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스 랩 - 그 멋진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론 M. 버크먼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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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는 것이 중요하고 만들다보면 알게 된다!

이 시대의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전하는 창작의 노하우!

 

 

 

  흔히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어떤 천재적인 예술가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재능에 의해 탄생된 것이라 믿는다. 탁월한 천재성과 광기에 가까운 기이한 면모, 신성한 영감 등은 일부 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비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과 미술, 문학과 건축, 디자인과 영화 등 세상의 수많은 창작물들이 오로지 어느 한 예술가의 탁월한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혹여 그들이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재능이 샘솟고, 영감이 수시로 떠오르며, 상상을 뚝딱뚝딱 현실화할 수 있을까?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총장이자 『메이커스 랩』의 저자인 론 M. 버크먼은 “모두 거짓말이다.”고 말한다. 오히려 천재성이야말로 우리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위대한 작품과 혁신의 원동력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게 가로막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 시대의 크리에이터 50인과 세기를 빛낸 창작물들을 분석, 연구해온 저자는 작품을 만드는 힘이란 타고난 천재성이나 비전 같은 데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한다.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창작 원동력으로 손꼽은 것은 바로, ‘만들면서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만들면서 알게 되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크리에이터가 작업의 시작점을 찾고, 창작의 고통과 자기복제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창의성을 끌어내는 방법은 또 무엇일까. 『메이커스 랩』은 일터에서, 작업실에서, 현장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의 모든 크리에이터들을 위해 다양한 창작의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알려면, 그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 파블로 피카소

 

 

 

만들면서 알게 되는 창작의 모든 것

 

 

  애플 스토어를 설계한 디자이너 코베, 영화 〈300〉과 〈저스티스 리그〉등을 기획한 영화감독 잭 스나이더,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한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 테슬라의 수석 디자이너 프란츠 폴 홀츠하우젠,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이터널 선샤인〉의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 등 우리 시대의 뛰어난 크리에이터로 각광받는 이들은 놀랍게도 백지 위의 불확실성에서 시작했지만 만들다보면 길이 보이더라고 말한다. 그들은 대부분 창작 과정을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에 가깝게 설명한다. 그들은 완벽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섣불리 전체를 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작업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스케치하면서’, ‘즉흥적으로 상황에 대응하면서’, ‘글을 쓰면서’, ‘조각하면서’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발전하고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업 도중에 강력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발전시키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는 것이다.

 

 

 

  애플 스토어는 어떤 명확한 비전에서 나온 산물이라기보다 작은 화이트보드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을 바꾸고, 구성을 수정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디자이너 코베는 작은 모형부터 실물 크기 모형까지 하나하나 만들어 보고, 다시 부수고,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며 만족스러울 때까지 실험을 거듭했다고 말한다. 미술가인 스티븐 빌은 첫 단계에서 필요한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보다는 재료를 민감하게 살피고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며, 재료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경험해보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계속 얻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 『조이럭 클럽』을 쓴 소설가 에이미 탄은 미리 결말을 구상하는 게 위험하다고 경고까지 한다. 그는 이를 ‘무서운 관찰자 효과’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내가 쓰려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보죠. 그걸 다른 시각에서 보고, 그것과 연관된 측면을 찾으려고 애쓰겠죠. 그런데 거기에만 너무 열중하면 결국 그 연관성에 대해서만 글을 쓰게 될 거예요. 다른 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요.” 즉 그에게 창작이란 미리 생각해둔 뭔가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발견의 조건을 만드는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세이터의 설명의 들어보면, 치밀한 계획과 청사진이 우선되는 영상 작업이라고 해서 미리 생각해둔 비전을 그대로 실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가 체르노빌에서 야생마 무리를 촬영했던 일화는 창작자의 ‘준비된 즉흥성’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체르노빌에서 세이터가 경험한 것에서 우연히 찾아온 멋진 기회를 포착하려면 역설적이게도 촘촘한 계획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흥연주를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훈련과 경험이 꼭 필요하듯이 말이다. / 80p

 

 

