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영우.최양현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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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잊혀서는 안 될 중요한 페이지!

내가 이 땅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무명들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2년 5월, 군속 지원

<매일신보>에 군속 채용 선전 기사가 실렸다.

지원 자격은 일본어 사용 가능자,

보통학교 졸업자 이상의 학력자란다.

집안의 기둥인 형님과 어린 아우들은

전장으로 보낼 수는 없다.

급여도 많이 주고 2년 근무 만기라는데,

우리 집안을 대표해 내가 다녀오는 것이 맞겠지. / 12p

 

 

 

  1941년 말,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일본군과 연합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오고갔다. 이 무렵 조선 반도에서는 ‘거대한 서양 제국 연합에 맞서 태평양 한가운데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황군을 조선인이 도와야 한다. 내선일체, 즉 일본과 조선은 하나의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조선인 역시 참전하여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반도의 조선인 청년들이 하나둘씩 일본군에 차출되기 시작했고, 스무 살의 청년 최영우 역시 집안의 기둥인 형님과 어린 아우들을 대신해 전쟁터에 다녀와야 했다.

 

 

 

  가장인 작은아버지가 신문을 펼쳐놓고 최영우에게 말했다. 현재 일본군이 사로잡은 미군과 영국군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감시원, 즉 군속을 수천 명 모집 중이라는 것이다. 군속은 군인이 아닌 군대 소속 공무원으로, 월급도 많이 주고 총칼을 든 군인으로 참전하는 것이 아니니 안전하며 무엇보다 드넓은 세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2년만 눈 딱 감고 버티면 다시 늠름하게 고향으로 돌아와 대학에 가고, 하고 싶었던 일들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그를 비롯해 많은 조선 청년들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뒤바뀔 줄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만 5년 동안 포로감시원으로 차출된 조선인 최영우가 당시 있었던 일을 기록해 남긴 원고를, 그의 손자가 직접 탐사하고 새롭게 발굴해 재구성한 글이다. 스무 살의 한 평범한 조선 청년이 어떠한 경유로 인도네시아에 도착해 낯선 포로감시원의 신분이 되어야 했는지, 봉급을 받는 근무 계약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일본군 이동병보다 못한 최말단 대우를 받으며 거친 전쟁의 풍랑을 견뎌냈는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해 몸이 비쩍 마른 포로들, 젊은 군인들의 성욕을 만족시키고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군 부속 위안소로 강제 동원된 조선 여인들까지. 최영우의 기록 속에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자의적인 판단,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청춘들의 참혹한 고통이 담겨 있다.

 

 

 

휴일에 부대에 설치된 위안소에 가 봤다. ‘부대가 가는 곳에 위안소도 간다.’라는 구호처럼 이곳에도 이미 여인 부대가 들어서 있다. 방이 스무 개나 될까. 방을 배정받은 병사들이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준비한 콘돔을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가 일을 치른 후 30여 분쯤 지나 다시 방에서 나오는 그들의 안색은 야릇하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인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피지배 민족의 비애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 81p

 

 

 



 

 

 

 

  급박하게 흘러가는 전선은 포로감시원의 운명까지 마구 뒤흔든다. 일본군이 동남아 전선 곳곳에서 패전하면서 일본군 점령지는 점차 연합군 수복지로 바뀌어 갔고, 이로 인해 포로감시원들 역시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재배치 및 근무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군은 네덜란드인의 기초적인 자치를 허락하고 외출입을 비교적 자유롭게 관리했으나 1942년, 전환이 불리해지면서 이들을 한 공간에 억류하는 조치를 대대적으로 시행한다. 초기 2천여 명에서 시작해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1만여 명 이상이 억류되고, 이로 인해 포로수용소와 다름없는 처우를 받은 민간인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다. 이는 종전 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전범 용의자가 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공식적인 항복 이후 포로감시원들은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일본군 소속임과 동시에 일본에 의해 수탈당하던 식민지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합군으로부터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처우에 관해 협상하기 위해 ‘조선인 민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였으나 오히려 테러와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조직으로 인식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조선인 민회 안에 섞여 있던 최영우는 포로감시원에서 포로 및 전범 용의자 신분으로 전환되고 만다. 그는 다른 포로감시원들과 함께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로 옮겨져 여러 차례 취조를 받다가 자카르타 인근의 치피낭 형무소로 이감되는데 그 과정에서 겪은 고초는 차마 말로 다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굶주린 우리들은 밭에서 김을 매는 시늉을 하면서 뿌리고 잎이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죄다 뜯어 입에 넣었다. 우리가 밭을 완전히 망쳐 놓은 것이다. 그 후 그 작업은 중지되었다.

