것이 나의 책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토록 거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왜 가뿐하게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삶의 즐거움은 더 가까워진다

 

 

  “Nope!” 두 번째 손가락으로 가뿐히 거절을 표시하는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은 현재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화술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인 바바라 베르크한의 거절의 기술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단어가 바로 ‘아니’라는 말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아니’는 자기 결정권의 표현으로 단순한 거절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경계를 짓는 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해로운 것으로부터 보호하며, 주의력, 집중력, 시간과 에너지 같은 고유의 소중한 자원을 관리해주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 책은 이제껏 ‘아니’라는 표현 속에서 부정적인 신호만을 감지했던 우리들에게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하려 한다.

 

 

 

문제의 핵심은 아주 간단하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 고유의 영역을 크게 차지하는 이유는 ‘침입 금지’ 표지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 이를테면 “여기는 내가 결정해!”라고 알려주는 확실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분명한 경계선이 없으면 당신은 원치 않는 밀물을 맞게 된다. 너무 많은 의무, 너무나 많은 일정, 너무나도 많은 책임을 안고 만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원치 않는 썰물을 겪게 된다. 스스로를 돌볼 시간, 당신의 배터리를 재충전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얻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집중력은 극도로 적어진다. 그러면서 당신의 필요와 욕구도 점점 줄어든다. / 18p

 

 

바깥에서 들이닥치는 요구에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당신은 스스로를 보호하게 된다. 경계 짓기로 당신은 고유의 영역을 지키게 된다. 그곳은 당신이라는 ‘존재의 영역’으로, 다른 사람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당신만의 것이다. 거기서 당신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린다. 바깥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당신은 고유의 영역을 언제나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 / 24p

 

 

 



 

 

 

 

  저자는 우리가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인격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 내면의 비평가, 내면의 감독관, 걱정 생산자에 주목한다. 내면의 비평가는 우리에 대해 불평불만을 말하고, 과소평가하며, 행동을 비롯해 감정과 결정 그리고 생활 방식 전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우리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또한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잘못 보관소’를 털어 과거의 실수를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내면의 감독관의 상당수는 완벽주의자다. 완벽주의 성향의 감독관은 매우 높은 기준을 세우며 우리에게 흠 없이 완벽한 결과물을 요구하고 압박한다. 걱정 생산자는 ‘불행 예언자’다. 작은 혼란과 방해를 커다란 재앙처럼 과정하며 부정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우리는 세 골칫덩이가 내 머릿속에서 발언권을 쥐려고 할 때마다 이를 알아차리고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생각 바깥으로 밀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실체 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명쾌하고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전략: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경계선을 긋는 세 단계

# 첫 번째 단계. 무엇 때문에 경계선을 그으려 하는지 확실히 하자. 무슨 이유로 당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 두 번째 단계.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자. 당신이 괜찮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명확히 알려주자. 당신이 무언가를 왜 원하는지, 당신이 생각하는 한계점이 어디인지도.

# 세 번째 단계. 고집스럽게 버티자. 누군가는 당신의 경계를 좀먹거나 무너트리거나 혹은 무력화시키며 당신 고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려 시도할 것이다. 그래도 문제없다. 당신이 계속해서 끈질기게 경계를 지으면 된다.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자주 경계를 짓자. 당신의 고집을 깨워 활발하게 작동시키자. / 22p

 

 

당신을 작동시키는 ‘버튼’을 파악하기

# 어떤 상황에서 당신은 과도한 부담을 알아서 떠안는가?

# 당신이 경계를 잃어버리며 ‘그래’라고 답하게 만드는 말은 무엇인가?

# 상대가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당신은 그의 걸림돌을 치워주려 하는가?

# 상대가 (심리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어떤 상태일 때 책임감을 느끼며 그의 잘못이나 실수를 수습하려 드는가? / 37p

 

 

 




 

 

 

 

  저자는 말한다.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부정적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거절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거부하거나 비난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상상일 뿐이라고. 사랑받기 위해 늘 모든 이들의 마음에 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자기 내면의 생각과 일치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이 외에도 책은 ‘아니’라고 말할 용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생각들, 부정적인 생각을 이로운 생각으로 바꾸는 생각법,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도 거절할 수 있는 방법 등 나를 아끼고 지키는 현실적인 거절의 기술들을 알려준다. 오늘도 타인의 부탁 앞에서 어설픈 예스로 나와 관계를 모두 불편하게 하고 있다면 이 책의 도움을 빌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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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파더스 클럽 -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강혁진 외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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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아빠들의 뜨거운 육아 현장 분투기!

우리 가정의, 우리 사회 내 돌봄 문화의 현실을 돌이켜보게 하는 소소하지만 아주 특별한 책!

 

 

 

  여기, 함께 육아일기를 써보자며 뜻을 모은 다섯 명의 아빠들이 있다. 그 이름도 독특한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다. 눈 깜짝할 새에 쑥쑥 커버리는 아이와의 일상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글로 담고 싶었던 ‘이서 아빠’ 강혁진 작가는 이왕이면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조금은 특별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한다. 이왕이면 육아 경험이 있으면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지인을 찾다가 네 명의 아빠들이 흔쾌히 뜻을 같이 하기로 합류했고,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본격 성장일기 쓰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발을 뗀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뉴스레터는 어느 덧 1년째 1,600명의 구독자들에게 가 닿아 매주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에 비해 돌봄과 육아라는 현실은 여전히 서툴고 어색한 것투성이지만, 진심을 다해 잘해내고 싶은 다섯 아빠들의 뜨거운 분투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아이의 성장 과정 속에서 아빠라는 단어의 크기를 조금 더 키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모이고 모여 쓴 글들을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함께라서 더 괜찮은, 작지만 특별한 공동체

 

 

  “아이고 우리 아들, 밤새 배 많이 고팠지?” “아이고 우리 아들, 아빠가….”