해밀턴에게 ‘알지 못하는 상태’는 창작을 위한 준비 기간이자, 창작 재료와 소통하는 기간이다. 그녀는 이 시간이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 넓힐 수 있는 일종의 훈련이라고 설명한다. “알지 못하는 상태는 무지의 상태가 아니에요. 우리는 모르는 걸 두려워하지요. 그러나 ‘아직 모르는 상태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결과 없이도 가능성을 믿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는 거예요. 계속 실행해나가는 게 우리가 할 일이죠.” / 112p

 

 

“호기심에서 모든 것이 시작돼요. 제가 사용하는 건 탈무드 모델이에요. 탈무드 모델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질문’이 핵심이지요. 여기에는 뭐가 적합할가? 이곳은 어떤 종류의 공간인가? 주변 공간과 어떻게 조화시킬까? 사람과 공간이 어떤 관계를 맺을까?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게리는 경험과 교육이 질문을 구체화하고, 질문을 통한 행동을 촉발한다고 설명한다. 게리의 견해는 경험, 교육, 가치, 우선순위, 윤리, 재능이 창작자에게 발판이 되어준다는 이야기와 같다. / 163p

 

 

 



 

 

 

 

  “리더십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끌어보는 것이다. 결혼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는 것이다. 그 일이 내게 맞는지 알아볼 유일한 방법은 오랜 기간 직접 일을 해보는 것이다.”던 랍비 로드 조너선 색스의 말처럼, 저자가 만난 크리에이터들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일단 하는 것이 중요하고 만들다보면 알게 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이는 곧 ‘타고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며 아는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알게 된다’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쩌면 위대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 낼 힘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것, 그것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에서 위대함이 탄생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방식으로 원고를 여러 번 읽으면서, 그는 문장을 명료하게 고치고, 이야기에 자의식 과잉이나 사각지대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소중한 것을 죽여라. 제가 퇴고할 때 늘 되새기는 말이죠. 습관적으로 즐겨 쓰는 표현을 의식하고 없애기 위해서요.”

벤더의 얘길 듣자 디 프리스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작가의 일에는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데, 그건 버릴 줄 아는 힘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실제로 나와 인터뷰했던 많은 작가가 글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통찰을 얻는다고 했다. / 103p

 

 

어떤 이는 앞으로 학생들이 어떤 일을 하든 기술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적응력 개발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합리적이며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이 원칙의 전제는 학생을 창작자로 키워내고 창작을 통한 앎을 교육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학생이 적응력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과 창작은 교육의 중심에 두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창작으로 중심으로 한 교육은 학생들에게 사회에서 필요한 유연성과 민첩성을 키워줄 것이다. / 270p

 

 

우리는 만들면서 알게 되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 조직에서 어떻게 ‘표지판 없는 교차로’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리더의 비전을 불확실한 창작의 공간으로 대체하는 것은 도로에서 모든 신호와 표지판을 없애는 일과 마찬가지로 위험해 보인다. 혼돈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표지판이나 정해진 ‘답’에 매달리는 게 합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몬더만은 리더가 정한 규칙을 무작정 따르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직접 해결책을 만들게 하면 오히려 더 큰 성과와 복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277p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창작자다. 새로운 일 앞에서 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지만 기꺼이 도전해보고, 그 과정에서 만난 위험을 뛰어넘음으로써 한 단계 더 성장해간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기꺼이 해보는 것, 그 안에서 배움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가 곧 살아가는 일이며 또 다른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의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이 책을 통해 귀중한 깨달음을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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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설은아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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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소통, 상대방이 듣지 못해도 닿길 바라는 목소리가 전하는 깊은 울림!

어딘가에는 말할 곳이 있다는 생각이 바스러져가는 사람들을 일으켜줄 수 있기를!

 

 

 

여러 대의 아날로그 전화기가 보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벨이 울리고 있습니다.

 

“차마 말하지 못해 부재중 통화가 되어버린 이야기,

당신에게도 있나요?

이제 누군가는 들어주었으면 하는

당신의 ‘하지 못한 말’을 남겨주세요.

당신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그 어떤 말도 괜찮습니다.” / 15p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린 2018년 12월, 6평에 이르는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전시이다. 전시장에는 여러 대의 다이얼 전화기가 누군가를 기다리듯 벨을 울리고 있다. 전화기에 다가가 보면 ‘누군가의 부재중 통화를 받아보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다.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어보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떨리는 목소리, 망설이는 목소리, 울먹이는 목소리, 살기 힘들다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 엄마를 부르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 이 목소리는 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걸까 궁금해지는 순간, 전시장 한쪽에 있는 커다란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이것을 발견하곤 조금 전 들었던 목소리의 출처를 알아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을 남길지 말지 고민한 후, 조심히 손잡이를 돌려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들면 파도 소리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자신의 하지 못한 말을 남기기 시작한다.

