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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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

뇌과학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방법론을 제시한 참신한 책!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가 “엄마, OO이랑 OO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섬에 도착했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섬을 탐험하고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방법을 겨우 구했는데, 그곳에서 살고 있던 괴물이 깨어나 잡아 먹혔다는 뭐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이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 벌써 이야기라는 구조가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뛰어나거나 완벽한 것과는 별개로 저마다 이야기를 짓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자이자 소설가인 윌 스토 역시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도록 태어났다고 한다. 인간은 본래 이야기와 감정을 즐기도록 타고난 존재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에는 잠재적인 드라마가 장전되어 있으며 삶을 구축하는 다양한 방식을 본떠서 이야기를 창작하려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야기 창작 이론가들이 서사에 관해 설명하는 몇 가지 개념이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우리의 뇌와 마음에 관해 연구한 내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뇌과학 기반의 스토리텔링에 관해 연구해 온 그는 자신의 책 『이야기의 탄생』을 통해 ‘뇌가 우리의 생각과 현실을 구축하고 왜곡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할 때, 좀 더 생생한 인물과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안나 카레니나』, 『남아 있는 나날』, 『대부』, 『라라랜드』 등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 문학과 영화, TV 드라마 작품들이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를 뇌과학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과학적 스토리텔링이라는 상당히 참신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야기의 탄생』은 우리의 뇌가 이야기에 반응하고 스토리텔링에 미치는 영향을 각기 다른 층위로 탐색한다. 1장에서는 작가와 우리의 뇌가 저마다의 생생한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는지 알아본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인간의 환경을 통제하도록 진화되어 왔는데, 많은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 시작된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야기 흐름에 예기치 못한 순간을 불어넣어서 주인공의 주의를 끌고, 나아가 독자나 관객의 관심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야기의 비밀을 밝히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변화의 의미를 알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반전’, 곧 극적 전환점이 극에서 가장 강력한 순간이라고 주장했고, 스토리 창작 이론가이자 드라마 협회 회장인 존 요크는 “모든 TV감독이 현실이나 허구에서 항상 찾는 이미지는 클로즈업한 인간의 얼굴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를 통해 정보에 대한 갈증을 자극하는 데에서도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시 말해, 주인공에게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나거나 정보의 격차가 벌어지는 사이 우리도 같은 상황에 처하고 우리의 집중력에 불이 켜진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뇌에서 모형을 생성하게 하여 책 속의 상황이 현실인 것처럼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나 인과관계의 논리가 모호한 지점을 통해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법도 소개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 S. 루이스는 1956년에 젊은 작가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어떤 것이 ‘끔찍하다’고 말하지 말고 독자가 끔찍하게 느끼도록 묘사하라. ‘기쁘다’고 말하지 말고 독자가 읽고 ‘기쁘다’고 말하게 만들어라.” ‘끔찍하다’나 ‘기쁘다’와 같은 형용사에 담긴 추상적 정보는 모형을 구축하는 뇌에는 묽은 귀리죽과 다르지 않다. 인물의 공포나 기쁨, 분노, 불안, 슬픔을 경험하려면 뇌에서 이런 감정 모형을 생성해야 한다. 뇌는 어떤 장면의 모형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책 속의 상황이 현실인 것처럼 경험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이야기의 장면이 독자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51p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축하는 신경계의 환각 모형은 작고 개별적인 모형으로 구성되고(공원 벤치, 공룡, 이스라엘, 아이스크림, 그리고 모든 것의 모형), 모형마다 저마다의 과거가 얽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대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함께 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 느낀다. 우리가 주목하는 모든 대상이 감각을 깨우고 대개의 감각은 의식 바로 밑에서 미묘하게 경험된다. / 65p

 

 

모든 작가는 어떤 독자를 타깃으로 정하든 간에 서사를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방치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는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보여줘야 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암시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식어버리고 독자나 관객을 지루해진다. 나아가 이들이 이야기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독자나 관객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유롭게 예상하고 방금 그 일이 왜 일어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 81p

 

 

 

 

 

 

   조지프 캠벨은 “한 인간을 진실로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의 결함을 기술하는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와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현실의 삶과 달리 이야기에서는 그 인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처럼 고도로 사회화되고 가축화된 존재에게는 타인의 인과관계, 곧 남들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아는 것만큼 매력적인 경험도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2장과 3장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의 스티븐스과 같이 결함이 있는 주인공들을 만나보고, 인물의 성격이 플롯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이어 ‘이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인물의 관점에서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극적 질문이 극에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주인공의 잠재의식으로 들어가 인간의 삶을 기괴하고 복잡하게 뒤틀고, 우리의 이야기를 강렬하고 예상할 수 없고 감상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개인의 투쟁과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즐기는 데 반해 동양인들은 화합을 추구하는 서사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동양과 서양의 서사 양식에는 두 문화에서 변화를 보는 각기 다른 관점이 반영된다. 서양인에게는 현실이 개체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위협적이고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발생할 때 서양인은 이런 개체와 부분을 싸워서 길들이려고 애쓰면서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반면, 동양인들에게 현실은 서로 연결된 힘의 장이므로 위협적이고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날 때 동양인은 요동치는 힘을 다시 조화롭게 다스려서 모든 힘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내는 식으로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 114p