하루는 장작을 패라는 명령을 받고 아름드리 나무뿌리를 모아 놓은 광장으로 나갔다. 그것은 차마 먹을 수가 없는 나무였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배를 굶주린 우리의 눈에는 그것도 먹을 것으로 보였다. / 186p

 

 

나의 운명은 실로 풍전등화 격이다. 언제 교수대가 나를 부를지 모른다. 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겪는 운명의 장난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다른 감방에 남아 있는 자들은 서로의 심정을 헤아릴까? 설령 이해한다 하더라도 별다른 도리도, 수단도 없다. 그저 복도의 철창 밖으로 오늘의 조사나 재판 과정을 잠시 물어볼 수밖에. 내가 그들과 한몸이 되어 걱정을 한다거나 그들을 대신할 수도 없다. 아무 조언도 실효가 없다. 같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것이 최대의 위안일 것이다. / 199p

 

 

 

  그간 일제강점기와 관련해서 다양한 증언들을 봐왔지만 ‘포로감시원’으로 차출된 조선인의 이야기는 상당히 낯설다. 어째서 일본은 굳이 조선인들을 동원해 적국의 포로들을 감시하게 했던 것일까. 책에서는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일본군의 병력을 전투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포로 감시 업무는 전투 행위가 아니므로 훈련을 받은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둘째는 포로와 일본군 간의 일상적인 접촉 중에 생길지도 모를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조선인 포로감시원을 앞세워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월한 민족으로 찬미됐던 백인들을 일본군이 포로로 잡았다는 것을 직접 목도하게 해 일본의 위세를 선전하기 위함이다. 이때 기록에 따르면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출발했는데 겨우 130여 명의 동료들만 남아 귀환선을 탔다고 하니,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조선 청년들의 청춘과 목숨을 갉아먹은 전쟁이 참으로 야속하기만 하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포로감시원 생활이 억울하기도 했고, 그를 따뜻하게 받아 주지 못한 고국이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로감시원 모집의 특성상 채용 공고에 응시해 합격했기 때문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나 징용자와 달리 겉으로는 자발적 참전자로 보이기도 했고, 전범 용의자 딱지가 붙여진 탓에 세상에 드러내 놓고 항변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그저 한 때는 손바닥만큼이나 좁아 보이던 고향에서 생업에 만족하면서 근근이 살아갔다. / 209p

 

 

 




 

 

 

 

  전쟁은 소수의 위정자들의 결정으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수많은 무명의 개인들은 자신의 삶 전체를 희생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내가 이 땅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수많은 무명들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포로감시원들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이 책이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잊혀서는 안 될 중요한 페이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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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게
늘리혜 지음 / 늘꿈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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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닌, 진짜 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를!

우리가 한때 너무나도 간절하게 갈망했던 그 시절, 그 사람, 꿈들을 들추어보게 하는 소설!

 

 

 

제운은 전혀 웃지를 않네요.

시키면 또 잘하기는 하는데, 도통 무슨 생각인지…….

제운아, 넌 무엇을 할 때가 제일 좋아? 응? / 21p

 

 

  

  “제운은 무얼 좋아해?”

  숱하게 들어왔지만 매번 시원하게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질문. 제운은 줄곧 무심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통 어디에도 관심과 흥미를 갖지 못하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년시절에 죽은 아빠를 대신해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걸맞은 자기 역할은 항시 잊지 않았다. 그래서 남몰래 동화를 쓰고 있다는 것을, 동화처럼 아름답고 순수하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글을 완성하고픈 바람을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도 쉽사리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 하굣길에서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작고 가벼운 소녀를 목격했다. 그녀는 바람이 불면 정말로 날아오를 것 같은 모습을 하고서 하늘을 온 몸으로 품으려는 듯 두 팔을 내뻗고 있었다. 제운을 발견한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 하늘 어딘가에 나의 진정한 모습이 있을 거야. 그래서 보고 있었어, 하늘.” 그러고 보니 제운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소녀였다. 그의 이름은 하늘이었다.