 

 

 

넘쳐나는 소통의 시대, 당신의 소통은 안녕한가요?

 

 

  하루 평균 손바닥 안에서 150미터의 스크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소통의 양이 활발하진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좋아요’로 정의되는 소통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환영받을 만한 것들은 수면 위로 올라오고 나머지는 점점 자취를 감추는 심각한 불균형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내가 실제 경험하는 삶과 보여지는 세계가 다른 데서 발생하는 괴리감, 공허함, 소외감은 진정한 소통의 부재를 실감하게 한다. 그러는 사이 진정 하고 싶은 말들, 누군가에게 흐르지 못하고 어딘가 묻혀 있는 말들, 신호가 왔지만 받지 않은 우리의 말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국내 웹아트 1호이자 인터넥티브 스토리텔러인 저자 설은아는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라는 전시를 통해 소외된 소통, 상대방이 듣지 못해도 닿길 바라는 목소리를 ‘부재중 통화’라는 모티프로 하여금 누군가에게로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저장된 통화 원본을 하나씩 들으며 텍스트화한 전시 도록이자, 홀로 수많은 말을 삼켜야 했던 이들의 나직한 고백이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터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가까운 사람보다 낯선 나라에서 우연히 스치는 여행자에게 오히려 속마음을 고백하기 더 편할지도 모른다. 거기엔 어떠한 선입견도 후처리도 필요 없는 홀가분함이 있다. 진정한 소통 한 조각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서로의 치유자가 될 수 있다. / 13p

 

 

모든 이야기는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다. 소외된 말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쩌면 ‘하지 못한 말’ 그 속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진실한 삶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미고 치장한 이야기가 아닌, 거울 앞에 선 맨 얼굴의 이야기들. 머리가 아닌 가슴이 하는 말들. 혼자 끌어안고 있는 이야기들에게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이제는 자유로워지라고 말을 건네고 싶었다. / 122p

 

 

 



 

 

 

 

누군가 쏘아 올린 주파수가 당신의 마음에 닿기를

 

 

  여기, 이 세상의 누군가를 향해 자신의 ‘하지 못한 말’을 꺼낸 10만 통의 부재중 통화가 있다. 열일곱 살인데 M자에 원형 탈모까지 생겨서 인생이 망한 것 같다는 고백, 방시혁을 닮은 남자친구를 보며 이왕이면 재력도 닮았으면 하는 바람, 그 날 변기 사고(?)가 어쩐지 나인 것 같다고 커밍아웃한 사연에 이르기까지. 민망해서 말하기 힘든 웃픈 고백들이 담겨 있는가 하면 가족이라서 더 솔직해질 수 없었던 사연들도 녹음되어 있다. 여러 번 죽으려 해서 미안했다고, 사실은 나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다고, 평생 원망만 해서 죄송하다고, 엄마 몫까지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누군가는 50년이나 살았는데 가진 건 없고 빚만 가득한 이 생을 더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에게 되묻고, 자신을 성형수술하게 만든 이 불친절한 사회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고 일에서도 멀어지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나의 유능함을 사라지고, 사람들이 내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거 같아서 속상하고, 실제로 나도 이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을까 봐 두렵고 망설여지고, 꿈 많고 예뻤던 한 사람이 사라지는 거 같아서 속상하다. / 41,002번째 통화 32p

 

 

누가 먼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괜찮다고 답해도 끈질기게 물어봐주면 좋겠다. / 92,201번째 통화 241p

 

 

 