 

 

우리가 인간 환경에서 보는 현실은 과거의 산물이자 자기만의 고유한 상처의 산물일 때가 많다. 우리는 뇌에서 무시하는 대상은 보지 못한다. 뇌가 우리 주위의 고통스러운 장면만 보도록 눈에 명령한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것만 보일 것이다. 또 뇌에서 실제로는 무해한 사건에 대해 폭력과 위협과 편견의 인과관계를 지어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런 것만 경험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는 환각의 현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경험하는 현실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누구나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며 그 세계가 친근한지 적대적인지는 주로 어린 시절의 경험에 달려 있다. / 226p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이야기의 힘과 의미를 들여다보고 강렬한 플롯과 결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펴본다. 흥미롭게도 책을 읽다보면 나의 신경 모형이 어떤데 취약한지, 그리하여 어떤 이야기와 인물에 끌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또 뇌가 어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어떤 플롯에 안정감을 느끼고, 작가라면 어떻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다.

 

 

 

실제로 이야기에 빠져든 순간에 뇌를 스캔하면 자아 감각과 연관된 영역이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야기가 우리를 아찔한 통제력의 롤러코스터에 태우면 우리 몸도 그에 따라 반응하면서 이야기 속 사건을 체험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관이 팽창하고 코르티솔과 옥시토신 같은 신경 화학물질의 활성화 수준이 변하면서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 빠져들어 내릴 역을 놓치거나 잠도 못 이룰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도취’라고 말한다. / 259p

 

 

잘못된 신념이 그 인물의 현실에 대한 신경 모형을 형성한다. 인물은 그 너머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이런 잘못된 신념은 인물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데 일조한다. 플롯의 핵심은 인물의 신념을 검증하고 깨뜨리는 데 있다. 이것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 276p

 

 

 

 

 

 

   이처럼 『이야기의 탄생』은 뇌과학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독특한 시도로, 창작가들에게는 좋은 자극제이자 지침서가 될 만하다. 아울러 책이나 영화 등 각종 창작물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인물과 플롯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혹 뇌과학이라는 소재만 보고 이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 짐작하는 이들에게는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으니 일독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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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 법정 스님 법문집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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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10주기, 여전히 우리 시대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법정 스님의 말씀!

끊임없이 밀려드는 번민에 중심 잡기 힘든 요즘, 따뜻하고 진실한 메시지에 귀 기울여보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직전에 남편이 상갓집에 다녀와야 한다고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왔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인데 나 역시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 부고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인지 부러 캐묻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심 짐작되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보내온 메시지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안타까운 사인이 적혀 있었다. 모진 사람, 목숨을 끊을 용기가 있었으면 더 잘 살아볼 용기를 내어보라 할 것을 타박하고 싶기도 하나 이번 생에 미련이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 있었다면 그 선택에 뭐라 더 할 말이 있을 수 있을까. 그저 다독여주고 붙잡아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

 

 

 

   세상은 이토록 시끄러운데 우리는 왜 자기 마음 하나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외로워하는 것일까. 너도 나도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앞다투는 세상인데 정작 내면은 나약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일까. 차고 넘치는 이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같이 힘든 세상일 텐데 남이 사는 이야기는 다 재미있어 보이고 내가 사는 이야기는 참 재미없어 보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 수많은 질문 앞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을 올바르게 이끌고 세상을 치유할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임을 또한 안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법당입니다

 

 

   『좋은 말씀』은 법정 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아 각종 법회와 대중 강연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었던 메시지들을 담은 법문집이다. 법정 스님이 타계하신 당시, 서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생전에 ‘법정 스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는 고인의 유언으로 인해 이제 몇 안남은 『무소유』를 구했노라며 자랑스레 부모님께 갖다드린 기억이 있다. 정작 그 책에 무슨 말씀이 쓰여 있는지는 모르고, 그저 ‘법정’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새겨진 마지막 책을 소장해야 한다는 데에만 달아올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토록 진득하게 스님의 책을 마주하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야만 마음이 충만해지던 혈기왕성한 시절이 아니라, 삶에 관한 갖가지 질문들로 번민이 차오르는 바로 지금에서 스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스님의 말씀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혼탁한 위기의 시대일수록 우리가 반드시 구하고 찾아야만 하는 가르침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밝음의 배후는 어둠입니다. 어둠은 밝음의 뒷모습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둠과 밝음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고 서로 받쳐 주는 작용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둠만을 보려 하거나 밝음만을 보려고 합니다. 생과 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체와 전체의 상관관계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삶은 죽음의 표면이고, 죽음은 삶의 이면입니다. 중생이 있기에 부처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은 바다 저 멀리에 홀로 떨어져 있는 섬과 같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나무의 가지들처럼 서로 떨어져 있지만 뿌리에서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광대한 대지의 한 부분들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균형적인 리듬이고, 음양의 조화입니다. / 13p