  응? 내가 아빠라고? 몸에 딱 맞지 않은, 어딘가 수선할 부분이 남은 새 옷을 걸친 것처럼 여전히 나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일이 어색했다는 글 속의 고백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하긴, 나도 아이를 낳고 품에 처음 안는 순간 “내가 엄마야.”라고 말하는 데, 앞으로 수천 번도 넘게 불릴 그 이름이 진정 내 것이 맞나 한참을 어색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나의 하루하루는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체감해야 하는, 생애 가장 낯선 감각에 적응해야만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처음이라서, 당연히 아빠도 처음이라서 육아는 매순간이 낯설고 어색하고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그것을 순순히 인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능숙한 척, 괜찮은 척, 자책은 또 얼마나 했었던가.

 

 

 

  그래서일까, “육아의 현실에서 준비와 계획만큼 무용한 단어는 없어서, 준비된 지식이나 완벽한 계획을 이기는 건 결국 ‘부모의 몰입’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는 책 속의 글귀가 퍽 위안이 된다. 시간이 지나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준비되었는가, 얼마나 능숙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순간순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과 꼭 필요한 순간에 옆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니 “난 아이들 보는 데 소질이 없는 것 같애” “난 좋은 부모가 아닌 것 같아” 같은 말로 서투름을 자책하기보다 그 시간에 더 많이 안아주고, 더 자주 ‘예쁘다, 사랑한다’ 말해주며 절대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 안에 엄마라는 이름의 크기를, 아빠라는 이름의 크기를 키워가다 보면 그 이름을 먹고 아이는 저절로 커져 있을 테니까.

 

 

 

여전히 내가 아빠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이거나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잇다. 나에게는 아빠가 되기 전 40년의 삶이 있다. 아빠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 가끔 어색한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 한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함께 웃고 우는 경험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더 자주 안아주고, 더 자주 아이 볼에 입 맞추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에 스스로 어색하지 않도록. (…) 그리하여 조금씩, 오랫동안 내 안에 아빠라는 단어의 크기를 키워갈 것이다. / 34p

 

 

아이의 탄생에 오직 부모의 의지만 개입했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모든 행불행은 부모의 책임이 된다. 부모의 미숙함과 세상의 불완전함은 아이를 돌보는 마음에 자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중략) 하지만 내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 나에게 와준 것이라면 부모는 씩씩해질 수 있다. 함께 힘을 내볼 수 있다. 아이도 용기를 내줬으니까.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중에서 / 100p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시작하고 각종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다섯 아빠들은 사실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돌봄과 양육이 처음이라서, 새로운 역할과 친숙해지고 책임감을 가지고 잘하고 싶어서, 소외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서툰 사람끼리 도움을 주고받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고 육아일기를 쓰는 일을 낯설고 특별한 일처럼 여긴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건 곧 다시 말해 양육자 중에서도 아빠가 얼마나 소수인지, 늘 공기처럼 있었지만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절대 다수인 엄마와 여성이란 존재가 얼마나 소외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돌봄의 현장에서 어느 한쪽이 소외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성원이 모두 참여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돌봄 문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우리 가정의, 우리 사회 내 돌봄 문화의 현실을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낯선 영역에서 비슷한 사람이나 롤 모델, 소위 레퍼런스가 없을 때 외로움과 막막함은 피할 수 없는 친구가 된다. 아내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내게 아내는 이미 능력치가 다른 사람이자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레퍼런스였다.

만약 육아휴직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회사원으로서의 걱정이 아닌 아빠로서의 경험담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백화점 문화센터에 ‘아빠랑 아기랑’ 강좌가 개설되어 아이들 나이대가 비슷한 다른 아빠들의 육아 스킬 또는 역경을 엿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사는 동네에 휴직한 아빠가 많아 평일 오후 4시에 다 같이 라테 한 잔을 마시며 육아가 지닌 50가지 그림자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육아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 83p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삶에서의 피버팅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피버팅을 잘하는 사람은, 아빠로서의 삶과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삶 역시 굳건히 다져가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굳건해야 아이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라는 중심축을 지지하는 발이 단단해야 ‘아이’를 향해 움직이는 다른 발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피버팅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삶에 더욱 충실하려 한다. 언제든 아이에게 향할 피버팅 능력을 기르기 위해. / 167p

 

 

노키즈존에 대한 사회적 갈등도 차별, 혐오 같은 객관적 정의보다, 당사자들이 겪은 주관적 상처와 불편함에 대한 공감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노키즈존의 시작이 처음부터 아동 혐오가 아닌 진상 부모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은 점주의 상처와 그로 인한 자구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보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따뜻함과 친절함일지도 모른다. / 210p

 

 

 



 

 

 

 

  아빠들의 육아일기이자, 성장일기이면서 돌봄 현장의 또 다른 생생한 목소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아빠들의 이런 움직임이 더 이상 별스럽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오늘도 외롭고 고단한 육아로 지쳐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이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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