  저자는 총 10만 통의 이야기 중 유의미한 내러티브가 있는 약 1만 1천 개의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가 다소 흥미롭다. 주로 어떤 대상에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남겼는지 살펴보면,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남겨진 말(36%)이 가장 많았고 혼잣말과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27%)이 다음으로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것을 흘려보내고픈 욕구가 많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이 남긴 ‘하지 못한 말’ 속에 내포된 감정을 살펴보면 바람(16.4%)이 가장 많았고, 슬픔(9%), 괴로움(6.4%), 안타까움(5.9%), 미안함(4.3%), 싫음(3.9%) 등의 부정적 감정이 사랑(6.4%), 고마움(5.3%) 등 긍정적 감정보다 더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 표현에 더 소극적이고, 보다 더 많이 가슴에 묻고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소통이란, 할 수 있는 말보다 하지 못하는 말에 보다 진실한 속살이 숨겨져 있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진심은 결국 전해지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세상 끝의 바람 속으로. / 259p

 

 

 

  2019년 2월, 저자는 세상의 끝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첫해에 모인 부재중 통화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곳에 내 목소리가 놓아지면 좋겠다’라는 장소가 나타날 때마다 잠시 멈춰서 그곳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아주었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모인 부재중 통화들이 하나씩 바람 속으로 흩어져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세상의 끝에 잘 놓아주는 의식을 치렀다. 이후 모인 부재중 통화들은 사하라 사막에 흩어질 예정이라고. 비록 전시는 끝이 났지만, 전화번호 1522-2290에 전화를 걸면 언제든지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도착하는 한, 계속해서 이 번호를 열어둘 예정이라고 전한다. 만약 당신이 어디에도 할 수 없었던 말들로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면, 세상의 누군가는 들어주었으면 하는 말이 어딘가에 가 닿기를 바란다면, 이 번호로 걸어보시길 바란다. 나 역시 다이어리 한 쪽에 이 번호를 새겨둘 예정이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나요?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전시 과정과 작업물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긴 특별한 작품이다. 오로지 혼자가 되어 수화기를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또 다른 수화기를 든 사람들에게 가 닿고, 또 세상 끝에서 자유롭게 흩뿌려지는 퍼포먼스를 기획한 작가의 예술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도 이내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 앞에서 한참동안 먹먹해지는 것은 결국 나의 이웃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내 이야기이기도 한, 너무도 공감이 가는 진실된 목소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퍼포먼스가, 소외된 소통을 연결해주는 따뜻한 시도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목소리가 그곳에 담겨지길 바란다. 어딘가에는 말할 곳이 있다는 생각이 홀로 바스러져가는 사람들을 일으켜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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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무레 요코 지음, 이현욱 옮김 / 경향BP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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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예고 없이 중년이 되고 말았지만, 이 역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니까!

중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는 것들!

 

 

 

  내 나이가 벌써 서른아홉이라니. 마흔을 직전에 앞두고 있으려니 새삼 세월의 속도감이라는 것이 이렇게 빠른 것이었나 실감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40대라 하면 나이가 지긋하게 든 중년의 아주머니를 떠올리곤 했는데, 나는 여전히 캡을 쓰고 조거 팬츠에 후드티를 입고 외출하는 캐주얼함이 좋은 걸 보면 마냥 나이만 훌쩍 든 것 같다. 다만, 이제는 20대가 어울릴 만한 색감이나 액세서리보다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컬러감이나 모던한 디자인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게다가 건강했던 남편이 느닷없이 응급실에 가게 되고, 나 역시 방광염을 얻어 몇 주째 고생하고 있는 지금, 마음보다 몸이 먼저 나이에 반응하게 되는 경험들이 세월을 무시할 수 없구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나이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지금의 나이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는 우리에게 『카모메 식당』으로 잘 알려진 무레 요코의 신작에세이다. 어느 날 문득 중년이 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지금의 나이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오늘의 일상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소소하지만 유쾌하고, 엉뚱하지만 불편한 시선들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한 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눈썹 정리는 정말 어렵다. 어떻게 하면 자기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눈썹을 가질 수 있을까? 수십 년이 지나도 눈썹 정리 기술이 늘지 않는 나에게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 15p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예쁜 옷에 화장도 예쁘게 하고 맛있는 요리까지 뚝딱뚝딱 해내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의 나이쯤엔 모든 게 능숙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들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백종원 레시피를 매번 들여다봐야하고 눈썹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해서 화장끼 없는 얼굴로 외출하기 일쑤다. 얼마 전엔 가스레인지 화구를 착각해서 손등을 태워먹고(?), 세탁기 세제 투입구에 세제를 반대로 넣는 실수를 아직까지 하고 있다. 무레 요코 역시 이렇게 말한다. 50대 중반이 지났는데도 덜렁거리는 성격은 전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펌프식 핸드워시에 손가락이 끼기도 하고, 여전히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눈썹을 찾지 못했을뿐더러,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워 매번 곤란을 겪는다. 나이가 들어도 능숙해지지 않는 것은 변함없고, 헤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이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된다.