 

 

우리가 입은 은혜는 반드시 되돌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손들이 다시 그 은혜를 입으며 삶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대대로 자기들이 입은 은혜들을 되돌렸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현상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회향’이라고 합니다. 내가 받을 공덕이 혹시 있다면 그것을 모두 이웃에게 되돌린다는 의미입니다. / 19p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과 집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매일 휴대폰을 손에 쥐고 SNS를 반복해서 들어가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소유하지 못한 것들, 타인이 누리고 있는 시간들에 유독 마음이 허해질 때가 많다. 하지 않으려 해도 습관처럼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게 된다. 때문에 ‘각자는 자기 분수와 자기 틀, 자기 자리에 맞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정곡을 찌른다. 우리 삶에 어떤 표준이 있는 게 아니듯 저마다 자기 얼굴을 지닐 수 있으면 된 거라고. 자기다운 삶, 자기다운 생활 규범을 지니고 마음의 안정을 이루어 즐겁게 산다면, 스스로 자기의 얼굴, 얼의 꼴을 이루게 마련이라고. 자기답게 살지 못해서, 생활 규범이 없어서, 마음의 안정을 이루지 못한 채 늘 흐트러지기 때문에 자기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지혜를 일깨우지 못하고 늘 허둥지둥 사는 거라는 말씀은 지금의 내가 새겨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듯하다. 덕분에 오늘의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내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고 있는지, 또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되돌아본다. 이래야 하는데, 저래야 하는데……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조급함에 오늘도 허둥대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상처를 받지는 않았는지 혹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도.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려면 첫째, 맑은 생활 습관을 익혀야 됩니다. 불자들에게는 공통적인 생활 규범이 있어요. 그것이 다서 가지 계, 오계예요. 산목숨을 죽이지 않겠다는 것, 주지 않는 남의 것을 훔치지 않겠다는 것, 자기 가정을 이탈해서 한눈 팔지 않겠다는 것, 진실한 말만 하겠다는 것,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을 가지겠다는 것,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한 다섯 가지 생활 규범입니다. 살도음망주, 다섯 가지 계율이에요. 원래 계라는 것은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무엇 하겠다는 다짐이에요. 내가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다만 율은 규정입니다. 그래서 계와 율을 합해서 계율이라고 해요. 하나의 생활 습관이에요. / 35p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세 가지를 평소에 몸에 갖추어야 돼요. 이 막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나름의 청정한 생활 규범과 질서를 가져야 돼요. 이게 계행의 옷이에요. 또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제정신 똑바로 차리는 선정의 옷과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지혜의 옷을 입어야 됩니다. 계행과 선정과 지혜를 평소에 몸에 익힌다면, 어떤 옷을 입더라도 거리낌이 없어요. / 95p

 

노년에 이르면 삶의 종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죽음에 대비해야 합니다. 대비한다는 것은 곧 배우는 일입니다. 젊어서 삶을 배우듯 우리는 죽음도 배워야 돼요. 친지나 이웃의 죽음을 보면서 내게도 다가올 그날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에는 노소가 없습니다. 왜 그 많은 젊은이들이 죽을까요? 죽음에는 노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내 차례가 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젊건 늙었건 죽음에 대비해야 됩니다. / 101p

 

 

 

 

 

 

   법정 스님 하면 ‘무소유’의 정신이 떠오르듯 법문집에도 역시 ‘청빈’ 즉 ‘맑은 가난’을 거듭 강조한 대목이 눈에 띤다.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은 인도의 위대한 시인 까르비가 노래한 대목을 하나 실어 놓았다. “너는 왔다가 가는 한 사람의 나그네. 재산을 모으고 부를 사랑하지만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너는 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때는 손바닥을 펴고 간다.”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올지 몰라도 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어날 때 어머니의 몸을 버리고 나왔듯, 또 죽을 때는 이 몸을 버리고 간다. 버리는 데서 시작해서 버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인생이란 뜻이다. 그러니 아등바등 움켜쥐려고, 타인이 가진 것을 가져보겠다고 애쓰지 말자. 결국엔 다 내 것이 아닌 법인데, 미련을 가져서 무얼 하나.

 

 

 

업이란 그런 겁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당장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업으로 쌓여서 나의 삶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 146p

 

 

흙과 나무와 풀과 새와 짐승을 가까이하십시오. 또 구름과 별과 달과 바람과 이슬을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자연스러움을 함께 일깨울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돌아가 의지할 곳이 어디인지 가끔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173p

 

 

 

 

 

 

   끝으로 “법당은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집에도 법당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법당입니다.” 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려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부처를 모시고 있다. 내 마음을 법당삼아 항상 청결하고 정결한 마음을 유지하려 할 때 부처는 그 안에 들어와 머무를 것이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그 안에 깃드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 또한 내 안에 있는 법이다. 그 말씀을, 그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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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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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신화를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준 책!