 

 

 

“난 언제든 어디든 있어. ‘하늘’이고 ‘늘’이니까.” / 40p

 

 

 

  학교를 다니다보면 꼭 그런 아이가 하나씩 있다. 사고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아이. 독특하다는 이유로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이 되는 아이. 하늘이 바로 그런 아이였다. 이를 테면 외계인과 통신을 주고받는다거나 귀신을 볼 수 있다거나 남에게 저주를 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등의 이상한 소문을 달고 다니는 그런 아이 말이다. 사실, 하늘은 ‘하늘’처럼 되고 싶었다. 늘 한결같이 하늘처럼 아름다운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건 부모가 자신에게 준 첫 선물이었으며 그들 사랑의 결실이었으므로. 엄마가 가족을 두고 떠나버리고 아빠마저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이후로 그런 바람은 더욱 간절해졌지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이용하고 왜곡하는 사람들로 인한 상처는 더욱 깊어져갈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제운을 만났다. 자신과 똑같은 꿈을 꾸는 그를, 아무도 믿지 않는 자신의 꿈을 믿어주는 그를.

 

 

 




 

 

 

 

어쩌면 정말로 많이 좋아질지도 모르는 사람. 어쩌면 벌써 많이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 242p

 

 

 

  제운은 자신의 좋지 않은 상황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 하늘과,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행동하려는 하늘의 강인함에 이끌린다. 반면 하늘은 속으로 울고 있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제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온기가 좋다. 그래서 되도록 오래,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준다. 제운은 책임감으로부터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고, 하늘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그들 앞을 가로 막는다. Ni renkontigos. 다시 만나자던 그 말처럼, 두 사람은 과연 다시 서로를 향할 수 있을까.

 

 

 

  이처럼 소설 『하늘에게』는 아이와 성인의 경계선에 선 남녀가 각자가 지닌 상처와 비밀을 공유하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자 청춘로맨스소설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닌, 진짜 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담은 이야기다. “나의 색은 늘, 너였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 전체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사람, 상대의 색으로 하여금 나의 색 전체를 물들게 하고픈 사랑. 우리가 한때 너무나도 간절하게 갈망했던 그 시절, 그 사람, 꿈들을 들추어보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다만 여기서는 ‘일곱 색깔 나라와 꿈’으로 표현되는 판타지 세계관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를 신비스럽고 몽환적이며 동화적인 이미지로 시종 끌고 가다 보니 다소 모호하고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판타지라는 장르일수록 독자에게 세계관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탓에, 블러셔로 처리된 듯 흐릿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세계관에 대한 구성은 작품 전체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또 주인공들의 나이가 고3이라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감정선과 그 감정선을 뒷받침해줄 수 있어야 할 에피소드들이 단조로운 점 역시 아쉽다. 하늘이와 제운이의 서사가 좀 더 두텁게 형성되었더라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오랜만에 순수하고 아련했던 어느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책을 만나서 반갑다. 특히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새로운 판타지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작가의 소신 있는 글쓰기를 응원하고 싶다. 당신의 글로 하여금 세상의 여린 틈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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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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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색채를 즐길 수 있는 작품!

음식과 성이라는 주제를 문학으로 한 데 엮어낸 감각적인 소설!

 

 

 

티타와 식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방향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식탁은 티타가 태어나면서부터 흘린 슬픈 눈물을 받아 내며 그녀와 운명을 함께해야 했으며, 티타는 이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 18p

 

 

 