 

 

 

중년이 되면 누구나 몸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사전에서 ‘중년’을 찾아보니 ‘40대에서 50대 후반까지’라고 되어 있는데 내 연령은 현재 중년의 우두머리로 2년 정도 지나면 ‘노년’의 가장 막내가 될 것이다.

(…) 아무래도 막 중년이 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몸의 모든 부분이 한 단계 더 상태가 나빠진 것 같다. 조금 더 몸을 신경 써서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중년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무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겼다. / 101p

 

 

“지금은 휴대전화에서 주소록을 관리하는 사람이 많아서 수첩에 쓸 필요가 없어.”

그 지인도 일정이나 주소록 관리는 전부 휴대전화로 한다고 했다. 알람이나 건강관리 기능도 추가되면서 휴대전화가 굉장히 영리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출해서 급하게 연락해야 할 때는 수첩과 주소록이 필요하다. / 162p

 

 

 




 

 

 

 

  나이가 들었을 때에야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다. 요즘 우리 식의 표현에 따르면 ‘꼰대’, ‘오지랖’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배려 없는 이기주의와 편리함만 쫓는 세태에 대한 씁쓸한 시선은 여러모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이를 테면, 자연스럽게 진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아이의 안전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혼자 두는 엄마들, 문제가 생겨도 사과만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한 시선을 거둘 수 없다. 그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동년배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 중 가시 없는 생선을 먹은 에피소드가 유독 인상에 남는다. 그녀는 가시 없는 생선을 먹으며 최근 집에서 생선을 먹는 사람이 줄었다는 뉴스를 떠올린다. 비린내가 나고 가시를 발라 먹는 것이 귀찮아서, 아이들이 먹지 않기 때문에 식탁에 올릴 기회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혹여 아이 목에 가시가 걸릴까 생선을 먹이는 데 소극적인 것도 이유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이 목에 가시라도 걸릴까 하나하나 발라주다가 그마저도 수고로워서 가시 없는 생선을 구매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역시 가시 없는 생선은 어쩐지 맛이 떨어지는 듯해서 아직도 냉동실에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이에 무레 요코는 목에 가시가 걸려서 당황한 적도 있지만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선 먹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시를 제거하는 것이 귀찮다고 가시 없는 생선만 먹다 보면 생선 먹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집에서 식사 시간을 통해 부모에게 배우는 것도 적을 것이라고 말이다. 수고를 덜고 리스크를 피하는 게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듯, 부모의 역할도 자녀의 리스크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젊은 사람이 얼마만큼 얼굴이 작아지는지 검증해 본 사진도 본 적이 있는데, 몸은 보통인데 머리만 성냥 머리만큼 작아진 걸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는 지우거나 미화해서 이리저리 가공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한때 있는 그대로 어쩌고저쩌고하는 노래가 유행한 적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175p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나처럼 종이를 귀중품으로 생각하면서 자랐을까? 종이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애착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까? 나처럼 과자 포장지 같은 아주 작은 종이를 모으거나 뒷면이 하얀 종이를 모아서 계산용지로 사용한 경험이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235p

 

 

주인 혼자 운영하던 가게에 장을 보러 갔을 때 부재중이라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5분 정도 후에 주인이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근처에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채소를 배달하러 갔다 왔다고 미안해했다. 대량 판매도 기대하기 어렵고 주인 혼자서 일하는 것도 힘들 텐데 기다리게 했다고 귤을 2개 더 넣어 주기도 했다. 이런 다정한 주인이 하는 가게가 없어진 것은 아주 속상한 일이다. / 238p

 

 

 



 

 

 

 

  스포츠 방송을 보며 절정의 순간이 주는 두근거림이 여전히 좋은 나이, 무리라 하더라도 걸그룹 노래에 맞춰 춤춰보고 싶은 나이, 더 이상 흰머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워지기를 택할 수 있는 나이, 비록 예고 없이 중년이 되고 말았지만 이 역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다. 무레 요코의 글을 읽고 있으면 중년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나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좀 더 멋진 사람이기를. 그런 바람으로 나의 중년을 맞이하리라 다짐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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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 유연하고 충실하게, 이소은이 사는 법
이소은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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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와 유명세를 뒤로 하고 자신의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이소은의 아름다운 여정!