신화를 지식의 수단이 아니라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알게 해 준 아름다운 책!

 

 

 

   책을 읽다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내용을 자주 만나곤 한다. 그래서 관련 도서를 찾아 읽어보자 마음을 먹어보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제우스, 헤라, 에로스, 아르테미스… 대신과 버금 신 그리고 딸림 신에 이르기까지, 이 수많은 신들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거기에 얽힌 신화 속 이야기는 또 어찌나 복잡한지. 언젠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부터 제우스의 아이들까지 쭉 관계도를 그리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내팽개친 적도 있었으니, 역시 신화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내 마음속으로는 얄팍하게 압축한 내용이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공들여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정독하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나보다. 출간 20주년이자 저자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특별 합본판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건 꼭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표지에 220여 점에 이르는 도판 자료, 무려 1200쪽에 이르며 소장가치까지 있어 보이는 양장본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일단 흠뻑 빠져버렸다.

 

 

 

신화라는 미궁 속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들어갈 수는 있어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는 없는 ‘미궁(미로)’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그리스의 섬나라 크레타 왕 미노스가 미궁을 만들라고 명령한 것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서였다. 아테나이의 왕자 영웅 테세우스는 자기 나라 선남선녀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희생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스스로 미궁에 들어가기를 자처했다. 하지만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한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이를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어 실타래 하나를 건네주었다. 과연 테세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 입구에서부터 풀어두었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길잡이삼아 결국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 이윤기는 왜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았을까? 그는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고 말한다. 즉, 놀랍도록 방대한, 미궁과 다름없는 신화라는 이 복잡하고 넓디넓은 세계관에 다가가보고자 애쓰는 사람에겐 분명 그 전과는 다른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신화를 읽는 동안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즉 저마다의 ‘상상력’과 ‘지혜’를 길잡이삼아 볼 것을 독려한다. 그렇게 나름대로 신화라는 미궁을 진입하고 탈출하는 시도를 해보면서 신화 너머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움켜쥘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1권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에서는 ‘자아’를 상징하는 신발 이야기에 얽힌 신화를 비롯해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 사이에 태어난 티탄 신으로부터 제우스와 헤라로 상징되는 올륌프스 신들로 세대교체가 되는 과정을 쭉 살펴본다. 이어 사랑이라는 감정의 두 얼굴을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보고, 제 젊음과 힘만 믿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파에톤의 이야기도 살펴본다. 나무로 몸을 바꾼 다프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게 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죽음과 예언 그리고 저승과 의술을 상징하는 뱀과 관련된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또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저승의 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천하제일의 명가수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망각의 강 레테를 통해서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엿보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 ‘먼저 아는 자’를 뜻하는 프로메테우스가 오늘날 ‘프롤로그’로 남겨진 것이나, ‘나중에 아는 자’라는 뜻을 지닌 에피메테우스가 ‘에필로그’로 쓰이는 등 신화 속 요소들이 오늘날까지 갖가지 언어적 유산을 남기고 점이 흥미롭다. 또한 자식을 놓는 족족 삼켜버리는 크로노스를 통해 ‘세월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잔혹한 자연의 진리’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상징점들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의미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왜 신화를 읽어야만 하는지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되기도 한다.

 

 

 

육체적인 사랑의 접촉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아프로디테가 있다. 더러 ‘음란한 아프로디테’라고도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프로디테가 고무하고 격려하는 사랑이 반드시 도덕적인 사랑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프로디테의 ‘음란함’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음란함은 아니다. 태초의 인류를 생각해보라. 근친상간, 즉 가까운 친척 간의 비윤리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인간이 멸종하지 않고 짐승과 수적인 경쟁을 벌일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음란한 아프로디테가 허리에 매고 있는, 어떤 남성이든 유혹할 수 있는 마법의 띠 ‘케스토스 히마스’는 음란함의 상징이 아니라 자식의 생산을 촉발하는 번식력의 상징일 수도 있는 것이다. / 96p

 

 

 

 

 

 

 

   이어 2권 ‘사랑을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에서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다니던 신 헤르메스가 ‘잃어버린 반쪽이’를 찾아다니다 그만 엉뚱한 반쪽이(암염소)와 사랑을 나누어 인간도 짐승도 아닌 기괴한 존재인 판(패닉)을 세상에 내놓은 이야기, 부적절한 욕정의 노예가 된 파시파에가 불러일으킨 희비극으로 하여금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의 원형을 보여준다. 또한 처제에게 음욕을 품다가 자식의 무덤을 파게 된 테레우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답은 풀었을지언정 정작 그 수수께끼가 자신의 참 모습을 돌아보라는 뜻인 줄은 몰랐던 오만하고 어리석은 오이디푸스를 통해 신화가 전하는 경계의 메시지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이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퓌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에서는 비극으로 승화한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는 반면, 포모나(과실)와 그녀에 끊임없이 구애했던 베르툼누스(계절의 변화)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모든 결실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그 때를 만나거든 아낌없이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선사하기도 한다.