  1910년 무렵 멕시코의 어느 마을,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잃은 티타는 가정과 농장을 동시에 운영해야 했던 마마 엘레나를 대신해 요리사인 나차의 손에 길러진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엌은 곧 티타의 유일한 세계였으므로 그녀가 특별히 요리에 뛰어난 감각을 지니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르겠다. 티타의 삶은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소리와 향, 식탁으로 점철된 시간의 연속이었으며 삶의 즐거움 역시 먹는 즐거움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티타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반해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페드로 무스키스라는 청년으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하지만 마마 알레나는 데 라 가르사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 즉 막내딸이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를 앞세워 이를 무산시킨다. 이는 티타가 결혼은 물론 자식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대신 티타가 아닌 첫째 딸 로사우라와 페드로가 맺어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티타는 마마 엘레나로부터 언니와 페드로의 웨딩케이크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다. 절망과 원망, 회환과 괴로움의 눈물이 뒤섞인 웨딩케이크는 결혼식 당일 괴이한 식중독을 일으킨다. 모든 하객들이 케이크를 먹는 순간 크나큰 슬픔과 좌절감의 포로가 되어 흐느껴 울더니 이내 마당 한가운데서 토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신부인 로사우라의 웨딩드레스마저 구토물 범벅이 되자, 유일하게 케이크를 먹고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티타는 언니의 결혼을 망치려 들었다며 마마 엘레나로부터 구타를 당한다. 이내 티타는 페드로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며 그녀의 언니와 결혼한 것은 오로지 티타를 가까이서 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한층 날카로워진 마마 엘레나의 감시와 구속은 티타를 더욱 옥죌 뿐이다.

 

 

 



 

 

 

 

  나차의 죽음으로 집안의 요리사가 된 티타는 오직 요리를 할 때만 자유롭고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난생 처음 페드로로부터 받은 장미꽃에 마음이 들떠 메추리 요리를 만들기로 하는데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에 스며든 티타의 육감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은 놀랍도록 감동적인 요리를 탄생시킨다. 페드로는 티타의 요리를 먹자마자 황홀한 표정으로 탄성을 지르고, 둘째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그동안 억눌러 왔던 성적인 욕망을 발산하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가버린다. 의지하던 헤르트루디스가 그렇게 집을 떠나자 티타는 조카인 로베르토에게 애정을 쏟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젖이 나오지 않는 언니 로사우라를 대신에 로베르토를 먹이고 키우는 티타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페드로의 시선을 눈치 챈 마마 엘레나는 페드로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버린다. 훗날 그곳에서 로베르토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충격에 빠진 티타는 만들고 있던 초리소를 찢어발기며 “엄마가 로베르토를 죽였어!” 하고 마마 엘레나에게 소리친다.

 

 

 

연금술 같은 묘한 작용이 일어나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 속으로 스며들어 녹아내린 것 같았다. 티타는 그렇게 달아오른 체취를 풍기며 육감적이고 섹시하게 페드로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티타와 페드로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견한 듯했다. 그 안에서 티타는 발신자, 페드로는 수신자였으며, 불쌍한 헤르트루디스의 몸은 그들의 성적인 메시지가 지나가는 매개체였다. / 59p

 

 

사람들은 설탕에 절인 달콤한 시트론 맛, 매운 고추 맛, 그윽한 호두 맛, 시원한 석류 맛 등 갖가지 진미로 속을 가득 채운 칠레고추를 남겼다.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가 얼마나 맛있는데! 정말 꿀맛인데! 그 안에는 갖가지 사랑의 비법이 들어 있었지만 점잖은 체면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빌어먹을 체면! 빌어먹을 예의범절! 그것들 때문에 그녀의 몸은 속수무책으로 조금씩 시들어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 65p

 

 

 

  정신병원에 넣으려는 마마 엘레나로부터 티타를 구한 건 주치의인 존 브라운이다. 존은 티타에게 ‘이성’을 찾아주고 자유의 길을 열어준다. 티타에게 사랑을 느낀 존은 그녀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받아들여줄 때까지 아끼고 보살핀다. 그렇게 존의 사랑으로 치유된 티타는 존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지만, 마마 엘레나의 죽음으로 페드로가 돌아옴으로써 다시금 그녀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과 자신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페드로 사이에서 고민하는 티타,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후 소설은 여전히 마마 엘레나의 환영을 보며 관습과 의무,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티타가 욕망과 사랑 앞에서 고뇌하며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극복하려는지를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그려나간다.

 

 

 

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 옆에서는 가차 없이 미리 정해진 일을 해야만 했다. 질문의 여지도 없었다. 일어나 옷을 입고, 화덕에 불을 지피고, 아침을 준비하고,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고, 설거지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점심을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다림질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매일매일, 해마다 그렇게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그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의 명령에서 자유로워진 손을 보며 티타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 117p

 

 

금기시되는 것과 죄악시되는 것, 정숙하지 않은 것은 바랄 수 없다.