Get it done.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힘찬 응원이 필요할 때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표지에서 이소은을 발견한 순간 엇, 하고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작별>, <서방님>, <키친> <기적> 등 청아하고 앳된, 독보적인 음색을 지닌 이 가수와 대표곡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봤던 한 TV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녀가 로스쿨에 합격해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들은 바 있다. 당시 자신의 인기와 유명세를 뒤로 하고 느닷없이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상당히 뜻밖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인기와 유명세를 뒤로 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향한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에 참 멋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녀가 쓴 책을 손에 쥔 나는 또 한 번 궁금해졌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 위에서 진실했지만 음악 이외의 세상이 궁금했던 소녀가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 마주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지금은 또 어떠한 세상을 꿈꾸며 나아가고 있을지 나 역시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가수에서 로펌 변호사 그리고 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중재 전문가로 활동하며 뉴욕 지부 부의장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하고 프로페셔널로 성장하고자 했던 이소은의 분투기를 담은 에세이다. 그녀는 지난 10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술회한다. “나 자신답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살았고, 그 안에는 매우 복합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았다. 자라온 환경과 지난 시간의 결과물로 형성된 ‘나’는 뉴욕에서 이방인이었고, 아시안 여성이라는 그 사회 속 소수인종이 되었고, 더 이상 아티스트가 아니라 변호사로 살았다. 직업, 환경, 나라, 언어, 문화, 모든 것이 달라진 혼돈 속에서 진실한 나다움의 정체성이 더욱 모호해졌다.”

 

 

 

  가수 활동 이외에는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미국 문화 뿐 아니라 아티스트가 아닌 직장인으로서의 생활 패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한국에서 누렸던 것들을 내려놓고 익명이 주는 자유와 허전함을 동시에 느끼며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욕심, 편견, 고집과 집착은 고유한 나로 사는 것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비워내는 노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다움’이란 시간과 환경에 의해 바뀌는 것이며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한 정의를 매일 새로 쓸 수 있는 용기가 인생에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두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새로운 미래를 디자인해보려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이렇게 주문을 외듯 말했다고 한다.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 내가 서 있는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변화를 유연하게 맞이하려는 열린 마음을 위한 주문,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 지금의 내게도 꼭 새겨두고 싶은 말이다.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변호사라고 해서 일부러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를 풍기려고 할 이유도, 센 언니일 이유도, 모노톤의 의상을 입어야 할 이유도 없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직업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에 나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옷을 입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최대의 결과물이 나온다.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강렬한 힘이다. / 23p

 

 

하는 일의 성패와 관계없이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것, 자신의 노력과 작은 성과를 인정해주는 것,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이러한 작은 습관부터 기르는 것이다. 결국 나를 돌보는 셀프케어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에서 나온다. 너무 쉽게 나를 등한시했던 지난날과 화해하고 이제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기를, 평온한 날들에도 나를 아낄 수 있기를, 여유가 생기면 불안 없이 충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 32p

 

 

 



 

 

 

 

  “박스 안에 네가 예전에 썼던 글들 다 담겨 있는데 집에 가져갈래?” 친정에 갔다가 집으로 나서려는데 엄마가 구석에 쌓아놓은 박스 한 상자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박스를 열어보려고 다가가다 나는 이내 돌아섰다. 중학생 때부터 썼던 글을 빠짐없이 모아둔 것이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열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아니, 보기가 두려웠다. 소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오히려 형식과 내용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그때는 글을 쓰는 게 참 재미있었는데. 그때처럼 글을 쓸 수 없는 지금은 완성은커녕 시작조차 두려워서 아예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말 나는 이대로 다시는 소설을 써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런데 이런 내 마음 속에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말이 쿵, 하고 와 박힌다. “Done is better than good.” 무언가를 완성해내는 것이 잘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무언가를 시작하고 완성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어릴 때는 별 생각 없이 하던 도전도 나이가 들면서 심사숙고 끝에 포기하는 일이 잦아진다. 생각만 하다가 결과를 보장할 수 없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도 흔해졌다. 이소은 그녀 역시 ‘Good’인지 고민하다가 ‘Done’을 놓치곤 한다고. 그럴 때마다 “뭐라도 끝까지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거야”라던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금 자신을 일으켜본다고 한다. “소은아, 너 뒤처지지 않았어. 그리고 뒤처졌다 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그냥 해. Get it done.” 전보다 잃을 것이 많아져서, 완벽해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늘도 망설이기만 하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너무도 필요한 말이 아닐까.