 

 

 

삶의 참모습을 두고 그것을 ‘삶의 진실’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 ‘내가 그리는 삶의 참모습’은 바로 ‘내 삶의 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아름답다는데, 삶의 진실은 어떤가? 아름다운가?

그것은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실은 우리 손가락을 씀벅 베어버리는 칼날 같다. 진실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육안으로는 진실을 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대 신화는 꾸준하게 우리를 가르친다. / 349p

 

 

 

   신을 향한 퓌그말리온의 믿음이 돌을 사람으로 변하게 사랑을 이루었다면, 바토스는 사례금 때문에 거짓말을 하다가 헤르메스에 의해 돌이 된다. 마찬가지로 신들을 가볍게 여긴 죄로 니오베는 14명의 자식을 모두 잃고 자신도 돌이 된다. 신의 은총을 입어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 창’을 선물로 받은 케팔로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미움을 산 끝에, 그 창으로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찌르고 만다. 디오뉘소스로부터 ‘자기 손으로 만지는 것은 모조리 황금으로 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성취하게 된 미다스는 애석하게도 먹을 것조차 모조리 황금으로 변하게 되니, 이내 이 소원을 거두고 파멸에서 구해 주십사 애원하게 된다.

 

 

 

   이렇듯 3권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 편에 이르면 신화란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결국엔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뚜렷해진다. 신들에 대한 믿음은 곧 그 신들을 창조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며, 신들에 대한 경건함은 곧 그 신들을 창조했을 인간에 대한 경건함이다. 이렇듯 신화가 여전히 지속되는 것은 우리가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퓌그말리온이 진실과 그가 기울인 정성을,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았을 때 나타난 효과를 믿기 때문일 것이라는 책의 가르침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신화를 꼼꼼히 읽는 일은 내 마음속에 자리한 그 신전을 찾는 일이다. 나는 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경건을 다하는 일, 마음을 여는 일이 바로 신들의 마음을 여는 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502p

 

 

 

 

 

 

 

   4권에 이르면 헤라클레스를 둘러싼 각종 비극과 영광의 순간들이 등장한다. 헤라클레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책 한 권 분량에 이를 정도로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있어서 이 인물이 지닌 남다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전지전능하고 위대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죄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줄 알고 그러면서 기꺼이 고난을 받아들여 숱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였기에, 어쩌면 그야말로 ‘신화는 신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엔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영웅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스토리가 그러하듯, 확실히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도저히 꺾을 수 없을 것 같은 괴수들을 물리치는 영웅담은 당연하고, 죽은 괴수들을 제우스가 하늘로 불러 올려 별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나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물리기 위해 헤라 여신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젖 줄기가 멀리 퍼져나가 ‘젖의 길(milky way)' 즉 은하수가 된 기원도 흥미롭다.

 

 

 

   베르사유 궁전에는 ‘헤라클레스의 방’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거대한 방의 천장화 <헤라클레스 예찬>에는 헤라클레스가 겪은 시련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네 모서리에는 ‘힘’, ‘인내’, ‘가치’, ‘정의’를 상징하는 그림이 배치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신화의 내용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르고 이 천장화를 바라본다면 무엇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하물며 신화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명화와 문학 작품 속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장대한 이야기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으로 마무리 된다. 죽음의 바다라 불리던 흑해의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해 북방의 나라 콜키스로 가 금양모피를 수습하고, 숙부에게 잃어버렸던 왕권을 되찾은 영웅 이아손의 이야기다. 이때 수금과 노래에 능한 오르페우스, 제우스 신의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영웅 중의 영웅 헤라클레스, 여걸 아탈란테 등 그리스 땅 곳곳에 당시 한다하는 영웅들이 함께 모여 금양모피를 수습하기 위해 떠난 모험담은 그리스 최고의 신화 중 하나로 손꼽힐 만하다. 마치 <반지의 제왕>의 반지 원정대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찍이 오비디우스가 “금양모피 역시, 손에 넣는 수고에 비기면 하찮은 것…….”이라고 꿰뚫어 말했듯이 이 화려한 모험담 뒤로 맞는 누추한 비극은, 비록 허무하지만 그 과정이 의미하는 바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저자 이윤기는 말한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지나고 우리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고.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까지. 긴 시간 동안 신화 읽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신화란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곧 나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를 지식이 아니라 나와 타인,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삼을 때 그 삶이 얼마나 따뜻할 것인지를 보여준 저자의 메시지가 오롯이 잘 느껴지는 귀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더 이상 그가 쓴 신화를 읽을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다만 이 책이 내내 나에게 남아 내 아이들이 이 귀중한 메시지를 함께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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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선으로 나는 새는 총에 맞기 딱 좋다 -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아남는 185가지 방법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민경수 옮김 / 가디언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17세기 철학자가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귀중한 금언들!