하지만 대체 정숙하다는 게 뭐란 말인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부정하는 것? 차라리 어른이 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페드로를 몰랐더라면! 페드로의 아기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구석구석 그녀를 쫓아다니며 그녀의 행동이 정숙하지 못하다고 소리 지르지 않았더라면! / 184p

 

 

 

  이처럼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음식과 성이라는 소재를 문학과 결합시킨 이색적인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파이, 차벨라 웨딩 케이크, 북부식 초리소, 초콜릿과 주현절 케이크 로스카 등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은 각 장의 특징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매개체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는 ‘금기를 욕망’하게 하고, 소꼬리수프는 티타의 무너진 정신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초콜릿은 ‘집과 가족에 대한 향수’를, 크림 튀김 역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각 장마다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구성은, 가족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것을 넘어서 오랜 세월 재료 한 개, 1g 하나하나까지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식탁이라는 우주를 완성해낸 ‘여성 서사’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에게 있어 음식과 부엌이란, 어머니 또는 그 이전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시간과 공간으로서의 역사이자 그들의 자아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산이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티타는 식민지 전 시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요리 비법의 마지막 계승자였기에 그것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막내딸이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부당한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도 쉽사리 헤어 나오기 어려웠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하는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기에, 그녀의 감정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고스란히 공유된다. 이는 마치 음식에 연금술을 부리기라도 한 듯 기묘한 장면으로 연출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알렉스와 조카인 에스페란사의 결혼식 날 있었던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만든 티타의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는 하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며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심지어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그들은 황급히 농장을 떠나 여기저기에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이 에로틱한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요리란 곧,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는 행위이자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오감을 여는 놀라운 체험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즉, 요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여성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창조성을 지닌 주체적인 위치로 재평가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티타는 신바람이 나서 세례식 때 내놓을 몰레를 하루 전 날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페드로는 거실에서 티타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태껏 느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냄비 부딪히는 소리, 질냄비 위에서 노르스름하게 익어 가는 아몬드 냄새, 요리하면서 흥얼거리는 티타의 달콤한 목소리가 페드로의 성적 본능을 자극했던 것이다. 연인들이 사랑하는 이의 은밀한 체취를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애무를 즐길 때 둘만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처럼, 페드로는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음식 냄새, 특히 노르스름하게 익은 참깨 냄새로 굉장한 요리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74p

 

 

이 뜨거운 탐색전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영원히 바뀌었다. 옷을 뚫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나눈 후로는 모든 게 전과 같지 않았다. 티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 같은 사랑을 겪어 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페드로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서도 티타의 가슴을 순수한 소녀의 가슴에서 관능적인 여인의 가슴으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 75p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말을 준비할 때, 싸우면 타말이 익지 않는다고 했던 나차의 말이 떠올랐다. 타말이 화가 나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익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타말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익을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고 했다. 티타는 자기가 로사우라와 싸워서 콩들이 화가 난 거라고 미뤄 짐작했다. / 228p

 

 

 




 

 

 

 

  소설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존이 티타에게 성냥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다. 존은 티타에게 산소가 종 모양 유리관 윗부분에 있던 인 가스와 만나는 순간 커다란 불꽃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여주며 우리는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나 음식, 음악, 애무, 언어, 소리 같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말은 티타로 하여금 우리 안에는 저마다 불씨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관습과 굴레, 억압과 폭력의 차가운 입김에 지배당하지 않고 부단히 내 안에 잠재된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아주 강렬한 흥분을 느껴서 우리 몸 안에 있던 성냥들이 모두 한꺼번에 타오르면, 강렬한 광채가 일면서 평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이 보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잊어버렸던 길과 연결된 찬란한 터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거고요. 그곳은 우리가 잃어버린 신성한 근본을 다시 찾으라고 손짓할 겁니다. 영혼은 축 늘어진 육체를 남겨 둔 채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할 테고요…….” / 256p

 

 

 