 

 

 

지금껏 살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고착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이미 변화하고 있는 나를 리셋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달리고 있던 건 아닐까?

(…) 자신을 ‘이러이러한 사람’의 틀에 가둬버리는 것은 성장을 방해하고 오류를 범할 위험성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편견도 그 바탕에는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저들은 이런 스타일의 인간이야’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 126p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내기’는 내 인생에서 지속된 화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 계속 머물렀다면, 하던 음악을 계속했다면, 한 회사에서 한결같이 일했다면, 직업을 하나로 이어갔다면… 이렇듯 수많은 ‘If(만일 내가 이랬다면)’를 나열하며 고민하고 흔들리는 날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괜히 인생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사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존재에 대한 묘한 혼란스러움이 있기에 안주하지 않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나만의 독특한 삶을 디자인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 141p

 

 

 

  그녀의 시간 속에는 늘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었던 엄마에게서 배운 삶의 가르침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과 시간 속에서 숱한 시련을 이겨내며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답답한 조직 생활 속에서도 끝끝내 일이 되게 하자는 목표를 잃지 않았던 순간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 중 소수인종의 동양 여자아이로 정체성 혼란과 콤플렉스가 생길 수 있는 예민한 시기에 들려주신 선생님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다른 애들이 하는 말에 콧방귀도 뀌지 말아라. 네가 무엇을 하든, 어떤 목표를 갖든 아무도 네게 영향을 주게 하지 말아라. 네가 무엇을 하든 그들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그 어떤 누구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해주신 분이 있었기에 그녀는 항상 꿈꿀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언젠가 내 아이에게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 나는 이 말을 꼭 기억했다가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그녀는 자신의 슬로건을 이렇게 내세운다. “자리를 차지하고, 목소리를 내!” 여성, 소수인종, 사회적인 약자 할 것 없이 언젠가는 당연하게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면서, 그때까지 내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크게 목소리 내는 연습을 계속하려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성의 경제권이 1980년대 위치로 뒷걸음질했다는 우울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이자 소수인종으로서 유리 천장을 부수려는 그녀의 행보가 우리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나다움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위치를 깨부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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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랑의 이유를 너에게서 찾지 마라
강석빈 지음 / 부크럼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은 사랑의 고통에 아파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사랑하고 살아갈 나를 위해 필요한 책!

 

 

 

  이 책은 누적 조회수 1,800만에 이르는 연애 유튜브 채널 ‘석구리TV’와 연애 전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강석빈의 에세이다. 연애 전문 컨설팅만 1,000회 이상을 기록한 저자답게, 오늘도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사랑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받으면서 한결같이 꼭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조금 더 본인 삶에 집중해 보세요.”

 

 

 

  그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독자들은 대단한 비책이라도 기대하고 사연을 보냈겠지만 그가 바라보는 아픔의 본질이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를 만나 어떤 사랑을 하건 늘 나의 삶에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아픔으로부터 나의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자신을 잃은 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이유도 상대를 위해서도 부모를 위해서도 아닌, 오롯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함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를 잃지 않으면서, 우리가 지금껏 겪어 왔던 혹은 앞으로 겪어 가야 할 수많은 사랑의 시행착오를 미리 막고, 아픈 사랑에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행복한 연애를 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다. 사랑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에서부터 사랑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안정적인 만남을 위한 관계의 기술까지, 사랑을 통해 보다 성숙한 ‘나’로 나아갈 수 있는 혜안을 제시한다.