인간관계에서부터 인생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가장 명쾌하고도 현실적인 처세술!

 

 

 

   몇 해 전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조언』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17세기 스페인 철학자의 처세서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냉철한 조언들이 담겨져 있어 상당히 놀라워하며 읽은 기억이 난다. 이 후 여러 해가 흘러 이 책은 『일직선으로 나는 새는 총에 맞기 딱 좋다』는 제목으로 개정되어 출간되었다. 이전과 달리 바뀐 표지의 빨간색은 명쾌하고 냉철한 조언을 서슴지 않는 그의 철학을 상징하듯 강렬하다. 무엇보다 400년 전이나 몇 년 전이나, 다시 읽는 지금에 와서도 그의 조언들은 짤막하지만 군더더기 없고, 매우 현실적이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와 보편적인 진리를 잃지 않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각박하고 복잡다단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처세서임이 틀림없다.

 

 

 

 

 

 

인생의 심리전에서 지지 않는 법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17세기 철학 정신과 처세술이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싶은 독자들에게는 우선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란 철학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였다. 모름지기 철학자 겸 신부라면 ‘이상적인 삶의 길’을 가르치고자 노력하게 마련인데,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상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와 저술 활동으로 교단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7세기의 스페인은 현 우리 사회와 매우 흡사했다고 한다. 권력자가 특권을 누리고 온갖 부패가 만연했던 시대였고, 서민들은 고통에 허덕이며 삶을 연명했다. 각종 권모술수가 가득한 시대 속을 살았던 이 현자는 교회에 앉아 기도하거나 활동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군인 겸 성직자로서, 1949년의 스페인-프랑스 전쟁에 참전한 그는 카탈로니아의 전장을 종횡무진하며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로써 병사들은 그를 ‘승리의 신부’라 불렀는데, 보기 드물게 문무를 겸비한 현자로 알려짐으로써 그는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돌파해나갈 명쾌한 해답과 지혜를 전하고자 했다. 그가 철저히 현실적이고 날선 문장들을 쓴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적게 노력하고 많이 얻는 가장 쉬운 방법_

예의는 마법과도 같다. 마음을 다해 예를 갖추면 남들로부터 인정받는다.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상대의 대우가 훨씬 따뜻해진다.

한편, 예의는 하나의 의무이기도 하다. 특히 공적인 장소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그 자리의 분위기를 망치게 되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와 불쾌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렇듯 예의를 지켜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다행히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야말로 ‘적게 노력하고 많이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의를 지키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 19p

 

 

어리석은 사람은 갈채에 웃고, 현명한 사람은 비판에 기뻐한다_

플라톤은 자신의 제자 중에 유일하게 아리스토텔레스만 인정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제자인 동시에, 그의 가장 엄격한 비평가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단련하고 갈고닦게 하는 것은 ‘대중의 갈채’가 아니라 ‘현자의 따끔한 한마디’이다. / 22p

 

 

 

 

 

 

   책은 현명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 계발,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의 무기, 인생의 심리전에서 지지 않는 법, 행복을 거머쥐는 사람들의 필수품이란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다. 타인과의 관계 문제에서부터 대화법, 각종 인생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인간 개인의 본성과 욕망에 밀착하여 직언을 아끼지 않는 글들이 눈에 띤다. 이를 테면 ‘현실도피를 위해 운명이라는 이름을 빌리지 마라’, ‘무식한 고집쟁이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를 사나운 짐승의 우리에 던져 넣는 꼴이다’, ‘같은 값, 같은 품질일 때는 고객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 승부를 결정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배려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만도 못하다’ 등이다. ‘꽃길도 가시밭길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정도를 걷는 사람만이 신용을 얻는다’, ‘어려운 사람에게 부탁하려면 기분이 좋을 때를 노려라’, ‘지혜를 갖추고, 덕을 쌓고, 많은 경험을 하라’와 같이 융통성을 발휘하며 기본적으로는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를 전하고자 한 조언들도 새겨봄직하다.

 

 

 

일직선으로 나는 새는 총에 맞기 딱 좋다_

늘 똑같은 행동 패턴이지는 않은가? 가끔씩은 행동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언제나 단순한 행동만을 반복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를 지켜보는 적들이 단조로운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그 허점을 노릴 것이 뻔하니까.

일직선으로 나는 새는 쉽게 총에 맞지만, 곡선을 그리며 나는 새는 맞추기 어렵다. 악의적인 사람들은 세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이들을 피하기 위해 허구한 날 남의 눈을 속일 궁리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삶의 재치는 필요하다. / 28p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일직선으로 나는 새는 총에 맞기 딱 좋다’는 안정적이고 계획된 일상의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나에게 지적할 만한 좋은 조언인 듯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은 늘 마음속에 가득한데 정작 정해진 패턴과 예상된 결과 안에서 움직이려는 나의 성향이 어김없이 발목을 붙드는 것 같다. 하던 대로 하면 실패할 확률은 줄어드니까, 내가 잘 하는 것 안에서만 하면 이 역시 기본 이상의 성적은 거둘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 안주하고 단순한 행동만을 반복했던 나에게 일직선으로 나는 새는 쉽게 총에 맞는다는 조언만큼 적확한 말은 따로 없을 듯하다.