  이렇듯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음식과 성이라는 주제를 문학으로 한 데 엮어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감각적이라는 인상을 남기지만, 몇몇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여성의 성장 서사가 애매모호하게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페드로를 향한 티타의 사랑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점도 흠을 남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중성에 기여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문학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짧지만 강렬한 고전 작품을 만나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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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오자와 다케토시 지음, 김향아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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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죽음이 나에게 물어오는 것들!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삶의 진지한 물음들!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호스피스 의료법 중에 ‘존엄치료’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환자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완화 치료의 한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이 본인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치료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추억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통해 환자가 스스로 인생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게 하는 방식이다. 이때 질문에 대답하려면 환자들은 자신의 다양한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막연하게 떠올려서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글로 쓰면 점차 윤곽이 또렷해진다고 한다. 덕분에 환자들은 자신이 살아온 의미를 깨닫거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25년 동안 3,5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본 호스피스 의사 오자와 다케토시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존엄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좋은 인생이었다고 수긍하며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왔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바쁜 나날을 살고 있는 우리는 좀처럼 자신의 인생관을 다시 살펴보거나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1년 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 온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호스피스 환자들이 그러했듯,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큰 고비가 다가오면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어 지금까지 몰랐던 인생의 의미와 자신이 살아온 이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보길 제안하며 앞으로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해,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인생의 마지막을 설정하면 일상이 변합니다.

모든 것이 소중해지죠.

하지만 그중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 29p

 

 

 



 

 

 

 

  책에 따르면, 2020년에 실시한 인생 만족도 조사에서 약 36%, 즉 3명 중 1명 이상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나 생활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한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이전과 비교했을 때 생활 만족도가 큰 폭으로 낮아졌고, 생활의 즐거움과 사회와의 유대감 같은 분야에서도 감소폭이 매우 커졌다. 인생의 기쁨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이후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고,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자제하고 제한된 생활을 계속하게 되자 나 역시 잦은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자연 재해, 치솟는 물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 등 다가올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욱 막막하게 했다.

 

 

 

  이에 저자는 앞으로 1년 후 나의 인생이 끝난다고 가정해보기를 제안한다.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 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내 인생에는 의미가 없어.’, ‘나에게는 가치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만약 1년 후 끝난다면?” 하고 가정해봄으로써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면, 지금까지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고정관념과 속박에서 해방되어 눈에 보이는 풍경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어쩌면 성장 과정에서 잊거나 포기하거나 참을 수밖에 없던 일 중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인생이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불필요한 일이 사라지고 현재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수많은 해야 하는 일 중에서도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우선도가 낮은 일은 손에서 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게 되어 마음에도, 시간에도 여유가 생길 수 있다고.

 

 

 

“나답다.”라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

원하는 모습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싫은 모습까지 포함한 모든 면이 나다움입니다.

다만 지나친 배려와 인내로 힘들다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조금씩 늘려 봅시다. / 95p

 

 

내가 하는 일과 일하는 방법이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지는지 꼭 돌아보세요. 만약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진다고 느낀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일을 통해 일인칭 행복만 얻었다면 일하는 방법과 업무 내용을 어떻게 바꿔야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질지 생각해 봅시다. / 127p

 

 

인간에게는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자유가 있으며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꿈과 희망이 없으면

인간은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반대로 건강할 때도, 병과 죽음이라는

큰 괴로움을 안고 있을 때도

미래를 꿈꾸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됩니다. / 157p

 

 

 

  프랑스의 고생물학자이며 가톨릭 사제인 테야르 드 샤르댕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아름다운 자수를 뒤에서 보는 것과 같다.” 자수를 뒤에서 볼 때는 한 땀 한 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앞에서 보면 비로소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해 사람은 고통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배운다고 한다. 그가 만난 환자와 가족들은 처음에는 본인이나 가족이 큰 병에 걸린 사실,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에 매우 힘들어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선함, 감사함, 일상의 위대함, 자연의 아름다움, 지금껏 살아온 의미와 존재의 가치 등을 점차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고통에 직면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 당연해서 놓쳤던 것들을 죽음에 직면하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보면 죽음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나의 의미’와 ‘인생의 길’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가요? 나다움을 발견하셨나요?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있나요? 호스피스 환자가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듯, 책에 수록된 삶에 대한 다채로운 질문들은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진지한 물음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삶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이 책으로 하여금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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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 않은 사랑 -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
주서윤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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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탈한 나의 하루를 응원하는 책!