 

 

 

다시 일어나 사랑하고 살아갈 당신에게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귓전에 종소리가 울린다던데 정말 그래?” 이따금 결혼을 고민하는 동생들이 이렇게 묻곤 한다. 세상에, 귓전에 종소리가 울린다니. 아직도 이런 고전적인 멘트를 믿는 사람이 있구나, 싶지만 결혼 상대만큼은 뭔가 특별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지금은 나에게 한없이 잘해주지만 결혼 후에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결혼 전에는 미처 몰랐던 상대의 흠을 결혼 후에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 때문에 연애만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럴 때 나는 나를 대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그의 친한 친구나 부모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잘 지켜보라고 말한다. 굳이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을 지켜보면, 지금의 설렘이 지나간 뒤라 할지라도 나를 어떻게 대할지 대략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독심술사가 아니고서야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없고, 상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상대에 대한 힌트는 바로 ‘언어’에 있다고 말이다. 그 사람이 평소 연인 외에 다른 이들에게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지에 집중해보기를 조언한다. 그가 굳이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이를 테면 그의 친구나 후배, 가족 또는 식사하려고 잠시 들른 식당의 종업원에게 그가 어떤 태도와 언어로 말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의 온도는 내려가고 관계는 긴장의 허리띠를 풀어 간다. ‘좋은 사람의 정의란 언제나 나에게 변함없이 잘 해주는 사람이 아닌, 언젠가 지금의 설렘이 지나가도 나에게 항상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라는 말을 잊지 말자. 그 사람이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자 진국 같은 사람이라는 것 또한.

 

 

 

매력을 다른 말로 쓰면 자신감이란 뜻이 된다. 또 자신감이란 현재의 내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아우라 같은 것이다. 고로 지금 누군가에게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다면 당장 그 사람의 눈치를 살필 게 아니라 최대한 지금의 나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 20p

 

 

진짜 연애할 시기를 결정짓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이다. 단지 외롭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옆에 두지 않으며, 위로를 받지 않아도 크게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 / 26p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당신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

헷갈려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마음의 확신이 있다면 사랑이란

결코 서로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 50p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가끔은 혼자 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연인들이 새겨둘 만한 점인 것 같다. 연인이나 부부라고 해서 모든 시간을 늘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옆에 없는 온전한 나 혼자만의 시간이 진짜 내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상대방에게 내가 항상 1순위이기를 바라며, 잠시 1순위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말자. 조금 힘을 푼다고 끝나게 될 사랑이었다면 어차피 오래 못 가 막을 내리게 될 얕은 관계라는 저자의 조언을 새겨두자.

 

 

 

기념일은 그저 기념일일 뿐, 그것이 지금의 사랑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궁금하다면 돌아오는 기념일을 기다리지 말고, 평소 나에게 어떤 태도로 어떤 말을 하는지에 집중해 보시기 바란다.

당신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 깊이 있는 관계가 되고 싶다면 기념일에 잘해 주겠다는 생각으로 에너지를 아끼지 마라.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 / 106p

 

 

충분한 회복기 이후, 이별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새 사랑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 어쩌면 그때는 실수 없이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혼자가 힘들다는 이유로 성급히 누군가를 곁에 두지 마라. 전 연애로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공백기를 두고 시작해라.

사랑은 결코 또 다른 사랑으로 잊히지 않는다. 나아지기는커녕 채 아물지도 못한 상처가 맞물려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부축 없이 스스로 일어섰을 때, 당신은 비로소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 / 200p

 

 

 




 

 

 

 

  충분한 공백기를 둔 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 지금 사람에게서 전 애인의 모습을 찾지 말 것, 나를 챙기면서도 나만을 챙기지 않고 남을 챙기면서도 너무 많은 이들을 짊어지려고 하지 않는 ‘우리 중심적 태도’를 지닐 것, 계획이 떠오르지 않을 때 계획을 만들어 내는 최고의 방법은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것이다 등 책에는 안정적인 만남과 성숙한 연애를 위해 우리가 알아두면 좋을 여러 조언들이 새겨져 있다. 다 잘 될 거라는 어설프고 막연한 희망보다 냉정하게 나와 주변을 바라보고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현실적인 조언들이라 더 공감가고 위로가 된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여전히 잃어버린 사랑의 고통에 아파하고 있다면, 다시 일어나 사랑하고 살아갈 나를 위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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