 

 

 

 

 

 

 

정직한 것과 고지식한 것은 다르다_

악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약삭빠르게 구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계의 동물들은 이 방법을 이미 터득했다.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주변 색에 맞춰 스스로의 몸을 위장하는 것은 예사다. 평소에는 그늘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다가, 먹잇감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불시에 공격하는 녀석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뱀 같은 교활함과 비둘기 같은 온화함이 동시에 필요하다. / 65p

 

 

스스로 낮춰 보는 잘못된 습관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해서 생긴다_

사람에게는 이렇듯 다른 이를 부러워하고 스스로를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늘 마음속이 요동치고 불행할 것이다. 잘못된 습관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해서 생긴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 순간 당신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 118

 

 

입으로만 신나게 외치는 정의만큼 비겁한 것은 없다_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은 스스로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대중에 영합하지도 않는다. 순간의 이익이나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하는 이야말로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다. / 87p 

 

 

 

   미국에서 연이어 백인 경찰이 흑인 남성을 과잉 진압하여 질식사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인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언론은 물론 유명인들까지 가세하여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는 가운데, 폭동으로 과열되다 못해 개인의 사유재산을 강탈하는 범죄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어 우려가 된다. 전국가적인 애도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냉정하면서 차분한 대처가 우선일 듯하지만, 민주주의 안에서 여전히 만연한 차별 문제가 어느덧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도 불가피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범죄로 과열되며 또 다른 역차별을 낳을 수도 있는 이 같은 사태를 과연 그들이 부르짖는 ‘정의’라 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다음과 같은 조언은 뼈를 때린다. ‘입으로만 신나게 외치는 정의만큼 비겁한 것은 없다’고.

 

 

 

당신의 의견에 이견이 없는 사람은 무조건 피하라_

나의 의견에 전혀 이견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피해라. 그런 사람은 오로지 신변의 안전만을 중시할 뿐,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칫하다가 상대방을 화나게 하거나 미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비판해 주는 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고마운 사람이다. / 125p

 

 

안전과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부탁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_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결국 남은 남일 뿐이다. 내 안전과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 상대방이야 잠깐 불쾌할 수 있겠지만, 내가 끝없는 고통에 휘말릴 것 같다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쳐내는 것이 좋다. / 140p

 

 

해묵은 재능과 명성에 집착하지 마라_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는 수백 년에 한 번씩, 자기가 피운 불에 몸을 던져 늙은 육체를 태우고 젊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해묵은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자신으로 재생하는 삶의 방식을 불사조에게서 배우자. / 187p

 

 

 

 

 

   이처럼 『일직선으로 나는 새는 총에 맞기 딱 좋다』는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 시대에 가장 현명한 조언들로 새겨진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에 한두 페이지씩 읽으면서 글의 의미를 되새김하는 독서를 권하고 싶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로부터, 막막한 인간관계로부터, 불공정한 세상으로부터 돌파할 이 진실한 지혜 앞에서 현명한 해답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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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빵빵한 날들
민승지 지음 / 레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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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이 녹아 있는 빵심 저격 에세이!

어딘가 부족해보여도 빵은 다 맛있는 것처럼, 별 거 아닌 듯한 우리 인생도 맛깔나게 살아보는 거다!

 

 

   폭신하고 뽀얀 살결을 품은 우유 식빵, 달달한 설탕이 듬뿍 발린 꽈배기, 반반의 매력을 잔뜩 머금은 크림단팥빵, 달달한 콘치즈 맛이 일품인 마약옥수수빵… 빵순이에게 빵이란 일주일 내내 거르지 않고 먹어도 질리지 않는 법이다. 베이킹에 조금만 더 자신이 있었더라면 손수 빵집을 열었을지도.

 

 

 

   어쩌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되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거기엔 엄마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땐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빵집이 동네 곳곳마다 있을 때가 아니어서 빵집을 가려면 동네에서 가장 큰 시장에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서 종종 만들어주곤 했는데, 냄비에 쪄서 먹는 스펀지같이 생긴 술빵(술은 들어가지 않은)이 그렇게나 맛있었다. 간혹 식빵이 있는 날이면 달걀을 으깨어 마요네즈를 섞고 아삭한 식감의 오이를 얇게 썰어 올린 뒤 케첩을 뿌려주시곤 했는데, 거기에 우유까지 곁들어 마시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빵이 또 없었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여유가 있는 날이면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계란빵이나 토스트, 쿠키 등을 아이와 함께 만들어보곤 한다. 빵집에서 파는 빵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만들어 먹은 따끈따끈한 오늘의 빵맛이 아이의 인생에서 조금이나마 따뜻한 여운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오늘도 빵집에 갑니다 