나쁜 우연에 상처를 입을지라도 좋은 우연에 다시 회복될 수 있다!

 

 

 

  몇 달 전, 독서지도사 자격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자격증을 딴 뒤 당장 독서지도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일단 자격증이라도 따놓고 보자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내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니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책읽기와 글쓰기뿐인데. 그나마도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지, 체계적인 계획이나 지식이라고는 없는 내가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때문에 독서지도사란 무엇인지 미리 알아놔 두자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과연 내가 이걸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곤 했다. 좋아하는 것이 반드시 잘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나의 미숙함만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이런 고민을 지인들에게 토로하자, “네가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해서 그런 거야.”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의 기준대로라면 결코 시작할 수 없다고, ‘잘 한다’에 대한 기준이 높은 나머지 나의 부족함만 보이는 거라고. 아니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완벽을 추구하려는 자가 아니라 그저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속은 사람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하지 않은 사랑』 속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주의자들은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완벽히 속은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완벽해 보이는 데 나는 왜 이리도 부족한 것투성일까, 그런 생각들이 오히려 완벽주의자로 가장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래, 사실 나는 진짜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완벽히 속은 사람이었던 거야, 하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진짜 완벽주의자도 아니면서 완벽주의자인 척 하는데 나의 감정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늘 하루 무탈하다면 그걸로 된 거야

 

 

 

  『가난하지 않은 사랑』은 작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고 싶은 주서윤 작가의 청춘 에세이다. 그녀는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을 가진 세상을 향해 ‘내가 사랑하는 걸 사랑한다’라고 당당히 밝히며, 서로가 오해하지 않고 보다 나답게 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는 사랑할 때만 만날 수 있는 무수한 나날과 소소하지만 끝내 좌절하지 않는 우리네 일상과 꼭 닮은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따금 혼자 카페나 식당에 가면 옆 테이블의 일행들로부터 의자를 좀 빌려가도 되겠느냐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녀 역시 2인용 식탁에 앉아 햄버거 세트를 먹고 있을 때 한 일행에게 의자를 빌려주었다고 한다. 남자 다섯 명이 북적북적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앞 테이블과 달리 그나마 빈 자리였던 의자마저도 없는 테이블이라니, 없어진 건 고작 의자 하나뿐인데 마음이 더 쓸쓸하고 허전해졌다고 한다. 누군가 곁에 있을 가능성까지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탁자에 의자가 있는 이유는 ‘누군가 앉을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자의 부재로 확인받는 순간 느껴진 외로움이란 감각들. 그 헛헛한 마음을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시로 느끼면서도 가볍게 생각할 때가 있다. 하긴, 우리 인간이란 이런 사소한 순간들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인데, 나는 그간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내 안의 감정들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하지는 않았는지 문득 반성해보게 된다.

 

‘

 

내 취향은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이 좋아하지 않을 때 은근한 소외감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부끄러워할 때 은근한 수치심도 든다. / 22p

 

 

행복은 ‘순간’과 닮아있다.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건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예전 일기장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행복한 삶이 아닌, 행복한 순간들에 집중하자.

불행에 민감한 것보다 행복에 민감한 게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행복 센서를 조금 더 민감하게 작동해 봐야겠다. 일상에 묻어있는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 83p

 

 

 

  나 또한 그러했듯 그녀 역시 대부분의 문제 앞에서 ‘내가 더 잘했더라면, 내가 더 신경 썼더라면’ 하고 자책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차츰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깨달아간다. 또 나쁜 우연에 상처를 입지만 좋은 우연에 회복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현실은 깰 수 없는 두꺼운 벽이었지만 떠올려보면 문은 언제나 벽에 있었고, 벽을 만났다는 건 곧 문을 만난 것과 같다고 긍정해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는 지구의 78억 명 중 한 명으로 태어났고, 나는 나라서 유일하다는 것. 능력이 있어야 가치 있는 게 아닌, 존재 자체가 유일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과거의 어느 한 장면과 그때 덮어두었던 나의 감정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의 글을 읽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미래가 더 반짝일 그녀의 글을 이번엔 내 쪽에서 응원해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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