 

 

 

   누구에게나 빵에 얽힌 작은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법 빵빵한 날들』은 빵에 얽힌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단상들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에세이다. 특히 뭐든지 ‘사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던 작가는 뜨거운 오븐 속에 들어간 빵의 시선에서, 팔리지 않아 쓸쓸히 남아 있는 빵의 입장에서,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모으느라 정작 뒷전이 되어버린 빵의 서글픈 신세 등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놓은 그림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오늘 내가 먹는 이 빵이 내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무엇보다 타버린 쿠키에서 나의 콤플렉스를 생각하고, 갑자기 터져 나오는 슈크림처럼 어느 순간 애써 외면해 쌓아 왔던 감정의 탑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던 짠내나는 고백들은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해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빵 쪼가리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더 이상 말랑거리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이런 느낌마저 같이 나눌 친구들이 있어 위로와 또 다른 즐거움을 얻는다던 고백 또한 마찬가지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를 내심 부러워하는 작가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이나,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 엄마가 좋아하는 크림빵, 언니가 좋아하는 피자빵, 내가 좋아하는 미니 도넛을 검은 봉지 안에 가득 채워 넣고 달랑달랑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선 작은 빵 봉지 하나에 담긴 가족을 향한 애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가장 나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한증막을 뛰쳐나오던 그때처럼 언젠가 ‘못하겠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날이 오게 될까 아니면 견디고 견뎌 마침내 빵이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견디는 중이기 때문이다. / ‘뜨거운 오븐’ 중에서 13p

 

하얀 생크림 케이크 대신 커다랗고 투박한 카스텔라에 초를 꽂아 가족 모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준다. 비디오 속의 나는 불이 붙어 있는 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축하 노래를 불러 주는 가족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어린 나는 자기가 사랑받는 줄 알고 있다. 노래가 끝나고 초에 바람을 불어 끄는데 힘이 약한 나를 도와 언니가 같이 불어준다. “후, 내 생일이야.” 하면서 꺄르르 웃는 네 살의 나. 훌쩍 커 버린 나는 아직도 케이크에 초를 보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설렌다. / ‘케이크에 초’ 중에서 64p 

 

 

 

 

 

 

   ‘케이크에 초’ 편을 읽다보니 문득 우리 집 꼬맹이가 생각난다. 생일과 크리스마스 할 것 없이 각종 기념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꼭 케이크를 빠뜨리지 않는다. 둘째 아이까지 낳고 나니 케이크를 살 일이 더 자주 생긴 것 같다.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우리 아이도 케이크에 꽂아놓은 촛불을 입으로 후, 하고 부는 걸 특히 재미있어 한다. 한 번 불고 끄면 그걸로 끝이냐고? 절대 아니다. 적어도 서너 번은 반복해줘야 한다. 하물며 생일 축하곡은 생일이 아니어도 불러줘야 하고, 여기에 아이들이 여럿 함께 하기라도 하면 한 명씩 돌아가며 초를 끄게 해줘야 진정으로 마무리가 된다. 대체 촛불 끄는 게 뭐가 그리 신나기에 설레는 얼굴을 하고서 입가에 띤 웃음을 멈출 줄 모르는지. 그간 나는 그저 불이 켜지고 꺼지는 것이 신기해서 그러는가보다 생각했는데, 문득 ‘훌쩍 커 버린 나는 아직도 케이크에 초를 보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던 저자의 글귀를 읽고 나니 그제야 아이의 진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나의 날, 가족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 환한 불빛과 함께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주는 날, 지금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 아이에게 촛불과 케이크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무언가 좋다는 표현을 하면 꼭 그것이 실망으로 돌아올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다른 사소한 감정들을 대할 때에도 나는 모두 이런 식이었다. 솔직하지 못하고 모른 척하기 바빴다. 기뻐도 안 기쁜 척, 슬퍼도 안 슬픈 척. 책이 나와서 기쁘기도 했지만 오히려 걱정을 더 많이 하는 내게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마음껏 기뻐해도 돼.” 그 한 마디를 듣고서야 비로소 나는 안심했다. 구워져 나온 빵의 감출 수 없는 향기와 풍채처럼 나도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다. / 78p

 

 

 

 

 

  이처럼 『제법 빵빵한 날들』은 빵이 있어 일상이 따끈따끈해지는 순간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포착해낸 에세이다. 완벽하게 세팅된 빵보다 한쪽이 타버리거나 못생겼지만 그런 빵들에 더 마음을 두는 작가의 마음이 참 다정하다. 예쁘고 화려한 빵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빵은 아니지만,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저 빵이 빵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 우리도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또 부러운 것은 부러워하면서 나만의 맛을 정직하게 지켜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매력을 알아줄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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